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열전(長儀列傳) (4)
장의는 지금까지의 일을 보고하기 위해 진나라로 갔다. 그러나 함양에 이르기도 전에 진나라에서는 혜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왕위에 올라 있었다.
무왕은 태자 때부터 장의를 좋아하지 않았다. 무왕이 왕위에 오르기가 무섭게 신하들이 장의를 헐뜯기 시작했다.
“장의는 말과 행동에 믿음이 없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나라를 팔고 있는데 자신의 출세만을 꾀하고 있어 그를 다시 등용한다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제후들은 장의와 무왕 사이에 틈이 벌어진 사실을 알고는 모두 연횡 약속을 깨고 다시 합종했다.
진나라 무왕 원년. 신하들은 밤낮으로 장의를 비방했다. 제나라에서도 사신을 보내 장의를 신의 없는 사람이라고 꾸짖었다. 장의는 이러한 상황에서 죽게 될까 봐 두려워 무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신이 변변치 못하지만 한 계책이 있으니 말씀 올리게 해주십시오.”
“무슨 계책이오?”
“진나라를 위해 계책을 생각해 보건대, 대왕께서 제후들의 땅을 많이 얻고자 한다면 동쪽에서 큰 변란이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 제나라 왕이 신을 몹시 미워한다고 하니 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초한 신은 위나라로 가고자 합니다. 신이 그곳으로 가면 제나라는 틀림없이 위나라를 칠 것입니다. 위나라와 제나라의 군사가 성 아래에서 싸우면, 대왕께서는 그 틈을 타 한나라를 쳐서 삼천으로 들어가시고, 군사를 함곡관 밖으로 내보내어 바로 주나라로 진격하면 천자의 제기를 틀림없이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천자를 끼고 천하의 토지와 호적을 살펴서 제후들을 호령하는 일이야말로 왕업인 것입니다.”
진나라 왕은 이 말을 듣고 그럴 듯 하다 여긴 다음 전차 30대를 갖추어 장의를 위나라로 보냈다. 제나라는 과연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를 쳤다. 위나라 애왕이 두려워하자 장의가 말했다.
“대왕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이 제나라 군사를 물러가게 하겠습니다.”
장의는 가신 풍희를 초나라로 보내 초나라 사자라는 이름을 빌려 제나라로 들어가게 했다. 풍희가 제나라 왕에게 말했다.
“대왕께서는 장의를 심히 미워하면서도 어찌 그리도 그를 두텁게 대하는 것입니까?”
제나라 왕이 말했다.
“과인은 장의를 미워하오. 그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출병하여 그를 칠 것이오. 내 어찌 장의를 두텁게 대한단 말이오?”
풍희가 대답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그를 두텁게 대하는 것입니다. 장의는 위나라로 가면서 진나라 왕과 약속을 이렇게 했습니다. ‘진나라를 위한 계책을 생각해 보건대, 대왕께서 제후들의 땅을 많이 얻으려면 동쪽에 큰 변란이 일어나야만 합니다. 제나라 왕은 신을 매우 미워한다고 합니다. 제나라는 군사를 일으켜 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치려고 할 것입니다.불초한 신은 위나라로 가고자 합니다. 신이 그곳으로 간다면 제나라는 틀림없이 위나라를 칠 것입니다. 위나라와 제나라가 성 아래에서 싸우면 대왕께서는 그 틈을 타 한나라를 치고 삼천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군사를 함곡관 밖으로 내보내 바로 주나라로 진격한다면 천자의 제기를 반드시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진나라 왕은 전차 30대를 갖추어 장의를 위나라로 보냈습니다.
지금 장의는 위나라로 가 있고, 대왕께서는 위나라를 치셨는데, 이는 안으로는 국력을 소모하고 밖으로는 동맹국을 쳐 적을 만드는 것입니다. 제나라 스스로 진나라 왕이 장의를 신임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이 신이 대왕께 두렵게 대한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제나라 왕이 말했다.
“과연 그렇군.”
그리고는 즉시 군사를 퇴각시켰다.
장의는 위나라 재상으로 있은 지 일 년 만에 위나라에서 죽었다.
사람 됨됨이는 그 주위 사람이 제대로 알 수 있다
진진(陳軫) 역시 유세객이다. 장의와 함께 진나라 혜왕을 섬기며 함께 중용되어 군왕의 총애를 앞 다투었다. 장의가 진진을 헐뜯으며 왕에게 말했다.
“진진이 많은 예물을 가지고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를 왕래하는 것은 양국 간의 국교를 위해서인데, 그럼에도 지금 초나라가 진나라와 가까워지지 않고 오히려 진진과 가까운 것은 진진이 대왕보다 영리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진진은 이제 진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가려고 하는데 대왕께서는 어찌 그 연유를 묻지 않으십니까?”
