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 성품, 서비스, 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에서 나온다. 어떤 사람이 뛰어난 성과를 달성했을 때 사람들은 보이는 성과에만 주목할 뿐 성과를 있게 한 원동력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김재철의 추진력과 성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정신세계를 살펴봐야 한다. 그의 정신은 삶은 물론 기업경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기업경영의 4대 정신
그의 인생경영과 기업경영에는 4가지 정신이 뒷받침하고 있다. 열성, 개척, 자기개발, 정도경영이다. 김재철의 인생과 기업을 집에 비유하자면 위의 네 가지 정신은 기둥처럼 그가 이루어낸 것을 지탱하기도 하고 견인하기도 했다. 그는 일찍이 그 중요성을 깨우쳤고 완전함에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이는 자신에게 국한되지 않고 조직 구성원의 사고, 판단, 행동을 떠받치는 기둥 역할을 해왔다.
한국경영사학회는 김재철에 대한 심층연구를 통해서 동원정신과 동원이즘(Dongwonism)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창업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동원정신(열성, 도전, 창조)은 동원만의 독특한 기업문화의 출발점이 되어 동원인이라면 공통적으로 갖는 공감대로 정착되어 동원그룹 40년 역사의 근간이 되는 정신이 되었다. 다시 말해 동원만의 핵심가치인 동원이즘이 되었다.”
열성의 중요성
일단 맡은 일이라면 크든 작든 열과 성과 혼을 다해 최고의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말한다. 이것은 김재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정신이다. 그에게서 ‘대충대충 넘어가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이자 선과 악의 문제이다. 그는 대충대충 하는 태도는 올바르지 않으며 심지어는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선과 악은 한 사람에게 중요한 가치관이다. 그가 자신의 사업뿐 아니라 무역협회 같은 단체를 맡았을 때도 절대 건성으로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대개 단체장은 재임 기간에 일할 때 주어진 사안을 무리 없이 조용하게 넘어가는 것이 관행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맡은 바 소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많은 곳을 가보고 많은 사람과 일해보며 인간의 능력이란 무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고 마음먹고 집중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수없이 봐왔습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야 가진 능력도 빛을 발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유능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일의 성과를 많이 올리는 사람입니다. 그럼 어떤 경우에 성과가 많이 오르는가? 이른바 성과의 법칙이란 게 있습니다. 성과=능력*노력(열성)*마음(사고). 능력이 아무리 많아도 노력하지 않으면 뜻이 없고, 또 긍정적인 쪽으로 노력해야지 부정적인 쪽은 오히려 유해합니다. 그리고 이 공식에서 플러스가 아니라 곱하기란 것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 가운데 하나만 마이너스여도 답은 마이너스이니까요.”
개척정신의 중요성
없는 길을 만들어가거나 기존에 있는 것이라 해도 최고로 잘해내서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말한다. 미국인들이 흔히 말하는 ‘프런티어 정신’과 일맥상통하며 쉬운 길, 편안한 길, 알려진 길, 남들이 다 가는 길을 가지 않는 사고방식과 행동이다. 김재철에게 개척정신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해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창조 혹은 창의 정신이며 다른 하나는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일수록 두려워하지 않고 희망과 용기를 갖고 새로운 것을 개척해내는 도전정신을 말한다. 그는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 간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시장과 어장을 개척해왔다. 그가 서울대에서 한 강연 속에는 김재철의 개척정신이 잘 들어나 있다.
“나는 1975년에 회사에 전 재산보다 많은 투자를 해서 선원 130여명이 타는 대형 공모선 동산호를 건조했습니다. 1979년도에 2차 오일쇼크가 왔을 때에는 다시 한 번 모험을 하는 심정으로 어선에 헬리콥터를 탑재한 참치 선망선 코스타 데 마필호(807톤)를 320만 달러에 수입해왔습니다. 1, 2차 오일쇼크로 많은 회사들이 위축되고 도산하는 중에 과감하게 정공법으로 대처했습니다. 그때 투자했던 배들은 동원산업의 사세 확장에 큰 역할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결정들이 동원산업이 오늘날 한국뿐 아니라 세계 제일의 수산회사가 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업이 안되면 언제든 선장으로 배를 타고 나가면 최소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동원정신이 뭐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열성과 도전이라고 대답합니다. 저희 회사의 역사는 바로 도전과 새로운 어장 개척의 역사였습니다.”
