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사기열전'은 중국 사람들의 필독서이다. 사기열전을 지은 사마천이 3천년이란 시공간을 넘나들 정도로 학술적 안목이 높기 때문에 그에 따른 연구도 1.800년이 흘렀다. 또한 사기열전에 대한 역대의 연구 논제도 많을 뿐 아니라 최근에도 열풍이 여전하게 고조되고 있다.
이에 강진고을신문에서도 사기열전을 연재한 바 있는데 많은 독자들이 사기열전을 일독해보시라는 취지에서였다.
사마천은 용문(지금의 섬서성) 출신으로 아버지는 사마담인데 한 무제 때 태사령에 임명되었다. 그는 당대의 저명한 지식인들에게 천문학과 주역 등을 배웠다.
사마천은 20세 때 여행을 시작하였는데, 여행의 범위는 중국 전역이었다. 이때의 여행 경험은 훗날 사기열전을 쓰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무제를 따라 거의 온 나라를 주유했는데 사마천은 어느 곳을 가든지 고적을 탐방함은 물론 자료를 챙겼다.
아버지 사마담은 반드시 역사서를 집필할 것을 당부한 후 세상을 떠났고, 사마천은 3년 후 태사령이 되었다. 4년 여 자료수집에 열을 올린 사마천은 이윽고 기원전 104년에 사기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으로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되고 만다. 전한의 명장으로 유명한 이광의 손자 이릉이 출전을 해서 흉노족과 싸우다가 중과부족으로 투항을 하고 만 것이었다. 전투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당시 사람들은 이를 나쁘게 여겼다. 가문과 나라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일로 생각한 것이다.
이때 무제는 사마천에게 물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무제에게 사마천은 적극 이릉을 변호했다. 사마천의 의협심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무제는 대노했고 사마천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리고 1년 후, 사마천에게 세 가지 중 한 가지를 고를 기회가 주어졌다. 첫째는 죽음이요, 둘째는 돈 50만 냥을 내고 죽음을 면하는 일이요, 셋째는 남성의 성기를 잘라내는 궁형(宮刑)을 받는 일이었다.
사마천은 돈 50만 냥을 내는 두 번째를 선택하고자 했지만 중인(中人)의 신분으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궁형을 받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로서는 죽음보다 더 치욕스러운 것이 궁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마천은 목숨을 부지해서 부친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궁형을 선택했다. 이때 사마천은 친구인 임안에게 다음과 같이 글을 보냈다.
-모진 치욕을 당하기로는 궁형보다 없소이다. … 내가 화를 누르고 울분을 삼키며 옥에 갇힌 까닭은 차마 다하지 못한 말을 후세에 남기기 위함이였소.
그 당시 사마천은 기가 막혀 가슴 속은 울분으로 가득 찼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죽음보다 더한 궁형을 받았으니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무엇보다도 그는 비개, 그것이었다. 비개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비통함인데 슬퍼하고 개탄함이란 뜻을 갖고 있다. 비슷한 말로는 비장, 비탄, 비상, 비통, 비분, 비애, 비량, 비수 등 슬플 비(悲)와 조합되어 낱말이 된다. 여기에서 비개는 비장강개, 비분강개, 비통강개, 비통개탄 등으로도 쓰고 있다.
그런데 비개는 스물네 개의 풍격을 일종의 시로 표현하여 문인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시학 텍스트 ⌜시품⌟ 중 하나이다. 시품에서는 개인적 슬픔이나 분개를 넘어서서 역사 앞에서 그것을 막아낼 수 없다는 운명적 절망감이 있다.
3년 후에 무제 곁에 있게 된 사마천은 궁궐의 자료들을 더욱 섭렵할 수 있었는데, 이때는 사기열전도 마무리 되어 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유지를 받든 지 20년. 그는 사기열전을 완성했고, 몇 년 후 세상을 떠났다. 사마천이 비개의 마음이 없었더라면 사기열전은 집필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또한 유방과 더불어 천하를 다루다가 패색이 짙자 자결을 한 항우의 이야기나 자객열전에서 형가의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것도 비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비개를 일컬어 ‘발분저술’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불후의 명작 사기열전을 집필한 사마천은 사기열전을 쓰기 전 어떻게 공부를 하였을까?
사마천의 재능을 일찍 알아챈 부친은 열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고문을 배웠고 역사학자로서의 자질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열세 살 때에는 황하와 위수 일대를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했다.
나이 스물에는 부친의 강력한 권유에 따라 천하 여행을 다녔다. 부친의 공부법은 정확했고 기가 막힌 교육 방법이었다. 어느 아버지가 청소년 시절에 천하를 다 둘러보게 할 것인가. 만일 사마천이 천하를 둘러보지 않았더라면 사기열전은 그만큼 맥이 빠진 책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마천은 당대 유가학파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공안국의 휘하로 들어다 본격적인 학문 연구에 들어갔다. 공안국은 공자의 11손이었으므로 당대 최고 학자였다.
마흔 살이 되어서는 사기 저술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릉 사건’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히게 되고 궁형까지 받는 처절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때 사마천은 이렇게 울부짖었다.
천하디 천한 노복이나 여종들도 자결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나와 같은 사람이 자결을 하지 못하겠습니까? 고통과 수모를 견디며 구차한 목숨을 이어가려 함은 제 마음 속에 드러내지 않은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잘것없는 세상에서 사라져 내 문장이 후세에 남겨지지 않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궁형을 견디고 살아났다. 책을 통한 학문의 탐구와 현장을 직접 다닌 역동적인 역사 탐방으로 내공이 쌓인 그것에, 처절한 치욕을 딛고 일어선 깊은 생각이 결합하여 사기열전을 완성할 수 있었다.
사마천은 사기열전을 저술하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혔는데 그 내용이 자못 위대하다.
첫째는 하늘(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구천인지제(究天人之際)이다. 둘째는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통찰하는 통고금지변(通告今之變)이다. 셋째는 지난 일을 기술하여 다가올 일을 알게 한다는 술왕사지래자(述往事知來者)이다. 넷째는 일가에 문장을 이루어 자신의 역사관과 입장을 완성하는 성일가지언(成一家之言)이다.
사마천은 사람으로 태어나 공부하는 목적은 대개 세 가지로 말했다. 입신(立身), 입언(立言), 입덕(立德)이 그것인데, 입신은 취업이나 출세, 부귀, 권력 등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부이고, 입언은 자신의 사상이나 철학, 학문적 성과를 글로 정리해 세상을 바른 길로 이끌고자 하는 사회적 책임감을 동반하는 공부 단계이다. 입덕은 최고 단계이자 최선의 경지로 이 단계에 이르러야 정치와 통치를 할 자격이 있다는 거였다.
사마천은 사기의 완성을 통해 입언의 단계에서 자신의 사명이자 책무를 완수했다.
글: 송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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