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당윤복선생탄신 500주년기념행사 주도한
윤재명 전 강진·영암 3선 국회의원의 일대기
사)행당윤복기념사업회 회장
해남윤씨 27세, 행당 14세손
격동의 세월… 강진 발전의 주춧돌을 놓다
귤동마을의 모닥불
귤동 마을은 남도답사 일번지로 전국에 알려진 민족의 큰 스승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의 실학정신이 살아 숨쉬는 다산초당이 있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백련 결사운동의 성지인 천년고찰 백련사(白蓮寺)가 있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윤 의원은 바로 그곳에서 태어났다. 금릉팔경(金陵八景) 중 하나인 만덕청람(萬德晴嵐)에 해당될 만큼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자란 윤 의원이 나중 7, 8, 10대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에도 부친과 모친은 조금도 세도를 부리거나 거드름 피는 일이 없었다. 뒷산에서 손수 푸나무 등 땔감을 구해오는 순수한 농부의 부친과 초하루 보름마다 비류폭포 위 옹달샘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자식들 잘 되기만을 비는 인자하고 덕스러운 모친의 밑에서 윤 의원은 자랐다.
도암초등학교를 졸업한 윤 의원은 목포 문태중학교에 입학한다. 3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객지임에도 불구하고 리더십을 갖춘 학생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문태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총학생회장을 맡게 되었고, 유명한 다른 고등학교 학생회장 중에서도 연합회장을 맡을 만큼 활발한 교류를 갖기도 했다. 나중 윤 의원은 재경 문태중고등학교 동문회장을 제4대부터 10대까지 무려 7회 연속 맡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에 여고생이었던 부인을 만났다.
고려대 국문과에 합격한 윤 의원은 대학 2학년 때 결혼을 했다. 형편이 어려워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에 쌀 두 가마니를 들고 부산으로 갔다. 우여곡절 끝에 돈을 번 윤 의원은 복학했을 때 중절모에 마카오 신사복을 입고 지프차를 타고 등교했다. 학생들이 교수인 줄 알고 인사를 할 정도였는데, 6·25 사변 이후여서 모두 피폐된 삶을 살 때라 주변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을 낙으로 알고 지냈다.
윤 의원은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 반공청년단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4.19이후 1960년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현대평론’을 창간해 정계·관계·학계· 등에서 저명한 사람을 모시고 좌담회를 개최하기도 했고, 27세 고려대학교 재학 중인 신분임에도 다산초당 복원을 위해 5만환이란 거금을 내놓기도 했다.
공약 180퍼센트 달성한 정치생활
1963년 8월 11일 공화당 전남도지부 창당 초대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을 때 상대자는 전남도의회 의장을 지낸 차운영 씨였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온 강진의 부호 차종채 씨의 장남이었던 그를 누르고 선출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는 정계 입문을 뜻하는 청신호이기도 했다.
윤 의원은 그 후 1963년 12월 26일에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 첫 출마를 하게 된다. 공천과정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공화당 영암 강진 지역구 후보가 된 윤 의원은, 그러나 통일당 당수 낭산 김준연 선생에게 첫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20개 면에서 19개 면을 이겼지만 마지막 개표지인 영암에서 2,000표 밖에 얻지 못해 진 것이었다. 김준연 26,00표, 신민당 강진출신 유수현 18,000표, 윤재명 23,700표라는 개표 결과는 대단히 놀라운 일로 만일 강진에서 유수현 씨가 출마하지 않았더라면 압도적으로 당선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 때 나이 홍안의 32세 때 일이었다.
윤 의원은 1967년 제7대 총선에 다시 출마했다. 그리고 36세에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당시 4선을 역임한 김준연 선생을 이겼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다. 그리고 국회 내무위원을 시작으로 한일의원 간담회 한국측 대표,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정부 조직법 개정 위원장,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 위원장, 와우아파트 사건 국회진상조사위원장, 김대중 의원 자택 폭발물 사건 국회조사 및 김포 강화 천주교 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장 등을 맡아 최선을 다해 일한다.
새마을 운동이 진행되던 1968년 윤 의원은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맡게 된다. 고산 윤선도 선생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윤 의원은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시와 노래들을 보존해야 한다’며 세종상을 제정해 창립 첫해인 1968년 정영창, 성창순 등에게 제1회 시상을 했다. 국악진흥법을 국회에 통과시키기도 하고, 1969년에는 (사)전국시조연합회 회장을 맡아 윤선도 선생의 후예로서 그 역할을 다하기도 했다.
