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은 집에서 저녁식사 후식으로 수박을 내놓았다. 그러나 밥을 맛있게 먹은 뒤고 포도와 복숭아 등 다른 과일까지 있었기 때문에 참석한 사람들이 수박을 한 조각씩 정도 먹었다. 그때 주인이 말했다. “이 수박은 저희가 직접 수확한 수박입니다. 수박이 올해 세 덩이나 열렸지 뭐에요” 이 말을 들은 참석자들의 손이 다시 수박으로 향했다. 그러자 한 분이 말했다. “듣고 먹으니 더 맛있네요.” 수박접시는 금세 바닥이 났다.
살충제 계란 파동이 발생한 이후, 우리의 먹거리가 안전하지 않다는 먹거리 불감증이 생겼다. 그뿐 아니라 여성의 필수 생필품인 생리대에서 발암물질 부작용 논란까지 터져 나오면서, 인간의 문명과 함께 해온 화학물질이 삶을 발전시킨 게 아니라 파괴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라고 뒤덮고 살았던 불편한 진실 같은 것이었다.
우리에게 농약이 풍요를 가져다주던 시기가 있었다. 불과 몇 십 년 전이다. 우리 어머니세대가 그렇다. 올해 87세인 친정어머니는 농약을 좋아한다. 젊어서 농사를 지었던 어머니는 어느 날 농약이라는 특효약의 기쁨을 잊지 못한다. 도시로 나온 후 벼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집 마당 화단이나, 자투리 공터만 보였다 하면 그곳을 모두 밭으로 일구셨다. 부모님은 화단에 봉숭아, 분꽃, 채송아 등도 심었지만, 그 뒤편으로는 고추와 가지 참외 수박 등도 심으셨다. 가장 싫었던 것은 호박구덩이다. 호박을 심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그곳에 인분을 잔뜩 부어서 살짝 덮어놓곤 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공놀이를 하거나 배드민턴을 치다가 공이 날아가면 아무생각 없이 화단으로 뛰어들어 발이 똥 범벅이 되고 말았다. 그럴때마다 아버지에게 짜증을 내면 아버지는 똥 묻은 신발을 어느새 깨끗이 씻어서 말려서 주시면서 다시는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다. 그곳에서 나온 호박 줄기들은 어느새 창고 위를 덮을 만큼 쭉쭉 뻗었고, 어느 날 주먹만한 예쁜 애호박들이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니는 그것을 따서 호박전도 붙여주고, 호박 된장국을 끓여 우리 가족의 맛있는 상을 차려주셨다.
내가 강진으로 시집온 1년 뒤, 전주에 사시는 부모님을 강진으로 오시게 했다. 아무 일도 안하고 계시는 두 분이 도시에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함께 살자고 했고, 부모님은 오셨다. 부모님은 집 앞 밭을 일구셨고, 그 곳에 고추와 콩 등을 심어 정성껏 가꾸셨다. 나는 늘 부모님께 당부했다. “우리가 먹을 것이니까, 절대 농약은 하지 마세요.” 그러면 어머니는 답하셨다. “농약 안한다. 깨끗하게 농사지어서 먹어야지, 농약은 절대 안혀.”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 아버지는 나에게 들키고 말았다. 내가 그렇게 당부를 하니까 나 몰래 농약을 하고 있었던 것인데, 하필 내가 보게 된 거였다. “엄마, 왜 농약을 하고 그래요? 내가 몇 번이나 당부했어요. 아이, 정말 이제 아무것도 하지마세요.” 그럼 어머니는 “안했다. 벌레가 많아서 아주아주 쬐끔했고만 그러냐.” 그런데 나는 화가 나서 막 쏘아붙였다. “뭐라고요? 쬐끔 해놓고 안했다고요? 밭 가꾸지 말고 이제 전주로 가세요.”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께 화를 많이 냈다. 두 분은 딸의 다그치는 목소리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시더니, 아버지는 하던 일을 집어 던지고 핑 집으로 들어가 버리셨고, 어머니는 어깨가 축 쳐진 채 흩어진 짐을 챙기셨다.
그 해에는 유난히 병충해가 심해서 지어놓은 고추가 거의 먹을 수 없게 된 상태였는데, 부모님은 그런 밭작물을 볼 수가 없었던지 결국 농약을 하셨던 거였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었다. 농약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부모님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젊었을 때 농촌에 살았던 부모님은 농사일이 힘드셔서 도시로 올라오셨다. 왜냐하면, 힘들게 일하지만 수확은 늘 적어 돈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농약이라는 것이 나오면서 수확이 늘어나니 기쁘지 않았겠는가. 그러한 기쁨을 평생 잊지 못하는 부모님이셨다. 그뿐 아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항상 어머니에게 당부했다. “엄마 미원은 절대 넣지 마세요, 안 넣어도 맛있어요.” 그때마다 어머니는 답하셨다. “미원 안 넣는다. 걱정 말아라,” 나는 아예 미원이라는 것을 사다 놓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부엌에서 미원이 발견되었다. 나는 또 어머니에게 화를 냈다. “엄마, 정말 미원을 언제 사왔어요? 이런 것 넣지 말라고 했잖아요. 몸에 좋지 않다니까요.” 그럼 어머니는 또 답하셨다. “아주 쬐끔 넣었다. 아주 쬐끔.” 어머니는 음식을 만들어도 맛이 나지 않던 시절에 사셨다. 그러다가 미원이라는 것이 나와 그것만 넣으면 마술처럼 음식이 맛이 있으니 주부로서는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으랴. 지금도 어머니는 미원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나에게 한 말씀 하신다. 미원은 넣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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