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여름에 쓴 겨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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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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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쓴 겨울 이야기

아내가 낙상을 했다. 지난겨울이었다.

“추운 날씨에 길도 얼었으니까 정신 바싹 차리고 조심해 걸으세요.”

겨울로 접어든 이래 현관을 나서는 내 뒤통수에 대고 노상 그렇게 말하던 사람이다.

집 앞 가게에 갔다 나오다가 가볍게 눈이 내린 뒤의 빙판 길에서, 그것도 밤이 깊은 시각에 넘어져 사고가 발생한 거다. 왼쪽 발등과 오른쪽 손등이 부어올랐다. 양쪽 다 뼈의 일부가 금이 갔다나.

6주 동안 다친 손과 발은 사용하지 말고 안정하라는 것이 상처를 진단하고 치료할 의사의 말. 그런 당부가 아니더라도 깁스를 한 왼발과 오른 손은 꼼지락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 불상사는 우리 부부가 조용히 감당하자는 데 합의하고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손이고 발이고 한 쪽씩밖에 쓸 수 없는 아내의 또 다른 손과 발이 되어 주어야 할 사람이 누구겠는가. 오직 나 뿐. 넓으나 넓은 이 땅덩어리 위에 7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득실거린다지만 그 많은 사람들의 손과 발이 당장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청소, 밥 짓기, 설거지, 세탁은 물론, 환자를 씻기고, 소변보는 일을 도와야 하고, 옷도 갈아입히고, 가려운 데도 긁어줘야 하고……. 아무튼 수십 년 동안 나는 참 편하게 지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잠시라도 밖에 나가게 되면 그 사이에 이 사람에게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나 하는 걱정까지 싸안고 다녀야 하고.

아하, 그게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다짐이었구나. 우리의 결혼예식 때 주례가 물었었지. ‘……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평생을 몸과 마음을 다해 서로 아끼고 사랑하겠는가? 그 물음에 나는“예!”라고 대답했고, 아내는 그런 내 팔짱을 끼지 않았던가. 어디 주례뿐인가. 오래 전에 고인이 되신 부모님을 비롯하여 여러 친지들과 지인들 앞에서 공개했던 언약이다. 그 약속을 몸으로 실천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 이런 때가 아니겠는가. 우리 부부가 만난 지도 50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 사이 아내는 비교적 건강한 몸으로 가정을 이끌며 세 아이들을 키우고 그것들을 짝 맞추어 분가시켰고. 직장 생활과 함께 한때는 소설이란 것을 긁적거린답시고 밤을 새기도 했던 부실한 내 건강을 위해 표 나지 않게 마음을 써 오지 않았던가. 이 나이가 되어서야 철이 든 모양이다. 그래 이건 내게 두고 ‘이별 준비’다. 내가 아내의 시야에서 영영 사라지는 순간, 나는 어떤 마음의 시선을 아내에게 남겨야 할까. 미안하고 고마웠던 마음을 전하며 떠나고 싶다. 그 중에서 조금이라도 덜 미안하고 많이 고마웠던 마음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보, 이 나이에 당신 팬티를 벗기다니…… 이 가슴 좀 만져봐. 콩당콩당 뛰는 거.”

옷을 갈아입히면서 시답잖은 농담을 구사하기도 했다.

태어날 때 그랬듯이 죽음 또한 언제 우리를 갈라놓을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아내는 나보다 덜 살았고, 또 보편적인 통계로 보더라도 여자가 남자보다 한참을 더 산다고 하니까 내가 먼저 떠날 것이란 예측은 당연한 것이다. 거기에다가 그건 내가 마지막으로 바라는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아내가 다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딸들이 알게 되었다. 둘째 딸은 제 엄마가 병원에 다니는 일을 도맡았고, 보다 먼 지역에 사는 큰딸은 와서 먹을 것들을 냉장고에 채워두곤 했다. 그것들보다 더 멀리 사는 아들에게는 함구령을 내린 상태.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6주가 지나고 깁스를 풀었지만 손발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담당 의사의 말은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된다는 데, 손은 무슨 후유증 때문에 더 오래 결려야 될 것이라는 거였다. 열심히 주무르고, 찜질을 하고, 재활 치료를 다니고…….

새로운 계절은 지나간 계절이 남기고 간 상처를 어루만져 치유해 주는 묘약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다시 여름이 무르익은 지금까지도 아내의 다친 손은 명쾌하게 자유스럽지 못하다.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완전히 낫을 거예요.”

아내는 내게 그렇게 말하곤 한다.

그 동안 내가 맡았던 가사들도 대부분 아내에게 이양되었다.

수목이 짙푸른 나뭇잎으로 몸을 치장하고 왕성한 생명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지난겨울 그것들은 삭풍 속에 서 있었던 시간들을 껴안고 있으리라. ‘…… 황량한 겨울 황혼을 배경으로 목마른 나목을 보면 나는 생명에 대한 끝없는 경외와 의지를 느낀다. 밖으로 살을 깎고 안으로 자기 생명을 위해 부단히 고뇌하는 나목. 그것은 적막의 백지 위에 찍힌 한 개 애정의 점이다. 위선을 거부하는 그 순수한 자세는 얼마든지 어머니의 목소리 같은 영상으로 내 가슴에 와 닿는다. ……’ 이것은 내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이 당선되었을 때 썼던 당선소감의 일부다.

겨울.

옷 벗은 나뭇가지에 눈이라도 내려앉으면 계절의 정취를 만끽하려는 젊은이들은 연인을 불러내기 마련이고, 나이 많은 노털이라도 지난날의 추억 한 가닥쯤 떠오르리라. 그러나 나는 눈이 내리면 지랄같이도 춥고 배고팠던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먼저 떠오른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광복을 맞이하기가 바쁘게 몰아친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그 아픈 시간들의 한가운데를 맨발로 건너면서 감당해야 했던 추위와 배고픈 날의 기억이라니. 추억은 그리움이 함께 하고, 기억은 그냥 잊히지 않는 지난 일.

하지만, 지난겨울은 좀 다르리라.

아직까지는 아내가 다친 이래 갈고 닦았던 집 안 일의 어느 부분들은 내 가 유용하기도 하다. 아니, ‘이별 준비’는 계속되고 있다. 앙상한 나목에 눈발이 날리면 지랄같이도 먼저 떠오른 춥고 배고팠던 기억의 틈바구니에 이제는 ‘이별 준비’의 따뜻하고 흐뭇한 추억 한줌이 켜를 이루며 쌓여 무성한 수목처럼 자리 잡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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