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신神)’은 정, 기와 함께 인체의 세 가지 보물 가운데 하나이지만 정과 기를 앞에서 이끌기 때문에 생명을 구성하는데 세 가지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신이란 과연 무엇일까? '영추'와 '본신本神'편에서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생명을 만들어 내는 원시 물질을 ’정‘이라 하는데, 음정과 양정이 서로 만나 이루어진 것을 ’신‘이라 한다’
다시 말해 어머니와 아버지의 정, 음양의 성질을 지닌 두 가지 정기가 한데 결합해서 신이 탄생한다는 뜻이다. 이는 신의 발생 원인과 조건을 설명하는 말이다. 그래서 신은 사실 ‘선천적인 신’, 다시 말해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기원한 ‘원신’인 셈이다. 이 두 가지 정에는 자연계 천지음양의 두 가지 정기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 두 가지 정기, 즉 음정과 양정이 상호 결합하여야만 ‘원신’이 탄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과 정, 그리고 기는 서로 어떤 관계일까. 정리하자면 정은 ‘생명의 가장 기초가 되는 물질’이고, 기는 ‘생명의 에너지 정보’이며, 신은 ‘생명이 지닌 활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정과 기가 신의 기초가 된다면 신은 정과 기를 주재한다. 즉 정과 기는 앞서 있고 신은 뒤에 있는 셈이다. ‘정신이 있다, 없다’ 할 때 정이 신에 앞서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우리는 정과 기는 있어도 신이 없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 정이 가득 차야 기가 충족되고 기가 충족되어야 신이 왕성하게 된다.
위의 세 가지 보물 가운데에서는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할까? 당연히 신이 가장 중요하다. 신은 정에서 나오며 정은 기에서 나오기 때문에 자칫 신이 가장 나중된 것으로 치부될 수 있으나 사실 신은 정과 기를 이끈다. 바꿔 말하면 정과 기가 부족하면 신도 부족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정과 기를 잘 보양하면 신이 보양되고, 신을 보양하면 정과 기가 보양될 수 있다.
'황제내경'은 나래와 같이 드러나는 중심에만 얽매이지만 고명한 의사는 환자의 신이 허한지 심한지의 여부를 살펴 질병을 치료한다.
중국 전국시대의 편작이란 명의에게는 다른 의원들에게 없는 특별한 의술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담 너머에 있는 사람 속까지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이었다. 편작은 이러한 통찰력을 통해 자기 앞의 환자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훤히 내다보았는데, 사실 편작이 그때 꿰뚫어 본 것은 사람의 몸에 흐르는 ’신‘이었다.
보아서 아는 것을 일컬어 ‘신神’이라고 하고 들어서 아는 것을 ‘성聖’이라고 하며, 물어서 아는 것을 ‘공工’, 맥을 짚어서 알아내는 것을 교巧;라고 한다. /난경 /육십일난
오늘 날 우리 주변에도 관상과 손금을 잘 보는 사람이 있는데, 그때 그들이 보는 것도 얼굴이나 손의 생김새가 아닌 ‘신’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외형적인 형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겉모습 너머 내면에 존재하는 ‘신’이다. '황제내경'에서는 사람의 코가 얼만 높은지 입꼬리가 얼마나 퍼졌는지, 눈썹이 얼마나 긴지를 살피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에만 얽매여 치료하려 하는 천박하고 저급한 의술이라 평가했다. 사실 관상에서 중시하는 신은 눈 주위에 가장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눈은 마음(심장)의 창이다’라는 말도 있는 것이다. ‘심장은 신을 담는 곳’이라고 했으므로 눈을 보면 그 사람에게 신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보통 신을 가진 사람에게는 정도 충분히 있으며, 기도 왕성하게 살아 움직인다. 일찍이 청나라 말기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중국번은 관상에 특별히 관심을 보였다. 그가 남긴 유명한 관상 저서인 '병감'도 첫 번째 장이 '신골神骨'일 만큼 신은 관상에서도 가장 우선시하는 요소이다. 노련한 의사라면 진료를 할 때 병자의 눈을 유심히 보아 신을 살펴야 할 것이다. 신은 인체의 마디, 부위, 동작 하나하나, 모발, 손톱, 설태 등에 드러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보인 부위가 눈이기 때문이다.
