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서 열전(伍子胥列傳)
오자서: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와 형의 원수를 갚기 위해 초나라를 버리고 오나라로 들어간 그는 인고의 세월을 보낸 뒤 오나라 왕 합려를 도와 합려로 하여금 춘추 패자에 오르게 했다. 사마천은 오자서를 일러 작은 의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운이다. 오운의 부친 이름은 오사(伍奢)이고 형은 오상(伍尙)이다. 그의 조상 중에는 오거(伍擧)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항상 강직한 직언으로 초나라 장왕(壯王)을 섬겨 그 이름이 높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 그 후손들도 초나라에서 이름 난 가문이 되었다.
초나라 평왕(平王)에게는 건(建)이라는 태자가 있었다. 평왕은 오사를 태부(太傅)로 삼고 비무기(費無忌)를 소부(少傅)로 삼았다. 이에 비무기는 태자 건을 섬기는데 정성을 다 하지 않았다. 그 무렵 평왕은 비무기를 진(秦)나라에 보내 태자비를 맞이해 오도록 했는데, 비무기는 진나라 공주가 미인인 줄 알고 말을 달려 돌아와서는 평왕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진나라 공주는 절세의 미인입니다. 그러나 왕께서 직접 진나라 공주를 맞아들이시고 태자에게는 다른 여자를 맞이하도록 하십시오.”
그 말을 들은 평왕은 제나라 공주를 아내로 삼은 후 그녀를 끔찍이 예뻐한 나머지 아들 진(軫)을 낳았다. 태자에게는 다른 여자를 아내로 삼도록 했다. 이 날로 비무기는 평왕의 신임을 얻게 되어 태자를 보필한 게 아니라 평왕을 모셨다. 그러나 만일 갑자기 평왕이 죽게 되면 태자가 왕위를 물려받을 것이므로 그 때가 되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 질까봐 태자 건을 비방하기 시작했다.
태자 건의 어머니는 제나라 출신이었는데, 평왕의 총애를 받기는커녕 아들 건마저 차츰 멀리하더니 마침내 성보 땅을 지키도록 하명했다. 그 일이 있고나서 얼마 후 비무기는 다시 왕에게 태자의 험담을 시작했다.
“태자는 진나라 공주의 일로 원한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 왕께서는 스스로 방비를 해야 할 줄로 압니다. 태자는 성보 땅에서 머물며 군사를 거느리기도 하려니와 제후들과 친교를 맺어 머잖아 도성으로 쳐들어 와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평왕은 태자 건의 태부인 오사를 불러서 물었다. 오사는 비무기가 평왕에게 험담을 하는 줄 알고 이렇게 말했다.
“왕께서는 어찌하여 참소를 하는 소인배의 말만 믿으시고 골육의 정은 멀리하려고 하십니까?”
이에 비무기가 입을 열었다.
“왕께서는 지금 그들을 제압하지 않으시면 그들의 반란이 성공하여 왕께서는 사로잡히는 몸이 될 것입니다.”
평왕은 이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오사를 옥에 가두고 성보땅의 사마(군정관)인 분양(奮揚)에게 태자를 잡아 죽이라고 명을 내렸다. 분양은 미리 성보땅에 이르기 전에 태자더러 이렇게 말했다.
“태자께서는 급히 떠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잡혀 죽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태자는 송나라로 도망을 쳤다. 비무기가 평왕에게 말했다.
“오사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모두 현명하므로 그들을 죽이지 않으면 나중 초나라의 화근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아버지를 인질로 삼고, 두 아들을 불러들이십시오.”
왕은 오사에게 사람을 보내 말했다.
“네 두 아들을 불러들이면 살겠거니와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엔 죽일 것이다.”
그 말에 오사가 말했다.
“큰아들 상은 속이 깊으므로 반드시 돌아오겠으나 작은 아들 운은 마음이 굳세어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고 욕을 참고 견디는 성격이라 큰일을 이룰 것입니다. 작은아들은 이곳에 오면 함께 잡힐 줄 알고 부른다 하여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은 그의 말을 믿지 않고 두 아들에게 전했다.