자기계발의 중요성
누구든지 가치창조의 주역은 자기 자신임을 명심하고 끊임없는 사고와 학습 그리고 실행을 통해서 가치창조 능력을 배가함으로써 자신을 최고의 인재로 만들어가야 한다. 오늘날은 자기계발, 자기관리, 자기경영 등과 같은 용어들이 거의 보통명사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그런 용여들이 자리를 잡는 시점은 1997년 외환위기의 거센 파고를 경험한 이후부터이다. 김재철은 1970년대 초반부터 이런 개념을 가지고 임직원들에게 자기계발의 주역이 되라고 권면했다.
김재철은 한시도 머무르거나 안주하지 않았다. 인간적인 면은 물론 직업적인 면에서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분발하고 스스로를 독려해왔다. 그는 임직원들에게 강조한다.
“모르는 일은 할 수 없다. 따라서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살리려 노력하고 사원으로서, 조직의 일원으로서 자기 업무를 완수하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지식이 몸에 배도록 맹렬히 공부해야 한다.”
그의 면학 과정을 잠시 살펴보자. 창업하던 1969년에 얼마나 분주했겠는가? 그러나 그는 저녁에 시간을 내서 그해에 고려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다. 1978년에는 서울대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고, 이후 13주나 되는 긴 시간 동안 사업체를 비운 상태에서 하버드 대학 경영대학원의 최고경영자 과정에 참여해 새로운 트렌드를 파악하고 경영기법을 배웠다. 당장 성과 창출에 도움이 안 되는 학업에 계속 참여한다는 건 자기계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학습은 그가 사업을 확장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배워야 한다. 배워야 한다. 자꾸 배워야 한다”는 정신은 팔순을 넘긴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기술계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면서도 주로 현장 위주로 했는데, 회사를 운영해보니 관리나 경영에 관한 지식이 크게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경영에 관한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서 야간에 고대 경영대학원에 다니고, 또 서울대 경영대학원 AMP 과정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서울대에서 강의하시는 선생님들이 자꾸만 하버드 대학의 케이스 스터디를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왕 내친김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1981년에 하버드대학의 AMP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약간 별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어업하는 사람이 온 것도 처음이지만 그 사람들이 보기에는 좀 이상하다는 거예요. 어떻게 현직 사장이 회사를 비워두고 무려 3개월 동안 공부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진짜 사장이냐, CEO냐 하는 질문을 몇 번이나 받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에는 대부분 장차 큰 회사의 사장 후보들이 연수 받으러 오지 저처럼 CEO인 경우는 거의 없더군요.”
정도경영의 중요성
정도경영은 합법적인 활동으로 경영을 할 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비난받지 않는 경영을 해나가는 정신이다. 합법은 실증법을 어기지 않는 것을 말한다. 윤리는 합법 그 이상을 준수하는 것이다. 김재철은 설령 합법적이더라도 “대기업이 그런 것까지 해서 되는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싫어한다.
그는 인터뷰 중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연근해에서 단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않는 원칙을 견지해왔습니다. 그것은 내 삶의 원칙이자 기업경영의 원칙입니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하는 분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분야와 할 수는 있지만 해서는 안 되는 분야를 명확히 구분하기를 원한다. 예를 들어, 골프는 그의 유일한 취미이지만 그는 우직하리만큼 골프장을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부동산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으면 지금보다 돈은 좀 더 벌었을 수도 있었어요. 그러나 저는 골프장은 관심을 가져선 안 되는 영역이라고 생각했어요. 골프장 사업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내가 그걸 하지 않아도 다른 분들이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앞에서도 잠시 소개한 바 있지만 바다생활을 하면서 김재철은 다른 기업가들에 비해 더 명확한 생사관을 갖게 된다.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은 “쩨쩨하게 살아서는 안된다.” 혹은 “치사하게 사업을 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확고히 심어주었다. 이런 경험들이 그를 시종일관 정도경영의 길로 이끌었다. 이런 원칙으로 그는 1992년에 당시 놀라울 만큼 정직하게 증여세를 내고 지분의 일정 부분을 장남에게 넘겨주었다. 이는 한국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어떤 기준을 갖게 된다. 가난한 시절을 보냈다면 그 사람에게 기준점은 가난이 된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더라도 과거를 떠올리며 가난에 굴하지 않는다. 기준점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따라 달라지는데, 젊은 날 죽을 고비를 수없이 겪었던 선상 경험은 그에게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그는 대학생들에게 쩨쩨하게 살지 않겠다는 것은 자신의 생활철학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업에 성공도 해보고 어려움도 겪어보고 온갖 일들을 봐왔습니다. 젊어서는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겪은지라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사실만도 감사한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구차하지 않게, 떳떳하게 살다 가겠다는 것이 바로 저의 생활철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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