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시조시인 윤광제의 탐진강 이야기

‘강진의 젖줄’, ‘어족자원의 보물창고’라 불리던 탐진강은 이제 없다. 점점 줄어드는 어획고, 사라져가는 패류, 쌓여가는 진흙으로 인해 예전의 명성마저 퇴색되고 있다. 심지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느낄 만큼 탐진강의 현재와 미래는 암울하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생기 넘쳤던 그 시절이 다시 오기를 기대하면서 탐진강이 강진의 미래가 돼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탐진강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고 미래를 제시하기 위해 원류를 따라 가본다. -편집자 주-

썰물로 바닥을 드러낸 봉황마을 앞 바다. 멀리 대섬(죽도)가 눈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칠량면 봉황마을, 옹기를 생각하며

칠량농공단지를 빠져나와 동남아스콘, 청자골 비취미 등 칠량면 지역의 랜드마크급 시설을 지나서 칠량면 소재지에 접어 들었다. 칠량면소재지에서 마량방향으로 가다가 우회전해서 1km쯤 들어가면 봉황마을이 나타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마을 지형이 마치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봉황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보련마을 입구에서 만난 어르신의 말씀에 따르면 마을은 봉황의 몸통, 덕동 앞산이 날개, 월궁은 꼬리에 해당한다고 일러주셨고 마을 정면에 있는 대섬(竹島,죽도)은 봉황의 먹이라고 덧붙였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호기심이 많은 나는 새의 눈으로 봉황마을을 바라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현장에서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000지도를 검색해서 보니 아무리 봐도 봉황의 모습으로는 연상이 되지 않았다. 설명을 듣고도 지형과 맞추질 못했는데 휴대전화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보니 정말로 봉황의 모습이 나타났다.

또 다시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궁금증이 해소되니 이제야 마을을 둘러볼 자세가 됐다. 발걸음도 가볍게 봉황마을에 들어섰다. 때마침 해질녘에 자연산 생굴을 머리에 이고 오시는 할머니가 마을을 찾은 낮선 젊은이를 반겨주셨다.

옹기 생산으로 활기를 띄었을 봉황마을은 이제 평범한 어촌이 된 듯 고요하다

봉황마을에는 입구와 마을 중간, 그리고 마을 가장 안쪽에 지역의 명물 ‘옹기’를 생산하는 곳이 있었다. 봉황 마을이 옹기 생산지역으로 유명했던 것은 찰지고 철분 함량이 많은 흙이 풍부했고 무엇보다 옹기수송이 유리한 항구를 끼고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마을과 항구를 둘러보는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컸다. 퇴적물이 쌓여 점점 낮아지는 해수면이 그렇고, 옹기마을의 명성에 비해 관리되거나 조성된 시설이 없다는 것, 옹기의 향기를 느끼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옹기장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6호 정윤석 옹기장의 안내판.

2015년 현재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는 총 132종목에 기능보유자가 172명, 전수자는 296명만 있을 뿐이다. 특히, 옹기장은 단 2명만(경기도 여주 김일만, 전남 강진 정윤석) 있다. 그 2명 중에 1명이 우리지역에 있다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황옹기마을이 더 발전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정말 아쉬운 마음 뿐이다. 다른 한 분의 옹기장인 김일만 씨의 상황도 그리 나아보이지는 않는다. 김 옹기장은 현재 경기도 여주에서 활동 중인데 경기도 여주 또한 도자기 쪽에 무게가 더 쏠리는 상황이라 옹기가 주력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옹기장’으로 인터넷검색을 해보면 중요무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경북 영덕군과 경기도 화성시의 옹기공방이 나타난다는 것이고, ‘옹기’를 검색하면 울산광역시 울주군 옹기마을의 ‘울산옹기축제’가 먼저 눈에 띈다는 것이다. 국가대표 장인이 없는 곳에서도 이렇게 산업화를 위해 홍보하고 축제도 벌이는데 이 좋은 여건을 가지고도 더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의 직무유기가 아닐까?

청자도 관상용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용자기로 눈을 돌리는 상황인데 같은 조건이라면 옹기가 생활용기로서는 더 활용도가 높다고 본다. 이 점을 감안해서 향후 청자축제 때 청자와 옹기 모두를 발전시킬 좋은 방안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국이 향후 최대 소비지가 될 것이라고들 하는데 한류의 열풍이 단순히 가수, 배우, 음악, 드라마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식료품, 식재료, 의복, 문화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자국의 옹기 산업이 이미 사장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중국에 우리의 옹기를 팔아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글의 원래 취지였던 ‘탐진강물 따라 마량항까지 가기’를 잠시 잊고 봉황 옹기마을에 대한 안타까움에 사로잡혀 한참을 서성이다가 옹기산업과 강진의 미래를 생각해보고 짠한 마음만 안고 마을을 벗어났다.

가우도를 방문하기전 식당에서 바라본 가우도

‘아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말이 있다. 잘 모르는 해안선 타고 가기가 거시기 해서 다시 큰길로 나왔다. 이제 향기의 섬 가우도를 향할 순서였다.

가우도는 도암면 신기리 소재 강진군 유일의 유인도다. 그 모양이 소의 멍애를 닮았다고 하는데 지금도 나는 이해가 잘 안된다.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달팽이 아니면 거북이 형상이다.

가우도는 섬 가꾸기 모델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향후 개발되면 주목할 만한 섬으로 꼽힐 것이라고 입을 모으는 섬이다. 최근 이낙연 도지사가 방문하고 나서 더욱 개발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황주홍 의원이 군수 재직시절에 타워건설을 계획했었다가 이것이 무산되는가 했는데 강진원 군수 대에 이르러 공중하강 체험시설로 재탄생하게 생겼으니 길이야 조금 돌아갔지만 결국 그렇게 타워가 생길 모양이라 어떻게 완성될지 기대가 된다.

나는 가우도를 눈 앞에 둔 상태에서 일단 저두마을의 맛집에서 배를 채우고 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밥부터 먹고 섬으로 가자!’

그렇게 위장과 배고픔이라는 난제를 두고 식사라는 타협점을 찾은 나는 식당 문을 힘차게 열었다.

다음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