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한 자는 재물을 위해 죽고 권력욕이 강한 사람은 권세 때문에 죽나니······
말세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익을 다투었으나 오로지 백이와 숙제만큼은 의를 지켰으니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 굶주려 죽었다. 이를 두고 천하가 칭송하니 사마천은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며 백이열전를 맨 앞 1장에 두었다.
대체로 학자들이 기록한 서적은 매우 많다. 그러나 믿고 신뢰할 만 한 것은 육경(六經)으로 시경, 서경, 예기, 악경, 역경, 춘추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옳다. 그 중에서도 시경과 서경은 없어진 부분이 있긴 하지만 우(虞) 나라와 하(夏) 나라 시대의 글로 알 수 있다.
요(堯) 황제는 황제의 자리를 순(舜)에게 물려주었다. 순은 다시 우(禹)에게 물려주었다. 이런 경우에는 사방 제후들의 우두머리와 열두 주의 목(牧)들이 똑 같이 추천을 하게 되자 그 인품과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정치를 맡겨 공을 새운 연후에 제위를 넘겨주었다.
이는 천하야말로 소중한 그릇이며 제왕은 가장 높은 통치자이므로 천하를 물려준다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일임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이를 두고 어떤 이가 말하기를,
“요 임금은 천하를 허유(許由)에게 물려주고자 하였지만 허유는 그것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부끄럽게 여긴 나머지 도망쳐 숨어버렸고, 하 나라 때는 변수와 무광 같은 이들도 허유처럼 도망쳐 버렸다. 그런데 대체 이와 같은 이야기가 무엇을 근거로 나온 것일까?"
태사공이 말했다.
내가 기산(하남성)에 올랐을 때 그 꼭대기에 허유의 무덤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공자는 옛 어진 이, 성인, 현인을 차례로 열거하면서 오 나라 태백과 백이 같은 사람을 세세히 언급했다. 그런데 내가 듣기로는 허유와 무광의 뜻이 지극히 높다 하나 어찌하여 「시경」과 「서경」에는 그들에 대한 얘기가 조금도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 무엇 때문인가?
공자는 “백이와 숙제는 남의 지난날의 허물을 생각하지 않았고 원망하는 일 또한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들은 인을 구함으로써 인을 얻었는데 무엇을 원망하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백이의 뜻을 비감히 여기던 중 「시경」에 나오지 않는「채미가」를 읽고나서 공자의 말과는 다른 데가 있음을 알았다. 전해져 오는 백이와 숙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백이와 숙제는 상나라 제후국 가운데 하나인 고죽국(孤竹國) 군주의 두 아들이었는데, 아버지가 막내인 숙제에게 뒤를 잇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숙제는 아버지가 죽자 형 백이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고자 했다. 백이는 아버지의 명을 어겨서는 안 된다며 도망가 숨어버렸다. 숙제 또한 왕위에 오르기는커녕 도망가 버리자 고죽국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백이의 동생이며 숙제의 형을 왕으로 모셨다.
백이와 숙제는 당시 서쪽 제후의 우두머리였던 서백창이 노인들을 잘 모신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가 몸을 의탁하려고 했다. 그런데 백이와 숙제가 주나라에 이르렀을 때 서백창은 죽고 없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무왕(武王)은 선왕의 시호를 문왕(文王)이란 시호를 붙이고 나무로 만든 아버지의 위패를 수레에 싣고 동으로 가 상나라 주왕(紂王)을 치려고 했다.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간곡히 만류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도 치르기 전에 군사를 일으키는 것을 어찌 효(孝)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자 하는 것을 인이라 할 수 있겠는지요?”
무왕 곁에 있던 신하들이 곧장 칼로 베려고 하자 이 때 태공이 만류하여 이르기를,
“이 분들은 의로운 사람들이다”
그리고는 백이와 숙제를 부축하여 떠나보내게 했다. 그 뒤 무왕이 상나라의 난을 평정하자 천하는 주나라를 제후국 가운데 으뜸으로 받들었다.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백성이 된 사실을 부끄럽게 여긴 나머지 주나라 땅에서 나는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으로 숨어들어가 고사리를 뜯어먹으며 연명했다, 그리고 드디어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다음과 같은 노래를 지었다.
저 산에 올라 고사리를 뜯네.
무왕은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었건만 그 잘못을 모르는구나.
신농 · 우 · 하 나라 시대는 홀연히 사라졌느니 우리는 어디로 간단 말인가?
아아! 이제는 떠나련다. 운명이 다했으므로.
마침내 백이와 숙제는 수양산에서 굶어 죽고 말았다. 이 노래를 볼 때 과연 백이와 숙제는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을까? 없었을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하늘의 도는 편애함이 없고 항상 착한 사람과 함께 한다”라고 했다. 백이와 숙제 같은 사람은 과연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없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어질었고 덕망이 있었으며 행실이 깨끗했어도 끝내 굶어죽고 말았다. 비참한 아사(餓死)가 아닌가!
공자는 70명의 제자 가운데 유독 안연(顔淵)만이 배우고 익히기를 좋아한다고 칭찬했지만 그는 삼시세끼를 잇지 못할 정도로 곤궁하여 끝내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복을 준다면 어찌 이 같은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반면 노 나라 때의 도척(盜跖)은 날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간을 구워 먹었으며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흉악한 일로 천하를 돌아다녔지만 마침내 하늘이 내려준 천수를 다 하였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덕이 있었기에 그런단 말인가? 이런 일은 아주 두드러진 예이다.
요즘 시대에도 행동이 올바르지 않고 법도에 벗어난 일만 골라서 하는데도 한평생 호강하며 자손에 이르기까지 그 부귀가 대대로 이어지는 예가 적지 않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한 걸음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서 내딛고, 말도 가려서 하며, 길을 걸을 때 지름길을 택하지 않고, 공정하고 바른 일이 아니면 나서는 법이 없는데도 오히려 화를 당하는 사람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는 당혹스럽다. 만일 이것이 하늘의 도라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길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
이는 제각기 자신의 뜻을 좇아 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공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만일 부귀를 뜻대로 얻을 수만 있다면 마부가 될지라도 나는 그리 하겠다. 그러나 얻을 수 없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
“추운 겨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이 혼탁할수록 청렴한 선비가 돋보이는 법이다. 어찌하여 세상 사람들은 부귀만을 중히 여기고 뜻있는 선비는 하찮게 여기는 것일까?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군자는 죽은 후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가의(賈誼:한나라 문제 때 활동한 문인이자 정치가)는 이렇게 말했다.
“탐욕한 자는 재물을 위해 죽고, 열사는 명성을 위해 죽으며, 권세욕이 강한 자는 권세 때문에 죽고, 뭇 서민은 그날그날에 매달려 산다.”
“밝은 물건끼리는 서로 비추어 주고 같은 부류들은 서로 어울린다.”
“구름은 용을 따라 생기고 바람은 범을 따라 붙듯이 성인이 나타나면 만물의 진면목이 모두 드러난다.”
백이와 숙제는 비록 현인이기는 하나 공자가 칭송을 하였기에 그 이름이 더욱 빛나게 되었다. 안연은 비록 학문을 좋아하긴 했으나 기미(驥尾:천리마)의 꼬리에 붙음으로써 그 행적이 더욱 드러났다. 바위나 동굴에 숨어 사는 선비들은 때를 보아 세상에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가려 처신하는데, 이들이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슬픈 일이다. 시골에 묻혀 사는 사람 중에 그 이름을 남기려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덕행 있는 성현을 만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후세에 이름을 전할 수가 있을 것인가? (글 송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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