아! 슬프다. 용혈암이여!
백련사 원정스님
화창하고 무더운 날에 확트인 남해 앞바다가 보고 싶어 주작산에 올랐다. 신전 초등학교에서 시작하여 1시간쯤 산을 오르니 점점 남해 앞바다가 서서히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르는 내내 줄줄 흘렀던 땀방울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확 트인 전망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환희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쁨도 잠시 뒤를 돌아 덕룡산 자락을 바라보는 순간 한눈에 봐도 산중턱에 자리한 곳에 계속해서 하얀 분진을 뿜고 있었다. 그 옆에는 제1대 원묘국사, 제2대 정명국사, 제4대 진정국사, 제7대 진감국사가 주석했던 용혈암이 현재는 터만 남아 있는 곳.
아! 슬프다. 용혈암이여! 고려 무신시대 때 민중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아파했던 백련결사의 도량 백련사에 최우의 스승이신 진각국사 혜심스님이 거주하신 곳이다. 몽고의 침입을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막기 위해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편찬하게 하신 혜심스님과 함께 동시대의 4국사들이 주석한 유서 깊은 도량이 용혈암이었다. 하지만 후대의 사람들은 그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이렇게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자연환경을 지키고 향유하는 것은 우리 당대에만 특권이 아니다. 선조들이 훌륭한 문화유산을 우리에게 남겨 줬듯이 우리도 우리 자손들에게 그러한 특권을 향유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들의 의무인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자비정신이며 上生의 사상인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인간이기에 실수 할 수 있다. 하지만 1천년 가까이 8국사의 정신을 계승발전 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한 것은 실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큰 우리들의 잘못이다.
강진은 먹고 살기 힘든 고장이라고 푸념만 했지 궁극적으로 어떤 콘텐츠로 세상과 공생해야 하는지는 모르는 것 같다. 이제는 우리가 마음뿐만 아니라 몸으로 그 정신을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때이다. 지금까지는 흐릿한 기억 저편에 묻어 두었다면 이제는 덮여 있던 흙들을 걷어 내고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때인 것이다. 아무리 용를 멋지게 그렸어도 마지막 눈에 동자를 찍지 않으면 죽은 그림처럼 이제는 붓을 들어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해야 할 때이다. 내가 그에게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님의 꽃에서>처럼 우리도 용혈암에 의미를 부여하자. 아니 기존에 가지고 있는 훌륭한 의미를 현대에 맞게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자.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지금은 없어지고 유적지만 남아 쓸쓸함을 더하는가? 이것은 내적인 사상을 올바로 유지하는 외적인 승단(僧團)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작년 말에 개최한 <원묘국사요세와 백련결사>란 학술 세미나 때 백련사 주지 여연스님께서 하신 “만약 우리가 4국사의 정신을 계승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어서도 4국사님들을 뵙지 못 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 왔다. 그래서 올해 초부터 용혈암을 강진군 향토 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추진을 했었다. 강진 군민들과 함께 아트홀에서 창립대회 및 용혈암 등반대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6월초에 강진군 향토문화 유산으로 등록이 되었다.
다산은 기암괴석 사이로 진달래가 필 때면, 용혈암에 참례하여 유숙하였다고 한다. 무엇이 다산을 진달래가 필 때면 용혈암으로 발길을 가게 만든 것일까? 이것이 앞으로 용혈암을 국가 유산 및 도문화 유산으로 지정을 받아야 하는 이유이이며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인 것이다. 내려오는 길에 창공으로 유유히 나는 새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저어먼 곳 구강포 앞바다에 떠 있는 죽도에 가 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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