왕이 진진에게 말했다.
“듣자 하니 그대는 진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가려고 한다는데 그 말이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장의가 말한 게 사실이군.”
그러자 진진이 이렇게 말했다.
“장의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길 가는 사람들도 죄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옛날 오자서는 군왕에게 충성을 다하여 천하의 제후들이 모두 그를 얻으려고 다투었고, 증삼은 어버이께 효도를 가하여 천하의 어버이 된 자가 모두 그와 같은 아들을 갖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노비도 그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팔리면 좋은 노비이고, 소박대기라도 그 마을 안에서 재혼하면 좋은 부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제가 대왕께 충성스럽지 않다면 초나라에선들 저를 어찌 충성스러운 자로 여기겠습니까? 충성을 다해도 이제 버림받으려 하니 신이 초나라로 가지 않으면 어디에 몸을 의탁하겠습니까?”
왕은 진진의 말을 듣고 옳다고 여겨 그 뒤로 그를 잘 대해 주었다.
진진이 진나라에 온 지 한 해가 되었을 때 진나라 혜왕이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그러자 진진은 초나라로 달아났다. 초나라는 그를 중용하기에 앞서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진진이 위나라를 지날 때 서수를 만나려고 했으나 서수는 거절했다. 진진이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할 말이 있어 부러 왔는데 그대는 만나주지 않는구려. 이제 이곳을 떠난다면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오.”
이에 서수가 진진을 만나자 진진이 말했다.
“공은 어찌하여 술을 좋아하시오?”
“할 일이 딱이 없어서입니다.”
“그렇다면 신물이 나도록 그대를 바쁘게 해주어도 되겠소?”
“어떻게 한다는 것이오?” 진진이 말했다.
“위나라 재상 전수는 제후들과 합종을 맺으려 하지만, 초나라 왕은 아직 그대를 의심하고 있소. 공은 왕에게 ‘신은 연나라, 조나라 왕과 일찍부터 알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람을 보내 말하기를, 일이 없으면 어찌하여 자신에게 오지 않느냐고 하십니다. 그러나 신이 연나라와 조나라에 가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말씀드리시오. 왕이 허락하더라도 수레를 너무 많이 준비하지 말고, 서른 대 정도만 뜰에 늘어놓고서 연나라와 조나라로 간다고 소문을 내시오.”
이수가 시킨대로 그대로 하자 위나라에 와 있던 연나라와 조나라의 유세객들이 이 소식을 듣고 북쪽으로 수레를 몰아 군왕에게 보고했다. 연나라와 조나라는 사람을 보내 서수를 맞아들이려 했다. 초나라 왕이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며 말했다.
“전수는 과인과 약속을 한 바 있다. 그런데도 서수가 연나라와 조나라로 가는 것은 과인을 속인 것이다.”
그러고는 위나라와 합종하기를 거절했다. 제나라는 서수가 북쪽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 국가를 위임했다. 서수가 북쪽으로 가자 제나라 · 연나라· 조나라 세 나라의 정사가 모두 서수에 의해 결정되었다.
마침내 진진이 진나라에 도착했다.
그 무렵 한나라와 위나라는 서로 싸운 지 1년이 지나도록 서로 화해를 못하고 있었다. 진나라 혜왕이 이를 풀어주고자 신하들에게 물었다. 어떤 자는 화해를 주선하는 것이 이롭다고 하고, 어떤 자는 주선하지 않는 것이 이롭다고 했다. 혜왕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마침 진진이 왔다. 혜왕이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초나라에 가서도 과인을 생각했소?“
“대왕께서는 월나라 사람 장석의 이야기를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듣지 못했소.”
진진이 말했다.
“월나라 사람 장석은 초나라에서 집규 자리에 올랐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병에 걸렸습니다. 초나라 왕이 ‘장석은 원래 월나라의 미천한 자로서 지금은 초나라에서 집규 자리에 올라 부귀한 신분이 되었다. 그는 지금도 월나라를 생각할까’라고 묻자 시종관이 ‘무릇 사람이 고향을 생각하는 것은 병이 들었을 때입니다. 그가 월나라를 생각한다면 월나라 말을 할 것이고, 월나라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초나라의 말을 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했더니 월나라 말을 했다고 합니다. 비록 신이 버림받고 쫓겨나 초나라로 갔지만 어찌 진나라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좋소.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싸운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 해결이 나지 않았소. 어떤 사람은 화해를 주선하는 것이 이롭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주선하지 않는 것이 이롭다고 하는데, 과인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소. 그대는 초나라 왕을 위해 계책을 내는 것처럼 과인을 위해 계책을 말해 보시오.”