“너희가 오면 아비를 살려 주겠지만 만일 오지 않는다면 죽일 것이다.”
오상이 가려고 하자 오운이 말했다.
“초나라에서 우리 형제를 오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를 살려 주려고 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중에 도망치는 자가 있으면 나중 후환거리가 생기기 때문에 그것을 두려워하여 아버지를 인질 삼아 우리를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가 간다 해도 삼부자 모두 죽게 될 것이므로 아버지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훗날 아버지의 원수도 갚을 수 없게 됩니다. 차라리 다른 나라로 도망을 쳐 그 나라의 힘을 빌려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우리 형제가 함께 죽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상이 말했다.
“내가 간다고 해서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살기 위해 나를 부르셨는데 가지 않았다가 훗날 아버지의 원수도 갚지 못하게 되면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하지 않겠느냐.”
그리고는 오운에게 말했다.
“너는 달아나도록 해라. 너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 다오, 나는 그곳으로 가서 죽을 것이다.”
오상은 스스로 걸어가 붙잡히자 사자는 오자서마저 잡으려고 했다. 이때 오자서가 활을 당겨 사자를 겨누었으므로 사자가 감히 달려들지 못했다. 오자서는 태자 건이 있는 송나라로 도망쳐 그를 섬겼다. 오사는 오자서가 도망쳤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초나라 군사들이 머지않아 전란으로 고생을 하게 될 것이다.”
오상이 잡혀오자 초나라에서는 오사와 오상을 죽여 버렸다.
오자서는 송나라에 갔으나 화씨(華氏)의 난이 일어나는 바람에 태자 건과 함께 정(鄭)나라로 달아났다. 정나라 사람들은 그에게 후한 대접을 했으나 태자 건은 다시 진(晉)나라로 갔다. 진나라 경공(頃公)이 말했다.
“태자는 이미 정나라와 친하게 지내고 있고, 정나라는 태자를 믿고 있소, 만일 태자가 나를 위하여 안에서 내응해주고, 내가 밖에서 친다면 정나라를 없앨 수 있을 것이오, 그렇게 되면 나는 그곳에 왕으로 봉하겠소.”
이에 태자는 정나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이 진행되기도 전에 태자는 사사로운 일로 자신의 시종을 죽이려고 했다. 태자의 음모를 알고 있던 시종은 이 사실을 정나라에 낱낱이 알렸다. 정나라 정공(定公)은 자산(子産)이란 대신과 의논하여 태자 건을 죽여버렸다.
태자 건에겐, 승(勝)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오자서는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고 승과 함께 오나라로 도망쳤다. 두 사람이 초나라와 오나라의 경계에 있는 소관에 도착했을 때 관원들이 그들을 붙잡으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오자서는 승과 헤어져 혼자 달아나다가 하마터면 붙잡힐 뻔 했다. 오자서는 장강에 이르자 마침 장강에서 배를 타고 있던 어부 한 사람이 오자서의 위급함을 알아차리고 강을 무사히 건네주었다. 오자서는 자신이 갖고 있던 검을 주며 말했다.
“이 칼은 백금의 값어치를 지니고 있소. 이것을 감사의 표시로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어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초나라 법에 오자서를 잡는 자에게는 상으로 양곡 5만 석과 집규 벼슬을 준다고 했습니다. 어찌 한낱 백금짜리 검과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부는 끝내 칼을 받지 않았는데, 오자서가 오나라에 이르기도 전 병에 걸려 삼시세끼를 구걸해야만 했다.
당시 오나라 왕은 요(僚)였고, 공자 광(光)이 장군으로 있었다. 오자서는 공자 광에게 왕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후 초나라 변경에 있는 종리라는 마을과 오나라 변경에 있는 비량씨라는 마을 간에 다툼이 일어났다. 두 마을은 모두 누에를 치며 살았는데, 여자들이 뽕나무를 사이에 두고 시비가 붙은 것이 끝내 큰 싸움으로 번지고 말았다. 초나라 평왕은 대노하였고, 두 나라는 마침내 군사를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오나라에서는 공자 광을 보내 초나라를 공격하도록 했는데, 광은 초나라의 종리와 거소를 함락시키고 돌아왔다. 오자서가 오나라 왕 요에게 말했다.
