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⑵
제나라 대부 전상(田常)이 난을 일으키고자 했으나 제나라에서 세력이 큰 고씨, 국씨, 포씨, 안씨 등의 세력이 무서워서 그들의 군대를 합쳐 노나라를 치기로 했다.
공자는 이 소식을 듣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노나라는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부모의 나라이다. 이 나라가 이처럼 위기에 놓여 있는데 어찌하여 그대들은 이 난국을 타개하고자 나서지를 않는 것이냐?”
이 말을 듣고 자로가 나서기를 청하자 공자는 그를 제지했다. 자장과 자석이 나서기를 청했으나 역시 허락하지 않았다. 자공이 나서기를 청하자 공자는 비로소 승낙했다. 자공은 제나라로 가서 전상을 만나 그를 달랬다.
“상공이 노나라를 치려고 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노나라는 치기 힘든 나라입니다. 그 나라의 성벽은 얇고 낮으며, 그 못은 좁고 얇으며, 임금은 어리석고 어질지 못하며, 신하들은 거짓되고 쓸모없으며, 또 별사들과 백성은 전쟁을 싫어하기 때문에 싸울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나라를 치는 쪽이 유리합니다. 오나라는 성벽이 높고 두꺼우며, 못은 넓고 깊으며, 무기는 튼튼하고 새 것이며, 병사들은 용감무쌍하고 식량도 충분합니다. 새로 만든 무기와 정예 병사들이 그 성안에 모두 들어있습니다. 또 현명한 장수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어 이런 나라는 치기가 쉽습니다.”
전상은 그 말을 듣고 버럭 성을 냈다.
“그대가 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쉽게 생각할 것이며, 그대가 쉽다고 하는 곳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어려운 곳이오. 이렇듯 상식과 동떨어진 말을 내게 들려주는 이유가 과연 무엇이오?”
이에 자공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걱정이 안에 있는 사람은 강한 나라를 치고, 걱정이 밖에 있는 사람은 약한 나라를 친다>고 합니다. 듣건대 제나라 임금께서는 상공을 세 번이나 군(君)에 봉하려 했으나 세 번 다 이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곧 제나라 대신들 가운데 반대하는 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노나라를 쳐서 제나라의 영토를 넓힌다면 제나라 임금의 마음을 더욱 교만하게 할 터이고, 노나라를 친 것으로 인해 대신들의 위세만을 더하게 될 것입니다. 상공의 공로는 인정받지 못하게 되고 임금과의 거리만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결국 상공께서는 위로는 임금의 마음을 교만하게 만들고, 아래로는 신하들을 방자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되므로 상공께서 뜻하는 큰일을 이룩하기가 어렵게 될 뿐입니다. 일반적으로 임금이 교만해지면 제멋대로 하고 신하들이 방자해지면 권력을 다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제나라에서 상공의 위치는 더욱 좁아질 것이고 임금과의 거리만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나라를 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오나라를 공격하여 이기지 못할 경우 백성은 나라 밖에서 죽고, 대신들은 나라 안에서 그 지위를 잃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상공의 위로는 강한 적이 없어지게 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비난을 받지 않을 터이니 임금을 고립시켜 제나라를 마름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상공뿐입니다.”
“과연 그렇겠소. 그렇지만 우리 군대는 이미 노나라를 향하고 있소. 노나라를 버리고 오나라를 향해 간다면 대신들이 의심할 것이니 어떻게 하면 좋겠소?”
자공이 대답했다.
“상공께서는 군대를 붙들어 놓고 노나라를 공격하지 마십시오, 그 동안에 내가 오나라 왕에게로 가서 오나라가 노나라를 도와 제나라를 치도록 설득하겠습니다. 그 때 상공께서는 군대를 이끌고 오나라를 맞아 싸우면 됩니다.”
전상은 이를 허락하고 자공에게 남쪽으로 가서 오나라 왕을 만나도록 했다. 자공은 오나라 왕을 이렇게 설득했다.
“신은 <왕자는 다른 나라의 뒤를 끊는 일이 없고, 패자는 적국을 강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1000균(鈞 1균은 30근)의 무게도 1수(銖)나 1량(兩)의 작은 무게를 더하여 이루어집니다. 지금 전차 1만대의 제나라가 전차 1000대의 노나라를 끌어들여 오나라와 세력을 겨루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점 왕을 위해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노나라를 구원하는 것은 명분을 살리는 일이고, 제나라를 친다는 것은 큰 이익을 얻는 일입니다. 사수(泗水) 주변의 제후들을 회유하여 포악한 제나라를 멸하고, 다시 진나라를 굴복시킨다면 그 이익은 막대할 것입니다. 망해가는 노나라를 존속시킨다는 명분을 살리되 실제로는 강한 제나라를 어려움에 빠지게 하자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런 계책을 지체 없이 실행에 옮길 것입니다.”
