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 · 왕전 열전(2)
왕전(王翦)은 빈양 땅의 동향 사람으로 젊어서부터 병법을 좋아하고 진나라 시황제를 섬겼다. 시황제 11년에 왕전은 군사를 거느리고 조나라의 알여를 침략해 아홉 개 성을 빼앗았다. 시황제 18년, 왕전은 다시 군사를 거느리고 조나라를 침략했다. 한 해 남짓해서 마침내 조나라를 점령하여 왕을 항복시키고 조나라 땅은 모두 진나라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듬해 연나라는 자객 형가를 보내 진나라 왕을 죽이려 했다.(나중 자객열전에서 이야기 할 것임) 이에 진나라 왕은 왕전을 시켜 연나라를 치게 했다. 연나라 왕희는 요동으로 달아났고, 왕전은 연나라 수도인 계(薊)를 평정하고 돌아왔다. 이어 진나라는 왕전의 아들 왕분을 시켜 초나라를 치게 하여 쳐부수고, 다시 군사를 돌랴 위나라를 쳐 왕의 항복을 받았다. 이로써 마침내 위나라를 평정할 수 있었다. 시황제는 삼진을 멸하고 연나라 왕을 패주시켰으며 초나라 군사를 여러 차례 격파했다.
진나라 장수 이신은 나이가 젊다보니 혈기가 왕성했다. 일찍이 군사 오천을 데리고 연나라 태자인 단을 추격하여 그를 사로잡았다. 시황제는 이신을 현명하다고 여겨 이렇게 물었다.
“과인은 초나라를 치려고 하는데 그대 생각으로는 얼마만큼의 병력이면 가능하겠는가?”
“20만 명만 있으면 되옵니다.”
시황제는 똑 같은 말을 왕전에게도 물었다. 왕전이 대답했다.
“적어도 60만 명은 있어야 합니다.”
시황제가 말했다.
“왕 장군도 이제는 늙었구려. 그리도 겁이 많아서야. 이 장군은 과단성이 있고 용감하니 그의 말이 맞을 것이오.”
마침내 시황제는 이신과 동영에게 명하여 20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남쪽의 초나라를 치게 했다. 왕진은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병을 핑계로 고향인 빈양으로 돌아가 은거하였다. 이신과 몽염은 각각 평여와 침구를 쳐 초나라 군사를 대비했다. 이신은 또 언과 영 땅을 공략한 뒤 군사를 돌려 서쪽으로 가서 몽염과 성보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초나라 군사는 숙영도 하지 않고 진나라 군사의 뒤를 3일 밤낮으로 추격하여 이신의 군사를 대파하고 두 개의 성을 침입하여 일곱 명의 도위를 죽였다. 결국 진나라 군사는 패하여 달아났다. 시황제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친히 빈양까지 달려 왕전을 만나 사과했다.
“과인이 장군의 말을 듣지 않아 결국 이신이 진나라 군사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소, 지금 초나라 군사는 날마다 서쪽을 향해 진군하고 있다고 하오. 장군은 병중이라고는 하나 어찌 차마 과인을 버릴 수 있겠소?”
“노신은 이제 병들고 지쳐 머리마저 어지럽습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더욱 현명한 장수를 물색하십시오.”
“그러지 마시오, 장군은 두 번 다시 그런 말을 하지 마시오.”
“만약 왕께서 제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60만 명이 아니면 안됩니다.”
“장군의 생각대로 하시구려.”
이에 왕전은 60만 대군을 거느리고 떠나려고 할 때 시황제가 친히 패상까지 전송했다. 왕전은 떠나기 전 아름다운 정원과 전답과 저택을 갖고 싶다고 하자 시황제가 말했다.
“걱정 말고 떠나시오, 어찌 가난 따위를 걱정하시오.”
왕전이 말했다.
“왕의 장수 중에는 공훈이 있어도 봉후에 오른 자가 없습니다. 지금 왕께서는 제게 관심을 보이시니 이때를 빌어 저도 원지를 하사해 주실 것을 청하는 바이고, 자손들을 위해 재산을 얻어 두려는 것입니다.”