“초나라를 함락시킬 수 있으니 다시 공자 광을 내보내십시오.”
공자 광이 말했다.
“오자서의 아버지와 형은 초나라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오자서가 왕께 초나라를 치라고 한 것은 자신의 원수를 갚기 위함입니다. 지금 초나라를 치면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오자서는 공자 광이 반역을 꿈꾸며 왕을 죽인 후 스스로 왕위에 오르려는 속셈을 눈치 챌 수 있었는데, 그것을 알고 나자 대외적인 일을 거론할 때가 아님을 알았다.
오자서는 공자 광에게 전제라는 인물을 천거한 후 물러나 태자 건의 아들인 승과 함께 농사를 짓는데 전념했다. 5년 뒤 초나라 평왕이 죽고 그의 뒤를 이어 일찍이 태자 건에게서 빼앗은 지나라 공주가 낳은 아들 진이 왕위에 올랐다. 그가 소왕(昭王)이다.
오나라 왕 요는 초나라가 국상 중이라는 사실을 좋은 기회로 여겨 개여와 촉용 두 공자에게 군사를 주어 초나라를 공략하게 했다. 그러나 초나라에서는 군사들을 움직여 오나라 군사들의 배후를 치니 그로 인해 오나라가 텅 비자 공자 광은 전재에게 명하여 오나라 왕 요를 죽이도록 명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오나라 왕 합려이다. 뜻을 이루자 오자서를 불러 대외적인 업무를 맡아 일하는 행인(行人)에 임명하고 힘께 국사를 의논했다.
이때 초나라는 대신이었던 극완과 백주리가 주살되자 백주리의 손자 백비가 오나라로 망명했는데, 오나라에서는 백비를 대부로 임명했다. 앞서 오나라 왕 요가 초나라를 치기 위해 보냈던 두 공자는 퇴로가 끊겨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그들은 합려가 오나라 왕 요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는 말을 듣고는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에 투항했다. 초나라에서는 두 공자를 서(舒) 땅에 봉했다. 합려는 왕이 된 지 3년 만에 군사를 일으켜 오자서와 백비를 대동하고 초나라를 쳐 땅을 빼앗고 일찍이 오나라를 배신한 두 공자를 사로잡았다. 이어 초나라 도읍인 영으로 진격하려 하자 장군 손무가 만류했다.
“백성들의 고통리 너무 커서 지금은 때가 이릅니다. 잠시 기다리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그 말에 합려는 군사를 거두어 되돌아왔다.
합려 4년, 오나라는 초나라를 공격하여 육 땅과 첨 땅을 빼앗았고, 5년에는 월나라를 쳐서 패퇴시켰다. 6년에는 초나라 소왕이 공자 낭와를 보내 오나라를 침공해 왔으므로 합려는 오자서에게 맞서 싸우게 했다. 오자서는 초나라 군사를 예장에서 크게 무찌르고 초나라의 거소까지 빼앗았다. 합려 9년, 드디어 오왕 합려는 오자서와 손무에게 말했다.
“예전에 경들은 아직 초나라 도읍인 영을 공격할 때가 아니라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소?”
“초나라 장군 낭와는 탐욕이 커서 초나라 속국인 당나라와 채나라의 원망을 사고 있습니다. 왕께서 초나라를 얻고자 하신다면 먼저 당나라와 채나라를 얻으십시오.”
