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백운동 거사 시원 박태후 선생 작품전
31일까지 광주 구 인재미술관
영화 촬영을 할 만큼 야생 동백나무가 수 백 그루 울울창창 우거진 성전 백운동에 화실을 갖고 있는 시원 박태후 선생의 작품전이 12일부터 31일까지 광주 구 인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자연 속으로···’ 란 주제로 열린 이번 작품전에는 참새, 병아리, 복숭아꽃, 개나리 등의 작품과 갤리그래피, 아트상품, 그리고 자신이 사는 ‘죽설헌’을 화첩에 소개했다. 갤리그래피와 아트상품은 그의 또 다른 면목과 함께 활동의 진폭을 엿보게 하고 있다.
작품마다 법문의 할이 담겨져 있는···
만인의 스승 성철 스님은 입적하기 몇 달 전 해인사 대웅전에서 단 두 마디 설법을 하였다.
열심히 정진하라. 내 나이 벌써 80이다.
젊음도 인생도 아침 이슬처럼 지나가는 것이니 독하게 맘먹고 정진하라는 설법에 학승들은 가슴이 서늘했다고 한다.
그렇다. 사람이 도(道)나 예술의 혼을 불태우려면 한 눈을 팔고 자시고 할 여가가 어딨겠는가. 17년 전 시원은 20년 동안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던졌다. 그것도 행정사무관 대우의 직급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바늘구멍처럼 힘들고 명예 퇴직자들이 쓰레기처럼 생겨나는 힘든 세상에 사표라니······
그러나 그는 불혹의 문턱을 넘어서서 진정한 자유스러움을 누리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던 것 같다. 솔직히 아무리 화려한 직장도 알고 보면 상머슴 중머슴 도토리 키 재기요, 고치 속의 번데기이다. 손바닥에 익은 일이어서 별 힘들지 않아도 꼬박꼬박 받을 수 있는 봉급의 유혹을 과감히 잘라버린 것은 새처럼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런 자유로움 속에서 청청한 눈빛으로 자신을 좀 더 깊이 있게 성찰해 보겠다는 의지 그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소문날 만큼 잘 꾸며진 자신의 화실을 박차고 이따금씩 영암 월출산으로 달려가곤 한다. 단숨에 달뜨는 천황봉에 올라가서 목청껏 고함을 지르는가 하면, 어느 틈에 무위사 입구 천년 동백숲 속에 자리잡은 백운동 화실에서 독서와 낮잠을 즐기기도 한다. 뒷문을 열면 한 폭 산수화처럼 월출산이 펼쳐지고 앞뜰엔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바위와 함께 조화를 이룬 기막힌 명당에서 여유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직장을 떠나니 더 바빠지더라.
그가 한 말이다. 어제는 그곳으로, 오늘은 저곳으로 동분서주하는 그로서는 당연한 표현일 것이다. 게다가 서울과 부산, 충청도와 경상도의 멀찍한 곳까지 자신의 발걸음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기에 그를 만나기란 좀체 어렵기만 하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서 세상을 아우르려는 욕심에 움찔움찔 놀라곤 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달려가는 기관차처럼 삶을 마음껏 불태우는 모습에 전율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 시원은 세상에 널려진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소유하고자 한다. 하늘의 흰 구름과 한둘굼 바람까지 자신의 것이고 싶어 한다. 지리산에 지천으로 피고 지는 산철쭉에게조차 눈길을 준다. 그래서 그는 그야말로 욕심덩어리로 똘똘 뭉쳐진 사람이다. 바늘로 콕 쑤셔도 피 한 방울 나올 데가 없을 만큼 매사에 철저함은 그의 깡마른 인상답게 자신에게 있어서 천하의 구두쇠다.
작가인 나보다도 독서를 더 하겠다고 안달이고, 산꾼 보다 산을 더 좋아하며, 운동선수보다 더 운동에 시간을 할애하고, 농부보다 더 농장을 사랑하며, 수백억 가진 부자도 갖기 힘든 멋진 초집을 소유하려고 한다. 생활이 변화무쌍해서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 걸 보면 김삿갓의 방랑벽 또한 닮아 지리산 청학동에도 바닷가 허름한 절간에도 막역한 지인이 기다리고 있다. 물 건너 다른 나라 땅에도 마찬가지다.
시원은 왜 그렇게 똥욕심이 많은가.
세상을 읽으려고 들고 세상을 가지려고 들며 그래서 혼탁한 세상에 지느러미를 흔들어대는 그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자신이 갖고 태어난 모든 것들을 한점 남기지 않고 태워버리겠다는 불꽃이길 원해서일까. 물론 틀린 추측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진정 그의 속뜻은 다른 곳에 있음을 나는 눈치 채고 있다.
그림을 그리되 세상을 읽어내며 그리겠다는 것. 방안에서만 들어앉아 손끝으로 붓이나 놀리는 작가가 아니라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을 수없이 접하고 나서 드디어는 흰 화선지에 먹물로 일갈하려는 속뜻임을 나는 눈치 챈 것이다. 그래서 경허선사가 신도들이 구름처럼 모인 법당 위에서 모친의 눈도 있건만 바지를 벗어 불알을 내놓는 엉뚱한 법문처럼 그렇게 먹물을 튀기는 사람이다.
누가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자기 방식대로 살고 자기 방식대로 그림을 그리되 정작 그의 깊은 뜻은 그만이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원의 그림이 파격적이어서 타인이 흉내낼 수 없음은 바로 그런 까닭일 것이다. 가차없이 먹물을 뿌리는가 하면 바다처럼 흰 여백을 남기기도 한다.
그래서 그것도 그림이냐는 말도 듣는다. 어렸을 때 쓰다듬던 불알이 커서 이제는 징그럽게 보이는 경허선사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며 화를 내던 모친처럼. 하지만 품안의 아들이었다고 생각했다면 어찌 부끄러울 일이며 화를 낼 일이랴.
시원의 작품 또한 마찬가지다. 그의 그림은 제각기 먹물의 일갈이 있다. 한 줄기 폭포를 만나는 것처럼 통쾌함이 있는가 하면 암벽 위에 핀 한 떨기 야생화 같은 은은함이 배어있다. 그래서 그를 아는 자만이 그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고, 안목이 있는 자만이 그의 화력(畵力)을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나는 그의 30여 년 성상의 작품에서 일상적인 삶과 파괴라는 강한 메시지를 읽는다. 단순한 문인화가의 먹물 튀김이 아니라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강한 개성을 알려주는 것 같아 오금이 저려온다.
아, 그래서 그의 작품마다 법문의 할이 담겨져 있다.
할!
글 : 송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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