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지갑에서 돈을 꺼내 모르는 사람을 돕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도 생색이 나지 않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바다에서 사선을 수없이 넘나들며 고생해 번 돈이라면 선뜻 내놓기도 어렵다. 하지만 김재철은 젊은 날부터 사람을 키우는 일의 중요성을 절감했고, 말로만이 아니라 스스로 실천하겠다고 결심했다. 삶의 여정에서 품었던 생각을 살펴보면 그가 그런 결심을 하게 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간에 가난한 한국 사람은 보기 드뭅니다. 원양업계만 해도 그래요. 현지에서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남게 된 사람들도 나중에 가보면 모두 그 지역의 유지가 되어 있을 정도로 생활력이 강합니다. 자원이 없는 가난한 나라가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을 키우는 일입니다. 젊은 날부터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수모를 많이 겪었고 그런 나라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늘 생각했습니다. 일찍이 인재 육성을 위해 교육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 길만이 우리나라가 잘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업이 자리 잡기 전부터 시작한 육영사업
김재철은 돈을 모은 다음, 즉 기업이 안정되고 나서 육영사업에 손을 댄 것이 아니다. 한창 사업에 돈이 들어가던 때부터 실행에 옮겼다. 선장 시절 처음으로 고향 학생들을 돕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어둠에 싸인 바다를 항해하다 보면 많은 생각을 합니다. 아니,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히 시인이 되고 철학자가 되지요. 바다를 개척해야 한다.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잘살 수 있다. 그래서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마을문고를 지원하고 아이들에게 장학금 주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출발은 월급을 받을 때부터였습니다. 제가 20대 말부터 시작한 이 장학사업의 수혜자들이 벌써 정년퇴직을 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몇 명의 고향 학생들을 돕기 시작하다가 1976년에는 강지교육청에 장학기금으로 1,000만 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고향 사람 키우는 일을 본격적으로 돕기 시작한 해는 창사 8년이 되던 1977년부터이며 강진군 관내 중고교생 가운데 실력이 우수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기 위해 강진동원장학회를 만들었다. 첫해에 9명, 다음 해에 18명 그리고 그다음 해에 28명 규모로 장학생의 숫자를 늘려간다. 2014년 현재까지 총 1,224명의 학생들이 혜택을 받았다. 고향부터 눈을 돌린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한다.
“교세라 그룹의 창업ㅈ 이나모리 회장이 창업하면서 먼저 우리 마을에서 가장 큰 회사가 되고, 다음에는 교토에서, 그다음은 일본에서, 나아가 세계에서 큰 회사가 되는 목표를 세웠다고 말하더군요. 저도 고향에서 시작해서 모교로 그리고 나라로 교육 지원 사업의 범위를 조금씩 확장해왔습니다.”
사업 초기부터 표가 전혀 나지 않는 일에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일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가들 가운데는 나라를 일으킨다는 사업보국의 일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호암 이병철도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편안하게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다가 어느 순간 마음에 자리 잡은 사업보국이란 사명 때문에 이후로는 한시도 편한 날들이 없었다고 회고한다. 젊은 날부터 사업보국에다 교육보국이란 사명을 갖고 뛰었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김재철이다. 고향을 돕는 일에서부터 차근차근 육영사업을 하다가 마침내 1979년에 숙원사업인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한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던 해의 일이다.
사실 사업한 지 10년째여도 여유가 있을 때는 아니었다. 게다가 세상 사람들은 사업하는 사람들이 돈을 쌓아놓고 뭔가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늘 자금 부족에 허덕이게 마련이다. 사업을 계속 확장해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산업은 육지 사업에 비해 불확실성이 더 크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때 사업에서 번 돈의 일부를 남을 돕는 일에 쓰기란 어려운 결정이다. 게다가 많은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 그룹처럼 세무 문제로 문화재단을 만들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결국 돈을 쓰는 일은 우선순위의 문제인데, 그가 창업 10년 만에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한 것은 인재육성에 대한 그의 확고한 가치관과 신념이 반영된 결과라고밖에 볼 수 없다.
내실있는 동원육영재단의 활동
오늘날은 장학 재단들이 많다. 그러나 김재철이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하던 1979년만 해도 대가업조차 장학재단을 운영하는 예가 드물었다. 1979년을 기준으로 보면 100대 상장기업 가운데 16개 업체가 장학재단을 갖고 있었는데, 김재철이 3억 원의 기금으로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한 일은 대단한 일이었다. 기업 규모로 보면 중견기업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1979년에 설립된 장학재단 11개 가운데 기금 규모로 보면 두 번째 큰 재단이었다.
이듬해 동원육영재단이 장학생 선발을 위해 신문에 낸 광고 문안에서 그가 재단 활동을 통해 꿈꾸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어서 뭉클하다. 김재철이 손수 문안을 다듬었다. 특이한 것은 제출서류 가운데 하나가 논문인데 ‘나의 지향’, ‘현대에 있어서의 젊은이’ 두 주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200자 원고지 20매 정도로 작성해야 한다. 김재철다운 발상에서 나온 논문 쓰기라 할 수 있다. 빛바랜 주요 일간지와 경제지의 하단에 실린 장학생 모집 공고는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육영재단을 만들었는지를 엿보게 해준다. 그의 머릿속에는 “사업과 인재 육성을 통해서 나라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신념이 확고하게 들어있다. “국가 발전에 역국이 될 유능한 인재 육성을 목적으로 설립한 동원육영재단은 본 재단의 설립취지에 합당하고 국가관이 투철하며 향학열이 충만한 장학생을 다음과 같이 선발합니다. 전문대학생 ㅇ명, 일반대학생 ㅇㅇ명, 대학원생 ㅇ명.”
김재철은 자신이 1979년에 육영재단을 설립한 일이 부를 사회에 환원하기 위한 차원은 아니라고 말한다. 창업 때부터 그는 기업은 사회와 더불어 존재해야 하고 사회에 필요한 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업이라면 세상에 도움을 주어야 하고, 이런 방법 가운데 하나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는 가진 지분 가운데 10퍼센트를 출자해 동원육영재단을 만든다. 설립 첫해인 1979년에 14명의 학생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불하고, 이듬해 1980년에는 그 수를 70명으로 확대했다. 이후 매년 60여 명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는데, 2014년 12월 31일 현재까지 총 2,929명의 대학생과 1,224명의 중고교생에게 약 73억 9,00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