그러나 초선 시절 무엇보다도 교부세법을 통과시킨 것이 큰 보람으로 남아 있다, 교부세란 국가 예산을 교부금으로 만들어 자립도가 약한 지역을 도와주는 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윤 의원은 1971년 제8대 국회의원에도 당선된다. 그런데 농수산 위원장으로 내정이 되었으나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 당부로 국회 원내 부총무라는 중임을 맡게 되었다. 농어민을 위해 일하고 싶었으나 갑자기 청와대로부터 만찬에 초대를 받아 갔더니 박 대통령은 뜻밖에도 국회 부총무를 맡아달라는 말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윤 의원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바로 그 해, 일생을 통해 가장 치욕스런 일을 겪고 만다. 10월 2일 야당측이 제기한 오치성 내무부장관 해임건의안이 일부 공화당 의원의 가세로 가결됨으로써 공화당의 숙당으로 이어진 사건이 일어났다. ‘10·2 항명 파동’이라고 불리는 그 사건은, 오치성 장관 불신임안이 가결됨으로써 윤 의원은 오해를 받게 되었다. 중앙정보로 끌려간 윤 의원은 새벽 3시까지 심한 고초를 겪어야만 했는데, 나중 김정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전화가 와 각하께선 윤 의원에게 오해가 없다는 말을 전해왔다.
그런데 나라 안의 사정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각종 사건과 시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총선이 연달아 있었다. 박정희 후보는 김대중 후보를 94만 여 표차로 이겼지만 5월 25일 국회의원 총선 결과는 공화당 113석, 신민당 80석으로 개헌 선에는 훨씬 못미쳤다.
그 이듬해인 1972년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안개 속이었다. 그러더니 ‘시월유신’이 발표되면서 국회가 해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유신국회에서는 강진과 장흥, 완도를 합쳐서 선거구를 확장시킴으로써 출마를 포기하도록 유도했다. 당시 장흥 출신 길전식이 사무총장이어서 공천부터 받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윤 의원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되겠다는 심정으로 광주군 오포면 추자리 뒷산의 7만 평 중 5천 평에 약초를 심고 잣나무를 심었다. 농장 이름을 ‘만덕농장’이라고 불렀는데, 고향의 부친도 올라와 농장 일을 거들었지만 12대 국회의원 선거 때 진 빚을 갚기 위해 결국 처분하고 말았다.
9대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왔다. 그 때 윤 의원은 무소속으로 출마해도 이길 수 있다는 주변의 말을 듣지 않고 신의를 앞세워 길전식 후보를 도왔다. 그러나 길전식 후보는 당선도자마자 유정회 진출을 모른 체 외면함으로써 정치적 배신감을 맛보았다. 신뢰했던 당에 배신당한 허탈감에 윤 의원은 잠시 방황의 시간을 갖게 된다.
제10대 국회에 들어서기까지
1978년 제10대 총선을 앞두고 윤 의원은 공화당을 탈당했다. 7년 동안이나 공화당 사무총장이란 막강한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윤 의원은 정계를 떠나 농장을 가꾸는 유인(幽人)이었다. 누가 보아도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었다. 게다가 윤 의원을 떨어뜨리기 위한 온갖 계략이 만들어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지역구였던 양암, 강진, 장흥에 완도까지 편입시켜 선거구를 확장시키는 일이었다. 이를 일컬어 언론에서는 ‘물방울 선거구’라고 까지 꼬집을 정도였다.
‘무소속인 윤재명이 무슨 수로 네 개 군의 선거구를 감당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는데, 정치적으로 선을 끊어버리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온갖 박해와 괴롭힘이 다가왔다. 그러나 윤 의원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과거의 동지들을 규합하고 낯선 장흥, 완도에 비밀리 조직을 만들었다. 이태 동안 조직을 만들면서 관리하고 있을 때, 당시 문화방송 사장이었던 영암 출신의 이환의 씨가 찾아왔다. 내용인즉슨 길전식 총장이 약 2~3억 줄테니 출마를 포기해 달라는 말을 전해온 것이었다.
윤 의원은 화를 벌컥 냈다. 자신의 인격과 소신을 짓밟은 사람과 단호하게 싸우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막상 부딪친 선거는 피가 마를 정도였다. 선거막바지에 이르자 온갖 술수를 다 부렸다. 당시 그 선거에는 강진출신 고려대 후배인 황호동 씨와 고려대 동기동창인 이선동 씨가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길전식 씨와 윤 의원 두 사람이 복수 당선되었다. 1위는 길전식 씨였고, 2위는 윤 의원이었다.
당선이 된 윤 의원은 지역구 발전을 위해 공화당에 입당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가락동 공화당 훈련원에서 악수를 청하며 수고했다고 말했다. 그 때 윤 의원은 “공화당에는 티오(자리)가 없어서 야당 티오로 당선되어 되돌아 왔습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다음 날 신문에 가십으로 나와 한동안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윤 의원은 공화당에서 국토통일위원장을 맡았고, 국회에서는 농수산위에 들어가 일을 했다. 첫 회의 날, 농수산부 간부들이 있는 자리에서 과격한 발언을 했다.