“대왕께서는 변장자가 호랑이를 찔러 죽인 이야기를 들어 보셨습니까? 변장자가 호랑이를 찔러 죽이려고 하자 주막의 심부름꾼 아이가 말하기를, ‘호랑이 두 마리가 이제 소를 잡아먹으려고 합니다. 먹어 보고 맛이 있으면 틀림없이 서로 다툴 것이고, 다투게 되면 반드시 싸울 것입니다. 그리되면 큰 호랑이는 상처를 입을 것이고, 작은 호랑이는 죽게 되겠지요. 이때 상처 입은 호랑이를 찌르면 한 번에 두 마리를 잡았다는 명성을 얻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변장자는 그럴 것이라 여기고 서서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 과연 두 호랑이가 서로 싸웠는데, 큰 호랑이는 상처를 입고 작은 호랑이는 죽었습니다. 변장자는 상처 입은 호랑이를 찔러 죽임으로써 과연 한 번에 두 마리 호랑이를 잡았다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싸운 지 1년이 지나도 해결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분명 큰 나라는 상처를 입고 작은 나라는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상처 입은 나라를 치면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으리니, 이는 변장자가 호랑이를 찔러 죽인 것과 같습니다. 신이 폐하를 위해 내는 계책이 어찌 다를 수가 있겠습니까?“
혜왕이 진진의 말이 옳다고 여겨 끝내 두 나라의 화해를 주선하지 않았다. 그러자 과얀 큰 나라는 상처를 입고 작은 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이에 진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크게 이겼으니, 이것이 모두 진진의 계략에 의한 것이었다.
자기보다 나은 자를 밝고 일어선다
서수는 위나라 음진 사람으로 이름은 연이고 성은 공손이다. 장의와는 사이가 좋지 않아 장의가 진나라를 위해 위나라로 가자 위나라 왕은 장의를 재상으로 삼았다. 서수는 이것이 이로운 일이 아니라고 여겨 한나라 태자 공숙에게 사람을 보내 이렇게 말했다.
“장의는 이미 진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힘을 합치도록 했습니다. 그는 ‘위나라가 한나라의 남양을 치고 진나라가 한나라의 삼천을 치면, 한나라는 분명 망하고 말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위나라 왕이 장의를 중히 여기는 것은 한나라 땅을 얻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나라 남양은 위태롭습니다. 어찌하여 그대는 제게 작은 일이라도 맡겨 공을 세우도록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진나라와 위나라의 교류는 끊을 수 있으며, 위나라는 분명 진나라를 공략할 생각으로 장의를 버리고 한나라와 한편이 되어 저를 재상으로 삼을 것입니다.”
공숙은 서수의 말대로 하는 것이 이로울 것이라고 여겨 그에게 국사를 맡겨 공을 세울 수 있도록 했다. 서수가 결국 위나라 재상이 되자 장의는 위나라를 떠났다.
서융의 일족인 의거의 왕이 위나라에 입조했다. 서수는 장의가 다시 진나라 재상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불리하다 여겨 의거의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귀국은 길이 멀어 오늘 헤어지면 두 번 다시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기회를 빌려 진나라의 일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중원의 제후들이 진나라를 치지 않는다면, 진나라는 귀국을 쳐 집을 불사르고 재물을 약탈할 것입니다. 반면 제후들이 진나라를 치면 진나라는 서둘러 귀국에 사신을 보내 많은 뇌물을 바칠 것입니다.”
그후 다섯 나라가 연합하여 진나라를 쳤다. 진진이 진나라 왕에게 말했다.
“의거의 왕은 오랑캐 중에서도 현군입니다. 뇌물을 보내 그를 달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진나라 왕은 이 말을 듣고 받아들여 비단 천 필과 여인 백 명을 의거의 왕에게 받쳤다. 의거의 왕이 뭇 신하들에게 말했다.
“이야말로 공손연이 말한 대로구나.”
그러고는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습격하여 이백 부근에서 크게 격파했다. 장의가 죽은 후 서수는 진나라로 들어가 재상이 되었다. 한때 그는 다섯 나라의 재상이 되어 랍종을 추진했던 우두머리였다.
태사공은 말한다.
삼진(한나라 · 위나라 · 조나라)에는 권모와 임기응변에 능한 자들이 많았다. 합종과 연횡을 주장하면서 진나라를 강하게 만든 자들은 대게 삼진 출신이다. 장의의 사적은 소진보다 훨씬 간교했음에도 세상 사람들은 장의보다 소진을 미워한다. 이는 소진이 죽은 후 장의가 그의 허물을 부풀려 자신의 주장을 유리하게 함으로써 연횡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두 사람은 천하를 뒤집을 수 있는 위험한 자들이다. <장의열전 끝, 다음 호에 계속> <정리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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