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시조시인 윤광제의 탐진강 이야기

‘강진의 젖줄’, ‘어족자원의 보물창고’라 불리던 탐진강은 이제 없다. 점점 줄어드는 어획고, 사라져가는 패류, 쌓여가는 진흙으로 인해 예전의 명성마저 퇴색되고 있다. 심지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느낄 만큼 탐진강의 현재와 미래는 암울하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생기 넘쳤던 그 시절이 다시 오기를 기대하면서 탐진강이 강진의 미래가 돼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탐진강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고 미래를 제시하기 위해 원류를 따라 가본다. -편집자 주-

주민들이 백사마을 입구에 세워진 세월교(일명 잠수교)를 지나가고 있다

대구면 백사마을

미산(眉山)마을에서 길 하나 건너면 나타나는 마을이 바로 백사(白沙)마을이다.

백사마을의 지명을 분석해보면 흰 백(白), 모래 사(沙)자가 합쳐진 말이다. 이름만 보면 흰 모래사장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해석이 되는데 갯벌이 발달한 서남해안의 특성상 백사장이 나타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 그렇다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마을이 가까이 와서 보니 늘 그렇듯이 낮에 찾은 시골마을엔 인적이 드물었다. 오는 길에 세월교(일명 잠수교)도 지나고 세월교 부근에 조성된 운동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세월교는 밀물 때나 비가 많이 오면 가라앉는 다리라 해서 붙여진 이름인 듯 평지보다 낮게 만들어져 있었다. 잔잔한 개울이 있고 그 앞으로 늘어선 갈대밭, 운동시설과 정자는 백사마을을 찾은 사람에게 쉼터가 되기에 충분했다.

세월교 부근에서 멋진 사진을 찍어보려고 다리를 기준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다보니 지나가던 백사마을 주민들이 반기며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산에 가면 등산객끼리 나누는 인사가 반갑듯이 오늘도 주민들의 반가운 기색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세월교에서 바라본 백사마을 하천

백사마을에는 어촌체험마을이 조성돼 있어 바지락, 꼬막 캐기, 어선 타기 갯벌낚시, 등 다양한 갯벌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드넓은 강진만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데크 시설이 갖춰져 있어 방문객들에게 사진 찍기 좋은 장소로 인기가 있다.

백사마을 갯벌에 특징이 있다면 그냥 갯벌같아 보이는 해안에 바위들이 드문드문 형성돼 있어 해안을 보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바위 덕분인지 이 일대를 돌 갯벌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돌 갯벌은 석화(굴)가 살기 가장 적합한 환경이라서 백사마을은 그 동안 천연자원의 혜택을 많이 봐왔다고 한다. 그러나 장흥댐이 조성되고 나서부터 민물과 바닷물의 활동이 적어지고 그 만큼 어획량이 줄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어획량의 급감으로 인해 백사마을 사람들도 시장에서 굴을 사서 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하니 그 심각성에 대해 다시 한번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차후 다루기로 하자)

세월교에서 강진만을 바라본 모습

한편 백사마을은 우리지역의 유명한 정치인을 많이 배출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황호동 전 국회의원, 현 황호용 강진문화원장(도의원 역임), 황호만 전 군의원(4선), 현 황주홍 국회의원이 그들인데 지역의 일꾼을 배출한 데는 경제적이든 문화적이든 지리적이든 뭔가 특별한 기운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데 여기에 확실한 답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수산업을 통해 확보된 자본으로 양질의 교육을 시키고 지속적으로 교육문화를 형성시켜 이어가다보니 정치 명문지역이 됐다고 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백사마을에 데크로 조성된 전망대가 있다. 해질녘 아름다운 풍광을 제공한다

데크에서 바라본 강진만 모습

그렇게 해안을 따라 둘러보면서 백사(白沙)마을의 이야기를 찾았는데 제일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흰모래는 끝내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왜? 백사(白沙)마을에 흰 모래가 없을까? 곰탕에 곰이 없고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과 같은 원리일까?

이에 대해 심히 궁금해진 나는 황호만 전 의원께 전화를 걸어 궁금증을 해결했다.

황 전 의원에 따르면 사실 백사마을에는 진짜 흰 모래가 많았다고 한다. 지구가 생긴 이래 백사마을 앞 바다에는 금빛 은빛 나는 흰 모래가 풍성했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새마을운동이 전개되면서 우리 지역은 물론 전국이 급속한 산업화의 노선을 걸으면서 환경이 등한시 됐던 시절이 있었는데, 바로 그 때 아름답게 빛나던 흰 모래는 마을의 길에, 어느 집의 담벼락에, 어느 집의 지붕에, 어느 집의 바닥에 시멘트와 비벼져 조금씩 조금씩 알게 모르게 사라져 갔다는 것이다. 결국 강물도 쓰면 준다고 했는데 백사마을 앞에 가득했던 그 모래들은 10여 년 사이에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단다. 강수량의 부족, 바닷물 유입량 감소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그 후 다시는 그 모래들이 생성되지도 않고, 유입되지도 않는다고 전한다. 누구 말대로 환경을 공격했던 우리가 이제 환경에게 역습을 당하고 있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는 않는다.

미산마을과 더불어 백사마을은 청자를 가득 실은 배가 왕래를 자주 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이 가능한 마을이다. 옛이야기를 떠올리는 이곳 출신 선배님들 말씀을 들어보면 갯벌과 논, 밭에서 바지개(발채의 방언)로 건져내던 것이 청자파편이었다고 회상하는 걸 보면 말이다. 지금도 청자촌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면서 옛 영광을 떠올리고 있지만 잘 몰랐다는 이유로 소중한 것들(백사, 청자 파편)을 너무 쉽게 잃어버렸던 것은 아닌지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마을의 끝자락에 조성된 산책로 입구에서 잠시 멈춘 나는 해지는 강진만을 바라보고 마량으로 이동했다.

백사마을도 둘러보면 갯벌, 갈대밭, 하천 등 해안 마을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풍경이 있어 추억을 남기기에 좋은 공간이 많다.

다음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