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송하훈
“장군, 장군께서 옥에 갇혀 계셨을 때 원균이 승전소식을 전해왔다고 합니다.”
황대중의 말에 이순신이 미음을 한 숟갈 뜨다 말고 그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조정에서는 원균이 통제사로 임명을 받자마자 적선 3척을 포획하고 수급 47급을 바쳐왔다는 점에 매우 가상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원균과 공이 있는 사람은 즉시 논상(論賞)하고, 관군을 보내 호군(犒軍)하여 장사들을 격려할 일을 의계(議啓) 하라 일렀다고 합니다.”
“잘 한 일이 아니겠소?”
“그러나 지난 9일 대·중·소 3척은 전선이 아닌 나무를 하기 위한 배였답니다. 안골포 만호 우수, 고성 현령 조응도, 거제 현령 안위 등이 탄 배가 거문포에 당도했을 때 왜적들을 회유한 원균은 술도 주면서 떠날 것을 회유하자 왜적들을 좋아라 하면서 떠났는데, 돛을 달려고 할 때 원균이 지자총통을 쏘니 여러 배들이 앞을 다투어 공격을 했다고 합니다. 왜적의 배를 불사르자 그들은 모두 배에서 내려 육지를 향해 헤엄을 쳤는데 그 때 사살하여 그 시체를 건진 다음 목을 벤 것이 18급이었다고 합니다.”
이순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황대중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 전투로 인해 주상전하로부터 극찬을 들은 원균은 30만 대군을 소집하여 4~5월 사이에 수륙 합동으로 건곤일척의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상소를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늦봄이어서 날씨가 가물어 땅이 단단하므로 말을 달리며 작전을 하기가 좋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여전히 이순신은 고개만 끄덕거렸다. 한참동안 말이 없던 이순신이 입을 열었다.
“이제 서서히 출발합시다.”
이순신 일행이 수원을 거쳐 계속 남쪽으로 발걸음을 재축했을 때 이순신의 어머니 집에서 일하는 종 순화가 나타났다.
“장군님. 저 순화올습니다.”
“네가 여기까지 무슨 일이냐?”
그런데 종 순화는 말문을 열기도 전에 엉엉 울음부터 짰다.
“자, 장군니임!”
“어서 말하거라.”
이순신이 근엄한 표정으로 말하자 종 순화가 눈물을 닦고 나서 엎드려 고했다.
“마님께서 그만······.”
이순신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너 시방 무엇이라고 말했느냐? 마님께서라니······?”
“돌아가셨구먼이라. 흑흑······.”
이순신은 뜻밖의 소식에 털썩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어머니가 살아생전 효성을 다했던 이순신이었다. 1593년 1월, 전라좌수영을 여수 고음천에 설치했을 때 어머니를 모셔와 효성을 다했던 것이다. 어머니를 자주 뵙기 위해서였다.
“그래 어쩌시다가 돌아가셨더란 말이냐?”
이순신이 정신을 차리고 나서 종 순화에게 물었다.
“장군님. 마님께서는 장군님께서 하옥되셨다는 소식을 듣고 기력이 몹시 쇠진하셨습니다요.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시고 날마다 장군님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셨습니다요,”
종 순화가 눈물이 펑펑 쏟으면서 그간의 일을 알렸다.
“그런데?”
“장군님께서 이번엔 석방되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요. 그리곤 반가운 마음에 배를 타고 서둘러 고향 아산으로 돌아오시다가 그만······.”
“어찌 기력이 없으신 분이 배를 타셨더란 말이냐?”
“아무리 말려도 장군임을 어서 만나야겠다면서 배를 타시는 바람에······.”
“어서 가보자.”
이순신은 배를 끌어 중방포 앞에 옮겨 대고 영구를 상여에 올려 본가로 돌아왔다. 이순신 어머니의 연세는 82세였다. 때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온 몸을 비로 적시며 본가에 도착했을 때 빗줄기는 굵어지면서 무섭게 퍼부어 내렸다. 빈소를 차리고 나서 이순신은 대성통곡을 했다. 생각해 보면 늙은 노모가 돌아가신 것은 순전히 자신 때문이었다. 하옥만 되지 않았더라도 몇 해는 더 사실 어머니가 아닌가. 이순신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심정으로 빈소를 지켰다.
“장군. 밤늦게까지 빈소에 계시면 안 됩니다. 얼굴이 몹시 상해 있습니다.”
황대중이 미음 한 그릇을 건네며 간곡하게 잠을 청할 것을 권했다.
“아니오. 차라리 죽기만을 기다리는 심정이오.”
“장군!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황대중이 얼굴조차 들지 못할 만큼 축 늘어진 이순신을 바라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비는 세차게 내리건만 어머니를 만년유택에 모시지 못한 채 백의종군을 하기 위해서는 당장이라도 남쪽으로 내려가야만 하는 이순신이었다. 이순신이 염려했던 대로 다음 날 금오랑의 서리 이수영이 공주에서 와서 다그쳤다.