“이 자리에 있는 농수산부 관료들은 농민을 상대로 이익을 취하는 정부미 도정업자나 농기계 파는 사람을 위해 일할 뿐 진정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당시 전국 도정업자 연합회장은 김종필 총리의 큰형인 김종호 씨였다. 또한 순천의 도정업자는 중앙정보부 김재규 부장의 처갓집으로 도정업계의 대부 같은 사람들이었다. 결국 그들은 윤 의원에게 사과를 해왔지만 윤 의원은 면허취소를 강력히 주장했다.
이렇듯 농수산위에 있는 동안 윤 의원은 농어민과 농어민의 소득을 위해 일했다. 특히 농수산물 제값 받기를 위해 미역, 버섯 등 일본 수출을 위해 판로개척에 나서기도 했고, 완도 미역을 국방부에서 전군이 미역국 먹기 운동을 벌인 적도 있었다.
그런데 1979년 10월 26일 충남 삽교천 준공식 참석 후 10·26 사태로 인해 박대통령이 서거하자 윤 의원에게도 정치적 운명이 시작된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국회가 해산되기까지 1년 반이란 짧은 기간 동안 눈부시게 활동했던 윤 의원이었다. 1979년 국회 헌법 개정 특위 기본권 위원장을 맡아 새 헌법을 만들었는데, 우리나라도 이제는 국사정권에서 벗어나 참된 민주주의로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최치환, 김수환 의원 등과 함께 일했던 것이다.
윤 의원은 전남에서 세 사람 중 한 사람으로 입법위원에 추천이 되었다는 중앙정보부 국회담당 서모 조정관이 귀띔을 해왔을 때 대뜸 참여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결국 입법위원은커녕 난데없는 정치 정화법에 묶여 강제로 정계를 은퇴하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당시 육군 준장이었던 육사 11기 김 식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노태우씨가 자기와 육사 동기인 김식의 소장 진급이 어렵게 되자 정계에 자리를 하나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한 모양이었다. 김식의 말이 국회의원 하려면 고향인 강진에서 해야 하는데, 그 곳에는 윤재명이가 있어서 가당치도 않다는 말에 노태우씨는 발을 묶을 테니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는 거였다.
윤 의원은 강제로 정계를 떠나 사회교육법인단체인 학원총연합회 회장에 취임, 교육인들과 8년의 보람 있는 세월을 보내게 된다. 학원연합회장으로 일하면서도 1984년 (사)한국프로태권도협회 회장직을 맡아 5년간 일했다. 또 1986년에는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우회가 창립되어 초대와 2대 회장을 역임했다. 그 후 1994년부터 고려대 문과대학 교우회장을 맡아 초대부터 3대까지 일했고, 고려대 총교우회 부회장을 7년이 넘도록 맡기도 하는 등 활동을 해왔다.
윤 의원은 제12대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결과는 낙선이었지만 선거 과정이 너무나 힘들었고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쓰라린 경험을 맛본 윤 의원은 자진해서 정계를 떠났다. 고향인 귤동마을 다산초당에 있는 약수터에서 그 옛날 모친이 했던 것처럼 그 물로 몸을 씻고 발을 씻고 마음까지 씻었다.
국회의원에 5번 출마해서 3번 이기고 2번 졌으나 다른 사람에 비하면 괜찮은 셈이었다. 1988년에는 정부에서 국민훈정 목련장을 안겨주었다. 2012년에는 해남윤씨 행당(杏堂) 윤복 선생 탄신 50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사업회장을 맡아 서울과 강진에서 학술강연회와 고유제(告由祭)를 지내는 등 문중을 위해 활약했다. 거기에 때맞춘 듯 장남인 윤보현 서울대 의대 교수가 2012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상을 7월 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주최 대한민국 과학 기술 연차대회에서 수상했다. 대통령상과 상금 3억 원을 수상한 장남 윤보현 교수의 명성으로 윤 의원의 가문은 더욱 빛나게 되었다.
장남 윤교수(산부인과)는 조산과 태아 손상 분야의 세계적 대가로 꼽히고 있는 것은 그의 연구로 세계의 수많은 조산아들의 뇌 손상과 사망률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윤 의원을 두고 심상기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은 “윤 부총무 같은 대중형 정치인이 더 커갈 수 있는 정치풍토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면서 “24시간 언제든지 그의 집은 개방되어 있어서 접근하기 쉬운 대중형 정치인의 실체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 정치인, 바로 그 모형이었다”고 회고했다.
전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내다가 문화관광부장관까지 지낸 주돈식 씨는 “당시 국회 기자들 사이에서 ‘범처럼 날쌘 야당투사들이 윤 의원한테는 양처럼 순하게 끌려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성춘 전 한국일보 정치부장은 “7·8·9대 국회를 출입했던 당시의 기자들은 일선 언론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가끔 만나면 격동기의 한국 정치 국회 얘기, 활약했던 여·야 정치인 예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김혜철 7,8,10대 비서관은 “타고난 건강으로 지역구 위해 헌신한 사람”이라고 평했고, 이규봉 7,8대 비서관은 “원칙과 정도를 걸어온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 글 송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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