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빨갱이 집안의 딸
험난한 길 넘어 찾은 자유, 탈북자 증언 <새연재 1>
북한이탈주민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데 반해 그들이 적응하고 안정적인 정착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현재 탈북자들은 전국적으로 퍼져 우리 이웃으로 정착하여 살며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으나, 신변안전과 탈북자라는 인식 때문에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서로 다른 환경과 문화에서 살아오다 험난한 탈북의 길을 거쳐 남한에 온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이해와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고 그들이 우리 이웃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탈북자들의 증언을 실어본다.(편집자 주)
수미(가명)씨는 여군생활 중 탈북 했다. 아버지가 당 비서였기 때문에 그런대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수미씨다. 초급 당 비서였던 아버지 밑에는 2,000여명의 노동자와 부양가족이 있었기에 아버지는 남한의 대기업 간부급에 속했다.
“뼛속까지 빨갱이 집안이에요”
수미씨는 자신의 집안을 그렇게 표현했다. 집단체제 형태의 아버지 산하 노동자들은 전부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을 정도로 잘 돌아갔다. 그래서 수미씨 집은 쌀밥, 순대, 오리고기, 떡도 마음대로 해먹었고, 배급이 제대로 되었기 때문에 주변 친구들도 특별히 어려움은 없어보였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도시락을 못 가져 오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봄가을 소풍 시에도 반찬 없이 밥만 싸오는 친구들이 생겼다. 그러한 현상을 보면서도 그런 아이들을 대하는 수미씨나 보통 아이들은 그들이 부모가 똑똑치 못해서 그런다고 왕따를 시키고 차별을 하기도 했다. 고3학년이 되던 92년도에는 아예 도시락을 못 싸오는 애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전에 쌀밥 싸오던 애들의 도시락이 옥수수밥으로 변했다. 그러다가 “누구네 엄마가 굶어죽었대” 라는 말들이 암암리에 아이들 사이에 퍼져 있었고, 학교를 못나오는 친구들이 생기면서 같이 졸업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후에 들리는 말에는 그 친구들이 모두 굶어죽었다고 들려왔고, 동기들이 실제로 40%가량이 굶어 죽었다.
북한의 실정은 공산국가였던 소비에트 연방이 개혁 개방의 붐을 타고 붕괴되면서 어려움에 직면했다. 가장 큰 공산주의 대표 국가인 소련이 붕괴되자 냉전시대기 끝났다. 소련은 1991년 12월 25일 고르바초프가 사임을 발표하여 공식적으로 해체됐고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15개가 독립했다. 북한은 소련 붕괴로 인해 군수물자에 큰 타격을 입었다. 북한의 군대는 모든 군수물자를 소련으로부터 지원받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당장 군대에 필요한 물자 조달을 위해 북한 주민들의 배급을 줄여야 했다. 배급이 줄어들자 북한 주민들의 아우성이 커지면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했지만 북한 실정은 더욱 어려움으로 치달았다.
북한과 중국의 동맹관계는 때로는 소원해지거나 불편해지기도 했으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혈맹관계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었다. 중국은 1989년 톈안먼사건 등 위기 속에서도 이때 결정한 개혁과 개방 정책은 현재도 중국의 최고 정책 노선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연해 지역을 중심으로 한 대외개방 정책을,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의 개혁 정책을 진행해갔다. 이러한 북.중관계는 탈냉전의 상황에서 이념보다는 경제적 실리를 중시하는 중국의 개방 정책에 따라 1990년 이후 커다란 곡절을 겪어왔다. 중국의 아낌없는 북한 지원이 무역을 통한 실익 외교로 바뀌면서 북한 경제를 악화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실제로 김정일이 중국에 사료를 달라고 하니까 개나 소가 먹을 수 있는 동물사료를 보내와 그것을 주민들 배급으로 풀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당시 북한 주민들의 배급은 1년에 석달치만 지급되고 있던 실정인데다 100일 전투 등으로 주민들을 승리를 위해 결속시키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이와같이 물자의 지원을 아끼지 않던 구소련과 중국의 변화에 따라 북한실정은 급속도로 악화된 상태에서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한 것이다. 사망발표는 이틀 후인 7월 10일에 이루어졌는데, 당시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던 김영삼 대통령이 7월 27일 방북하기로 예정된 상황이었다. 7월 27일은 1953년 7월 27일 6·25 전쟁이 휴전된 날이며, 북한에서는 그 날을 전승기념일이라고 부른다. 수미씨 가족도 금방 통일이 될 것 같은 부푼 기대를 안고 있던 중이었고, 당비서 집안으로서 그런대로 부족함은 없었다.
그러나 김일성 사망 발표이후 가족모두 큰 충격에 휩싸였다. 아버지를 비롯 할머니까지 보름동안 봇짐을 싸들고 새벽부터 김일성 동상 있는 광장으로 가서 대성통곡을 했다. 할머니는 김일성 사망 충격으로 인해 며칠 뒤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김일성의 사망은 북한 주민 전체를 실의와 절망에 빠뜨렸다.
“이제 우리를 누가 구원해주는가 하는 생각에 금방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았어요”
어머니는 혈서를 썼다. 아버지 밑에 있던 부하 각시가 집에 찾아왔다. 당비서 각시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혈서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당장에 열 손가락에 칼을 쿡쿡 찔러 넣더니 질질 흐르는 피로 한자 한자 정성스레 써내려갔다. (다음주에 이어)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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