“어서 출발을 하셔야 합니다.”
“알겠소,”
이순신은 빈소로 들어가 곡만 하다가 도저히 몸을 지탱하기가 힘들어 종 금수의 집으로 가 허리를 눕혔다.
4월 19일이 되자 며칠동안 퍼부어 내리던 비가 그치면서 하늘이 맑았다. 이순신은 아침 일찍 빈소에 들어가 울며 어머니께 하직 인사를 드렸다.
“어머님. 불효자를 용서하십시오. 불효자가 나라의 죄인이 되는 바람에 어머님을 돌아가시게 하였으니 천지에 저와 같은 사정이 어딨겠습니까? 어서 죽는 것보다도 못한 불효자이옵니다.”
이순신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해 백의종군의 길을 떠났다. 공주를 거쳐 익산에 도착한 이순신 일행은 다시 남원을 거쳐 구례를 지났다. 구례에서 다시 순천에 다다른 것은 일 주일만인 4월 27일이었다. 이제 권율 원수 밑에서 백의종군하는 일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권율은 이순신이 내려온 줄 알고 군관 권승경을 보내 조문을 해왔다. 어찌나 간곡히 위로의 말을 하는 지 가슴이 울컥 할 정도였다. 그리고 하루해가 지나자 이순신에 대해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그동안 모친 별세로 인해 몸이 몹시 피곤할 터인즉 기운이 회복되면 자신을 찾아오라는 것과 군관을 거느릴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한편,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하고 있을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친히 조선을 치겠다며 각 지방의 제후들에게 전쟁준비를 시키고 있었다. 조선왕이 와서 무릎을 꿇는다면 전쟁 이상으로 좋은 일이겠으나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철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문제는 체면이었다. 6년간의 전쟁으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죽어갔지만 생각대로 전쟁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조선이 왕자를 보내 항복의 의사를 전할 일도 없었다.
“그렇다면 군사를 더 보내 우선 전라도부터 쳐야겠지.”
히데요시는 재침을 위한 편성군을 발표했는데 무려 14만 1천4백90명이었다. 이들 왜적들은 전라도를 휩쓸어버리고 다음으로 충청도와 기타 여러 지방으로 진격할 것을 명했다. 제2차 조일전쟁의 전운이 감도는 순간이었다.
이순신은 명나라사람 섭성이 초계에 와서 한 말을 듣고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섭성은 “명나라 사람 주언룡이 일찍이 왜적들에게 포로가 되어 사로잡혔다가 이번에 비로소 풀려났는데 왜적 10만 명이 벌써 쓰시마에 이르렀을 것이고, 고니시는 의령을 거쳐 곧장 전라도로 침범할 것이며, 가토는 경주, 대구 등지를 거쳐 안동으로 갈 것이다”란 말을 듣고 있는 터였다. 사실 히데요시는 고니시나 가토를 비롯해서 여러 장수들이 이미 조선에서 전투 경험이 있었다.
히데요시는 제1차 조일전쟁을 일으켰을 때 명나라를 치겠으니 길을 빌려달라는 명분과 함께 조선을 일차적으로 점령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조선조차 집어삼키기가 어렵게 되고 명나라 구원병이 남하한 상황에서 전쟁의 목적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조선의 4도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이 같이 전략수정이 된 것은 전적으로 심유경과 고니시의 사기극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전리품을 얻지 못한 이 전쟁에서 자신의 체면이 구겨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백성들 보기에도 민망한 노릇이었으므로 어떻게 하든지 전리품을 얻어야만 숨통이 터질 것 같았다.
조선 수군을 격멸하지 못했고, 전라도를 수중에 넣지 못한 상태에서 명나라와 협상을 벌였을 때 철군을 하게 된 것은 군량미의 부족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욱 조선의 수군을 격멸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전라도를 쳐서 군량미 조달이 원활하게 하려는 의도가 컸다. 왜적은 기필코 조선수군을 궤멸시켜야만 소기의 목적을 이뤄낼 수 있다 생각하고 비방의 무기를 마련하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것이다. 많은 군사들을 동원하는 것도 전략 중 하나였고, 농사를 많이 지어 군량미 걱정을 하지 않는 것도 전략 중 하나였다. 그러므로 제2차 조일전쟁의 서막은 해전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조선수군의 상태는 어떠했는가. 스스로 자멸해가고 있는 조선수군의 비극은 이순신의 백의종군과 함께 그 자리를 물려받은 원균의 실책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조선수군의 기강은 해이되었고 탈영까지 서슴지 않았으니 전쟁을 하기도 전에 자멸할 정도였다.