“알겠소. 그러나 나는 일찍이 월나라와 싸움을 하여 월나라 왕을 회계산으로 몰아넣은 적이 있었소. 그런 뒤로 월나라 왕은 원한을 갖고 군사를 기르면서 내게 보복할 날만 기다리고 있소. 그러니 내가 월나라를 칠 때까지 기다려 주면 내 선생의 말대로 따르리다.”
“월나라의 힘이란 약한 노나라보다도 더 나을 것이 없습니다. 왕께서 제나라를 내버려 둔 채 월나라를 친다면 그동안 제나라는 노나라를 평정할 것입니다. 또한 왕께서는 바야흐로 망해가는 나라를 존속시켜 끊어지려는 후대를 이어주는 것을 명분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런데 작은 월나라를 치고 강한 제나라를 두려워하는 것은 용기가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용기 있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곤경에 빠진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지 않으며, 지혜가 있는 사람은 때를 놓치지 않고, 왕은 남의 나라 뒤를 끊지 않음으로써 그 의를 세웁니다. 지금 월나라를 그대로 둠으로써 제후에게 어질다는 것을 보여주게 되고, 노나라를 구원하여 제나라를 치고 그 위력을 진나라에 더하게 된다면 제후들은 반드시 서로 앞 다투어 고개를 숙이고 찾아들 것이니 패업(霸業)을 이룩하게 될 것입니다. 왕께서 월나라가 염려된다면 신이 동쪽으로 가서 월나라 왕을 만나 월나라로 하여금 군사를 보내 오나라가 제나라 치는 일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실제로는 월나라를 텅 비게 만들게 되며, 명분상으로는 제후를 거느리고 제나라를 친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나라 왕은 매우 기뻐하며 자공을 월나라로 가도록 했다.
자공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월나라 왕 구천은 길을 깨끗이 쓸고 교외까지 나와 자공을 맞이한 다음 몸소 자공의 수레를 몰아 자공을 숙소까지 데려다주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 오랑캐 나라에 대부께서는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자공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에 제가 오나라 왕에게 노나라를 도와 제나라를 치라고 권했습니다. 오나라 왕은 그것을 바라고 있으나 다만 월나라가 걱정이 되어 ‘월나라를 쳐서 없앨 때까지 기다려 주면 그렇게 하겠소’하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오나라가 월나라를 반드시 깨뜨리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남에게 보복을 뜻이 없으면서도 상대방으로부터 의심을 갖도록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남에게 보복할 뜻이 있는데 이것을 알아차리게 한다면 이는 서투르고 위태로운 일입니다. 또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새어 나간다면 이는 더욱 위험한 일입니다. 이 세 가지는 일을 하는 데 있어 큰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월나라 왕 구천은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고 말했다.
“저는 일찍이 제 자신의 힘을 헤아리지 않고 오나라와 싸워 회계산에서 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의 통분함은 뼛속에까지 사무쳐 밤낮으로 복수할 생각에 입술이 타들어가고 혀가 마릅니다. 그저 오나라 왕을 죽이고 나도 함께 죽는 것이 바람입니다.”
구천은 자공에게 어떻게 하면 복수를 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오나라 왕은 사람 됨됨이가 용맹스럽고 모질어 뭇 신하들이 견뎌 내기가 어려울 지경이고, 나라는 잦은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졌으며, 군졸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심정에 빠져 있습니다. 백성들은 왕을 원망하고 있고 대신들은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충신 오자서는 간하다가 죽었고, 태제 백비는 말로는 정치를 하고 있으나 임금의 잘못을 그대로 따르며 자신의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나라를 망치는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만일 왕께서 응원군을 보내 오나라 왕의 뜻을 받드는 한편, 귀중한 보물을 보내 환심을 사고 정중히 예를 갖춘다면 오나라 왕은 틀림없이 제나라를 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만일 오나라 왕이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그것은 왕의 복이 되는 일이요, 설령 이기더라도 반드시 여세를 몰아 진나라를 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북쪽으로 올라가 진나라 왕을 만나 함께 오나라를 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오나라를 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오나라 정예군사들은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있는 힘을 다해 싸울 것이고, 튼튼한 무기로 무장한 군사는 진나라에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니 왕께서 이 틈을 노려 공격한다면 오나라는 반드시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월나라 왕은 크게 기뻐하며 허락하였다. 그래서 자공이 떠날 때 황금 백일(鎰)과 칼 한 자루, 좋은 창 두 자루를 선물하였다. 그러나 자공은 그것을 받지 않고 오나라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자공은 오나라에 와서 오나라 왕에게 보고했다.