이에 합려는 그 말을 받아들이고 전군을 몰아 당나라와 채나라와 함께 초나라를 쳐들어가 한수를 사이에 두고 진을 쳤다. 이때 오나라 왕의 동생 부개는 군사를 이끌고 선봉장이 되려했으나 왕이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부개는 자신의 군사 5천을 이끌고 초나라 장수 자상을 쳤다. 자상은 패하여 정나라로 달아났다. 오나라는 기세가 등등하여 다섯 번 싸운 끝에 드디어 초나라 도읍인 영에 이르렀다. 며칠 후 초나라 소왕은 도망을 쳤고 그 다음 날 오나라 왕이 영에 입성했다.
소왕은 영에서 달아나 운몽으로 갔는데, 중간에 강도의 습격을 받고 운나라로 도망을 쳤다. 그러자 운공의 동생 회가 이렇게 말했다.
“초나라 평왕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으니 내가 그 아들을 죽여도 괜찮겠습니까?”
운공은 동생이 소왕을 죽일까봐 소왕과 함께 수나라로 도망갔다. 오나라 군사는 수나라를 포위하고 수나라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천에 있던 주나라 자손들은 모두 초나라가 멸망시켰다.”
그러자 수나라 사람들은 소왕을 죽이려 했다. 소왕의 형인 공자 기가 왕은 숨겨 놓고 자신이 소왕인 것처럼 행세하다가 그만 죽임을 당했다. 수나라에서는 소왕을 오나라에 넘겨주는 것을 보고 점을 쳤는데 점괘가 불길하게 나와 소왕을 내주지 않았다.
지난 날 오자서와 신포서는 서로 가깝게 지냈다. 오자서가 초나라에서 달아나면서 신포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기어이 초나라를 없애버릴 것이오.”
신포서가 말했다.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지킬 것이오.”
초나라 군사가 초나라 도읍인 영에 입성했을 때 오자서는 소왕을 잡으려 했으나 찾지 못했다. 그 대신 초나라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그 시신을 꺼낸 후 3백번이나 매질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신포서는 산속으로 달아나다가 사람을 보내 오자서에게 전했다.
“그대의 복수는 지나친 면이 있는 것 같소. 나는 ‘사람은 그 수가 많을 때 하늘도 이길 수 있겠지만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능히 사람을 깨뜨릴 수 있다’는 말을 들었소, 그대는 본디 평왕의 신하로서 지금 그 시신을 욕보이고 있으니 이보다 어찌 천리를 어긋난다고 하겠소.”
오자서가 말했다.
“나를 대신해 신포서에서는 해가 저물고 갈 길이 멀어 도리를 좇을 수 없었소.라고.”
신포서는 이 말을 듣고 진나라로 달려가 초나라의 위급한 상황을 고하고 구원을 희망했다. 진나라 왕이 응하지 않자 신포서는 진나라 궁정에 서서 이레 밤낮을 울었다. 진나라 애공이 측은하게 여겨 말했다.
“초나라는 비록 무도하긴 하지만 이 같은 신하가 있으니 망하게야 할 수는 없는 일이지.”
그리고는 수레 500대를 보내 초나라를 도와 6월에 직 땅에서 오나라 군사를 물리쳤다. 오나라 합려는 오랫동안 초나라에 머물며 있으면서 소왕을 찾고 있었는데, 그 틈을 노려 동생 부개가 오나라로 돌아와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이 소식을 들은 합려는 초나라를 포기하고 오나라로 돌아와 부개를 쳤다. 부개가 싸움에서 지자 초나라로 달아났는데, 초나라 소왕은 오나라에서 내란이 일어난 줄 알고 도읍인 영으로 돌아와 부개를 당계에 봉하고 당계씨라 불렀다. 초나라는 다시 오나라와 싸워 이겼다. 오나라 왕은 이내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2년 뒤 합려는 태자 부차를 장군으로 삼아 초나라를 치게 하여 파 땅을 영토로 삼았다. 초나라는 오나라가 다시 쳐들어올까봐 두려운 나머지 도읍을 약(鄀)으로 옮겼다. 그 때 오나라는 오자서와 손무의 지략으로 서쪽으로 센 초나라를 처부수고 북쪽으로는 제나라와 진나라를 위협했으며, 남쪽으로는 월나라를 굴복시켰다.