원균은 이순신의 자리에 올라앉으면서 이순신이 정한 제도를 다 변경하고 이순신이 신임하던 장수들을 내쫓아버렸다. 2년만에 한산도 기지로 돌아온 원균으로서는 이순신의 그림자를 없애고 자기가 신임하는 장수들과 함께 작전회의도 하고 수군을 운영하려 했던 것이다. 재침이 눈앞에 다가온 긴박한 상황인데도 원균은 좋아하는 첩을 데리고 와 그 집에서 살며 이중 울타리를 치고 날마다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니 여러 장수들이 원균을 만날 수 없었고, 원균 또한 술주정과 성내는 일이 잦았다.
조직의 수장이 그 모양이다 보니 민심이 하루아침에 변해버렸다. 만일 왜적이 쳐들어온다면 오직 도망가는 수가 있을 것이라며 백성들은 수군거렸다. 장수들 역시 몰래 원균을 비웃었으며 그의 호령도 잘 지키지 않았다.
원균은 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계속되었는데, 처음엔 이순신처럼 수륙합동 작전을 주장했었으나 나중에는 정작 자신이 출동을 머뭇거렸다는 점이었다. 원균은 이순신이 3도수군통제사로 있을 때 ‘원컨대 수군으로 하여금 바다 밖에서 왜적을 맞아 공격한다면 그들은 상륙할 수 없으므로 걱정이 사라질 것입니다’하고 보고서를 보낸 바 있었다. 전라병사에 있었던 원균이 이순신의 관할까지 들먹이며 수군의 적극적인 전투를 건의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순신처럼 수륙합동작전을 들고 나왔다.
원균은 수군과 육군이 함께 나가서 먼저 안골포의 적을 물리친 연후에 수군이 부산 등지로 진입하고자 하니 안골포의 적을 먼저 칠 수 없느냐고 주장했다. 이에 권율은 정작 자신이 나아가지 않고 오직 안골포만 먼저 쳐야한다며 혼란을 자아내고 있고, 이런 원균으로 인해 여러 장수들이 딴 마을을 품고 있어 제대로 대책을 합의하지 못할 게 뻔하다고 개탄했다.
권율은 가토의 배를 막으라고 한 조정의 말을 듣지 않은 이순신에게 직접 한산도로 찾아가 출동을 명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가토는 도해를 끝내버린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원균이 출동을 지체하고 있어 권율은 독촉을 심하게 했다.
마지못해 원균 함대 100척은 안골포의 적굴로 진격해 적선 두 척을 빼앗았다. 100여 척을 동원한 전투에서 겨우 적선 두 척을 물리친 졸전이나 다름없는 셈이었다. 다음은 가덕도 전투였는데 왜적은 조금도 두려운 기색이 없이 조선수군의 배를 에워싸고 좌우에서 협공할 만큼 활발했다. 아무런 전과도 없이 싸움은 끝냈으나 보성군수 안홍국이 적탄을 맞아 이마를 관통하는 바람에 선 채로 죽고 말았다.
그런데 이원익과 권율은 부산방면으로 출전할 것을 원균에게 지시했다. 이는 임금 선조와 조정 대신들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만일 원균이 부산으로 출전을 않을 시에는 군법으로 다스리라는 엄한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원균은 계속 부산의 출전은 미룬 체 안골포와 가덕도에 있는 왜적의 섬멸만을 주장하고 있어 결국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도제찰사 이원익은 권율에게 엄중히 원균을 군법으로 다스릴 것을 명했다.
권율은 원균을 불러들인 후 공개적으로 곤장을 때렸다. 원균은 곤장의 아픔보다도 마음이 더 찢어지도록 아팠을 것이었다. 1597년 7월 5일 원균은 마지못해 부산 앞바다를 향해 진격했다. 조선수군의 비극이 드디어 시작되고 있었다.
겉으로는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순신의 전공이 신화처럼 살아 있었다. 원균은 다대포에서 8척의 적선을 불태운 후 여세를 몰아 부산 절영도 바깥 바다로 향했다.
왜적들도 원균의 함대가 나타나자 즉시 전투준비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일본의 쓰시마를 출발한 1.000척의 일본 함대가 조선 수군 앞에 나타났다. 이제 조선수군 100여 척과 왜적 함대 1.000여 척이 한바탕 싸우는 일만 남았는데, 왜적의 함선이 뿔뿔이 흩어지는 바람에 싸움은 싱겁게 끝나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허망하게도 조선수군의 함대 7척이 서생포 앞바다에서 모두 살육을 당하고 말았는데, 이 때 강풍이 불면서 파도가 산더미처럼 솟구치자 어떻게 해 볼 재주가 없이 조선 수군의 배들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결국 20여 척의 배를 적에게 내어 준 조선수군은 거친 물결 때문에 날이 저물어가는데도 마땅히 정박할 곳이 없었다,
“아! 물 좀······.”
조선수군들은 한산도에서부터 종일 노를 저어오느라 쉴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배고픔과 목이 말라 제대로 노를 저을 수가 없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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