'황제내경'에서도 ‘신을 얻은 자는 창성하고 신을 잃은 자는 망한다’고 하여 질병 치료에서 신이 자장 주도적인 역할에 힘을 강조했다. 만일 신을 얻고 신을 회복하면 그 사람은 창성하고 생명력이 왕성해지며 질병도 자연스럽게 치료되지만 일단 신을 잃으면 인생이 끝나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은 사람의 생명에 활력을 더하며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신이란 무엇인가?
신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넓은 의미의 신으로 ‘생명의 활력이 드러난’ 모습이다. 둘째는 좁은 의미의 신으로 순수한 ‘정신상태’를 가리킨다. 신은 정신, 의지, 지각, 운동 등 모든 생명 활동을 주관하고 이끄는 최고의 수령인데 이것이 바로 넓은 의미의 신이다. 이러한 신에는 혼魂, 백魄, 의意 지志 사思, 려慮, 지智 등의 활동이 포함되는데 이러한 활동을 통해 그 사람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도 있다.
예를 들어 눈빛이 살아 있다, 또는 생명력이 왕성하다는 뜻의 중국어는 ‘무광 즁즁 여유션 目光炯炯有神’인데 원래 이를 직역하면 ‘눈빛에 신이 있다’는 의미이다.
'소문' '이정변기론'에서는 “신을 얻은 자는 창성하고 신을 잃은 자는 망한다”라고 하여 신이 질병 치료뿐 아니라 양생의 열쇠가 됨을 강조했다. 진료할 때는 신이 허한지 실한지를 관찰하고 병의 예후를 살핀다. 그래서 신기가 있으면 예후가 좋고 신기가 없으면 예후가 좋지 않는 것이 된다. 병을 치료할 때는 침구나 비뚤어진 뼈를 밀고 당겨서 바르게 교정하는 추나 요법, 약물 등으로 우리 몸에 있는 신을 분발하고 자극함으로써 생명의 홀력과 자연 치유 능력을 더할 수 있다. 이처럼 양생할 때는 무엇보다 신을 보양하는데 힘써야 한다. 신이 왕성하면 몸이 강해지지만 신이 쇠약해지면 몸도 약해지기 때문이다. 신은 ‘살아 있음’의 증거이므로 신이 없다는 것은 곧 죽음이나 다름없다.
황제가 말했다. “병세를 진찰하는 요령에 대해 그대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그대는 얼굴색을 살피고 맥을 짚는 것을 중시하는 듯하오.” 기백이 말했다. “병을 진찰하고 치료할 때 가장 요긴한 것이 하나 있긴 랍니다.” 황제가 말했다. “그것이 무엇인고?” 기백이 대답했다. “요긴한 방법 중 하나는 문진을 통해 병세를 살피는 것이지요.” 황제가 물엇다, “어떻게 문진해야 하는가?” 기백이 대답했다. “문과 창을 닫고 세심하게 반복적으로 병세를 물어보아 환자의 의식과 정감의 상태를 파악합니다. 그때 환자에게 신기가 없으면 예후가 좋은 것이고 신기를 잃었으면 예후가 좋지 않은 것입니다.” 황제가 말했다. “참으로 훌륭한 방법이오.”