그로부터 4년 뒤 공자(孔子)가 노나라의 재상이 되었는데, 이듬 해 오나라가 월나라를 침범했다.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의 군사와 맞서 고소에서 물리치고 합려의 손가락에 상처까지 입혔다. 오나라 군사는 물러갔지만 합려의 상처는 더욱 악화된 나머지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자 합려는 태자 부차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구천이 아비를 죽였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겠느냐?” 부차가 말했다.
“눈 감기 전까지는 절대로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날 밤 합려가 죽었다. 왕위에 오른 부차는 백비를 재상으로 삼고, 군사들에게는 활쏘기 등 군사훈련을 시켰다. 2년 뒤 오나라는 월나라를 쳐서 부초산에서 크게 이겼다. 월나라 구천은 잔병 5천을 거느리고 회계산 정상에서 머물렀다. 구천은 대부 문종을 시켜 오나라 재상 백비에게 후한 선물을 보내고 화해를 청했다. 그리고 월나라를 오나라에 바치고 자신은 오나라 왕의 신하가 되고 자기 아내는 구천의 첩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오나라 왕은 이 청을 받아들이려 했으나 오자서가 만류했다.
“월나라 왕은 아무리 힘든 고통도 잘 견뎌 내는 사람입니다. 지금 왕께서 그를 없애버리디 아니하면 나중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오나라 왕은 오자사의 말을 무시하고 백비의 간청을 받아들여 월나라와 친교를 맺었다.
그로부터 5년 뒤 제나라 경공이 사망했다. 제나라 대신들이 세력다툼을 하고 새 왕이 유약하다는 말을 듣고 부차는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치려고 했다. 그러자 오자서는 이렇게 만류했다.
“구천은 한 가지 반찬으로 밥을 먹으며 죽은 병사를 조문하며 아픈 병사를 위로하는 것은 언젠가 그들을 요긴하게 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구천이 죽지 않는 한 오나라는 반드시 화를 입게 될 것입니다. 지금 오나라에 월나라가 있다는 것은 뱃속에 병이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므로 왕께서는 월나라를 먼저 없애고 제나라를 치는 것이 순서입니다.”
하지만 부차는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고 제나라를 쳐서 애릉에서 크게 승리했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추나라와 노나라 왕들에게 위세를 보이고 돌아왔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오나라 왕은 오자서의 계책을 더욱 무시하게 되었다.
다시 4년 뒤, 오나라 왕 부차는 다시 제나라를 치려고 했다. 이에 월나라 왕 구천은 공자의 제자인 자공의 계책에 따라 친히 군사를 몰고 오나라를 돕는 한편, 재상 백비에게는 귀한 선물을 바쳤다. 백비는 이미 월나라의 큰 선물을 받은 까닭에 월나라를 더욱 신임하여 오나라 왕에게 밤낮으로 월나라를 두둔했다. 오나라 왕은 백비이 계책을 믿고 지내자 오자서가 간했다.
“월나라는 오나라의 속병과 같습니다. 지금 월나라의 아부에 가득 찬 거짓말을 듣고 제나라를 탐내지만, 설령 그 땅을 얻는다 해도 황폐한 땅이어서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옳고 그름을 거스르고 공손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가볍게는 코를 베고 무겁게는 목을 베어 그 자손이 이 읍에서 퍼지지 못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상나라가 흥성한 까닭입니다. 왕께서는 제나라를 포기하시고 월나라를 먼저 치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해야만 훗날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나라 왕은 이 말을 듣지 않고 오자서를 제나라 사신으로 보냈다. 오자서는 떠나기에 앞서 아들에게 말했다.
“나는 왕께 수차례 간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이제 오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게 되었으니 너까지 그것을 본다는 것은 덧없는 일이다.”
오자서는 아들을 제나라 대부인 포목에게 맡기고 오나라로 돌아와 제나라 정세를 보고했다. 일찍이 오자서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재상 백비는 오자서를 모함했다.