“신은 삼가 대왕의 말씀을 월나라 왕에게 전했습니다. 월나라 왕은 크게 송구스러워하면서 ‘저는 불행하게도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분수도 생각하지 못한 체 오나라에 대해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싸움에 패해 몸은 욕을 당하여 회계산에서 숨어 살게 된 까닭으로 나라는 폐허가 되어 잡초만이 무성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대왕의 은혜를 입어 다시 조상의 제사를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죽어도 이 은혜는 잊을 수 없습니다. 어찌 감히 오나라에 대해 음모를 꾸밀 수 있겠습니까?’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닷새 뒤에 월나라는 대부 문종을 사신으로 보내왔는데, 그는 머리를 조아리며 이렇게 말했다.
“동해 구천의 사자 신 문종이 삼가 예를 갖추어 측근의 신하를 통해 대왕께 문안드립니다. 삼가 듣자옵건대 대왕께서는 이번에 대의의 군사를 일으켜 강자를 징벌하고 약자를 구원하며 포악한 제나라를 징계하여 주나라 왕실을 편안하게 하고자 하신다는 말을 듣고 우선 저의 나라 사졸 3000명을 모조리 동원시키고 월나라 왕이 스스로 갑옷을 두르고 맨 앞에서 적의 화살과 돌을 받고자 하옵니다. 월나라의 천한 신하 문종에게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갑옷 스무 벌과 도끼, 굴로라는 장인이 만든 창, 다닐 때 빛이 나는 칼을 올려 출정을 축하드리도록 하였습니다.”
오나라 왕은 매우 기뻐하며 자공에게 물었다.
“월나라 왕이 몸소 과인의 제나라 정벌에 따라 나서겠다고 하는데 허락해도 괜찮겠소?”
자공이 대답했다.
“그건 아니 됩니다. 남의 나라를 텅 비게 만들어 놓고 그 군사를 있는 대로 다 동원시키고 나서 또 그 임금마저 싸움터에 나가게 하는 것은 의롭지 않는 일입니다. 왕께서는 월나라의 예물을 거두시고 그 군사만은 허락하신 다음, 그 임금만은 사양하십시오.”
오나라 왕은 자공의 권고를 받아들여 월나라 왕이 전쟁에 참가하는 일은 사양하였다. 오나라 왕은 마침내 아홉 고을의 군대를 동원시켜 제나라를 치게 되었다.
자공은 진나라로 가서 정공에게 말했다.
“신은 생각이 먼저 정해지지 않으면 적을 이길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제나라와 오나라가 싸우려 하고 있는데, 만일 이 싸움에서 오나라가 지면 월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할 것이고, 오나라가 이기면 반드시 여세를 몰아서 진나라로 쳐들어올 것입니다.”
진나라 왕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물었다.
“그럼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요?”
자공이 말했다.
“군대를 잘 갖추어 병사들을 편히 쉬게 하고 기다리십시오.”
진나라 왕은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했다. 자공은 진나라를 떠나 이번엔 노나라로 돌아왔다. 오나라 왕은 예정대로 제나라와 싸워 크게 이기고 적의 장군 일곱 명이 이끄는 군사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곧장 돌아가지 않고 진나라를 향해 진군했다. 그리하여 진나라 군사와 황지(黃地)에서 마주쳤는데 서로 강함을 겨뤘으나 진나라가 공격하여 크게 이겼다. 월나라 왕은 이 소식을 듣게 되자 강을 건너 오나라를 습격하여 도성 밖 칠 리쯤에 주둔하였다. 오나라 왕은 이러한 급보에 진나라를 버리고 돌아와 월나라와 오호(五湖)에서 싸웠으나 세 차례 모두 지고 말았다. 결국 월나라 군대에게 도성까지 내주었다. 월나라 군대는 오나라 궁궐을 에워싼 뒤 오나라 왕 부차를 죽이고 재상 백비의 목을 베었다. 월나라는 오나라를 무너뜨린 지 3년 뒤에 동방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이와 같이 자공이 한 번 나섬으로 인해 노나라를 보존시키고 제나라를 뒤흔들었으며,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진나라를 강대하게 만들었다. 또 월나라를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게 만들었다. 즉 자공이 한 번 뛰어다니더니 각국의 형세를 뒤바꾸어놓았고, 10년 동안 5개국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만들었다.
자공은 또 평소에 물건을 사서 저장해 두었다가 비싸게 내다 파는 일을 잘해 재산을 모았다. 그는 남의 장점을 칭찬하기를 좋아했으나 남의 잘못을 덮어주지는 못했다. 그는 일찍이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재상을 지냈으며 집안에 천금을 쌓아놓고 살기도 했다. 그는 제나라에서 일생을 마쳤다. <정리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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