시황제가 크게 웃었다. 왕전은 함곡관에 도착한 뒤에도 다섯 번이나 사자를 보내 시황제에게 논밭과 집을 장만해 줄 것을 간청했다. 곁에서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장군의 요청이 너무 지나친 게 아니오?”
왕전이 말했다.
“그렇지 않소. 왕은 성격이 거칠고 남의 말을 믿지 않는 경향이 있소. 그런데도 지금 진나라의 전 병력을 내게 맡겼소. 내가 많은 논밭과 집을 받아 자손을 위해 재산을 모으고 내 지위를 든든히 하려고 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왕께서는 내가 행여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줄 의심할 것이요.”
왕전은 이신을 대신하여 초나라를 공격했다. 초나라에서는 왕전이 대거 반격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전 병력을 동원하여 진나라에 대항했다. 초나라에 도착한 왕전은 성을 굳게 닫고 지키기만 할 뿐 싸우려들지 않았다. 초나라 군사가 여러 번 싸움을 걸어도 응전하지 않았다. 대신 왕전은 매일 군사들을 쉬게 하고 목욕을 시켰으며 그들에게 충분한 음식을 주고 자신 또한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얼마 후 왕전이 호위병들에게 물었다.
“진중에서 병사들이 어떤 놀이를 하더냐?”
“돌 던지기와 뛰어넘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왕전이 말했다.
“이제 병사들이 출전을 할 수 있겠구나.”
초나라 군사들은 진나라에게 여러 번 싸움을 걸었으나 응전하지 않자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왕전은 전군을 몰아 추격하여 초나라 군사를 대파했다. 기수에서 초나라 장수 항연을 죽이자 초나라 군사는 마침내 패주했다. 진나라는 승세를 타고 초나라 성읍을 계속 공략했다. 1년 남짓하여 초나라 왕 부추를 사로잡았고, 마침내 초나라를 평정하여 진나라의 군현으로 만들었다.
이어 진나라는 남쪽으로 군사를 몰아 백월의 군주를 정복했다. 그 사이에 왕전의 아들 왕분은 이신과 함께 연나라와 제나라를 쳐 평정했다. 시황제 26년, 드디어 진나라는 천하를 평정했는데, 여기에는 왕씨와 몽씨의 공이 컸으며, 그 이름은 후세까지 전해졌다.
진나라 2세 황제 때 왕전과 그 아들 왕분은 모두 죽었으며, 몽씨 또한 죽음을 당했다. 진승이 진나라에 반기를 들자 진나라에서는 왕전의 손자인 왕리를 보내 조나라를 치게 했다. 왕리는 조나라 왕과 장이를 거록성에서 포위했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왕리는 진나라의 명장이오. 지금 강한 진나라 군사를 이끌고 이제 막 일어난 초나라를 이기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소?”
그러자 어느 객이 말했다.
“그렇지 않소. 3대에 걸쳐 장군인 사람은 반드시 지는 법이오. 할아버지랑 아버지가 사람을 많이 죽였기 때문에 그 자손이 화를 입게 되기 때문이오. 왕리는 3대째 장군이오.”
얼마 후 항우가 조나라를 도와 진나라 군사를 쳐 왕리를 사로잡았다. 왕리의 군사는 마침내 제후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태사공은 말한다.
전해 오는 말에 “자(尺)에도 짧은 것이 있고, 치(寸)에도 긴 것이 있다”고 했다. 백기는 적의 힘을 헤아려 상황에 따라 적절한 계책을 세움으로써 그 이름을 천하에 떨쳤다. 그러나 응후가 꾸민 화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왕전은 진나라의 장수가 되어 여섯 나라를 평정했는데, 시황제는 노련한 장수였던 그를 스승으로 받들었다. 그러나 황제를 보필하여 덕을 세우고 그 기틀을 튼튼히 하는 데 이바지하지 못하고, 단지 황제의 뜻에 맞추어 그의 환심을 사가며 일생을 마쳤을 뿐이다. 그의 손자 왕리가 황우에게 사로잡힌 것은 마땅하지 않는가? 그들에게는 각기 단점이 있었다. <다음 호에는 맹상군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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