“오자서는 성질이 거칠고 사나우며 인정이 없고 시기심이 많아 남을 헤치려는 마음이 강합니다. 그는 왕에 대해서도 원한이 깊어 큰 화를 안겨줄 것입니다. 예전에 왕께서 제나라를 치려했을 때에도 오자서는 반대했으나 크게 승리하셨습니다. 어자서는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부끄럽게 여긴 나머지 왕을 원망했습니다. 이제 왕께서 제나라에 출병하려고 하자 강력히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나라가 패함으로써 자신의 계책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이제 왕께서 친히 출정하시고 나라의 모든 군사를 총동원하여 제나라를 친다면 오자서는 자신의 계책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데 불만을 품고 병을 핑계로 출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그가 화를 일으키는 것은 쉬운 일이나 왕께서는 이에 대한 방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신이 사람을 보내 알아본 바 오자서는 제나라의 사신으로 갔을 때 제나라 포씨에게 아들을 맡기고 왔다 합니다. 왕께서는 조속히 조치를 내리셔야 합니다.”
오나라 왕이 말했다.
“그대의 말이 아니더라도 과인은 오자서를 의심하고 있었소.”
왕은 오자서에게 사자를 시켜 촉루라는 칼을 하사하면서 자결을 명하자 오자서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아, 슬프도다. 간신 백비가 난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왕은 오히려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나는 그의 부친을 패자에 오르도록 하였고, 왕이 되기 전 여러 공자들이 태자의 자리를 놓고 다툴 때는 목숨을 걸고 선왕에게서 그 자리를 물려받게 하였다. 왕의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오나라를 나누어 내게 준다고 했을 때에도 나는 바라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간신의 말을 듣고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그리고는 가신에게 말했다.
“내 무덤 옆에 반드시 향오동나무를 심어서 그 나무가 자라거든 왕의 관을 만들어라. 나중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내 눈을 빼서 오나라 동문에 걸어두도록 하라.”
그리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자진했다. 이 말을 들은 부차는 크게 진노하여 오자서의 시신을 말가죽에 싸서 장강에 띄우도록 했다. 오자서를 불쌍히 여긴 사람들이 그를 불쌍히 여겨 강 언덕에 사당을 세웠으니 그 사당을 서산(胥山)이라 불렀다.
부차는 오자서를 죽인 후 마침내 제나라를 쳤다. 그 무렵 제나라에서는 포씨가 군왕인 도공을 죽이고 양생을 왕으로 세웠다. 오나라 왕은 제나라의 포씨를 치려고 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2년 뒤 오나라 왕은 노나라와 위나라 왕을 불러 맹약을 맺었다. 그 이듬해에는 북쪽 제후들과 황지에서 맹약하여 주나라 왕실의 명을 따르도록 했다. 그 사이에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를 습격하여 태자를 죽이고 군사를 무찔렀다. 이 소식을 들은 오나라 왕은 서둘러 월나라와 화친을 맺었다.
그로부터 9년 뒤, 구천은 마침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왕인 부차를 죽였다. 또한 군왕에게 불충하고 다른 나라로부터 많은 뇌물을 받고 구천 자신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백비 또한 죽음을 명했다.
태사공은 말한다.
원한이 사람에게 끼치는 해독은 정녕 얼마나 무서운가. 임금일지라도 신하에게 원한을 사서는 안 되거늘 하물며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끼리야 오죽하겠는가? 만일 오자서가 일찍이 아버지 오사를 따라 함께 죽었더라면 땅강아지나 개미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는 작은 의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음으로써 후세에 이름을 남겼으니 그 뜻이 가상하다! 오자서가 초나라에 쫓겨 장강 기슭에서 걸식을 하기도 했으나 어찌 한시인들 초나라 도읍 영을 잊을 수 있었겠는가. 그는 모든 고통을 참고 견뎠기에 공명을 이룰 수 있었다. 강인한 장부가 아니고서는 어찌 이런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정리 :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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