'소문' '이정변기론'
'황제내경'에서는 신이 비록 심장, 비장, 폐, 간 등 옹장에 두루 분포되어 있지만 주로 심장에 담겨 있다는 의미로 ‘심장신’이라고 표현했는데 이것이 좁은 의미의 신이다. 좁은 의미의 신은 구체적으로 의식과 사유, 정신 활동으로 표현된다. 중의학에서는 이러한 활동이 심장에서 기원한다고 생각하고 심장이 이 일들을 주관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현대 과학의 연구 결과를 이유로 들어 중의학의 이런 관점들을 부정하고 있다. 사유와 의식 활동은 대뇌에서 시작하므로 심장이 주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는 중의학에서 말하는 ‘심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모르고 하는 말이다. '황제내경'에서는 말하는 ‘심’은 해부학상의 ‘심장’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대뇌’를 뜻하기도 한다. '황제내경'에는 ‘심의 기능을 생각하는 것이다’고 했으며 '맹자孟子'에서도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라고 했다. 이처럼 ‘심’이란 기관의 주요 기능은 사유하는데 있으므로 대뇌를 포함한다. ‘사思’라는 글자를 자세히 살펴봐도 밭 ‘田’자와 ‘마음 心’자가 합하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밭田’자는 원래 전서체에서 ‘신囟’으로 쓰이는데 이 글자는 사람의 ‘숨구멍’을 뜻한다. 어린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 정수리에 있는 말랑말랑한 부분이 바로 이 숨구멍이다. 따라서 ‘사思’는 대뇌와 심장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글자인 셈이다. 다시 말해 고대 중국인들은 사람의 사유 활동이나 의식 활동, 정신 활동이 대뇌와 심장의 두 군데에서 동시에 이루어진다고 여긴 것이다.
그렇다면 갑골문에서는 ‘심’을 어떻게 썼을까? 심장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 넣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황제내경'이 쓰이기 이전의 고대 사람들도 해부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해부라는 단어도 '황제내경'에 등장할 정도이다. '영추' 경수편에서는 도입 부분에 ‘보통 사람의 피부나 맥은 그가 살았을 때는 짚어 보거나 손으로 만져서 가늠할 수 있고 죽었을 때는 해부하여 관찰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고대 중국에서는 전쟁이 잦았기 때문에 전쟁터에서 창상을 입고 죽은 사람들의 장기가 다 드러나 몸속의 이것은 무엇이고 저것은 무엇인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장을 이루는 한자의 모습을 살펴보면 대부분 해부를 통해 확인한 장기의 형태를 형상화하고 있다. 즉 ‘심’에서는 심장의 형상을 볼 수 있고 간, 비장, 폐, 신장도 모두 ‘육달월月’을 그 부수로 가진다. 육달월은 ‘고기肉’과 같은 의미로 이들 한자가 모두 장기의 형상과 관련이 있음을 설명한다.
현대 의학은 해부를 통해 구명된 개별 기관으로 그 기능을 탐색한다. 이렇게 하면 가장 좋은 점은 기관의 개별적인 기능을 분명히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생리적 기능은 복합적인 작용의 결과이므로 각 기관의 기능만 개별적으로 알아서는 인체 전반을 아우르는 생리적 기능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각 기관의 기능을 단순히 한데 합한다고 해서 몸의 기능 전체가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황제내경'의 탁월함은 기능을 먼저 논한 다음, 각 기능과 관계된 신체 기관을 한데 묶었다는 데 있다.
예컨대 사유, 정신, 의식 활동이라는 기능을 먼저 말한 다음 이러한 활동을 뇌와 심장이 공동으로 주관한다고 밝히는 게 바로 그것이다. 이는 '황제내경'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형체에 국한하지 않고 형체를 초월하여 몇 개의 단일한 형체, 몇 개 기관의 조합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최근 현대 과학에서도 연구를 통해 사람의 생리적 기능이 어떤 한 개의 개별 기관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밝혀내었다.
'황제내경'에서는 장기로사 심장이 지니는 중요성을 강조하며 ‘군주의 지위’에 빗대었다. 심장이 황제와 같은 지위에서 신을 주관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 국가에서 황제는 가장 높은 곳에서 통치하는 인물이다. 마찬가지로 인체 기관의 황제라고 할 수 있는 심장이 주관하는 신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이며 다른 모든 것을 이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종종 ‘아무개는 심신(心神)이 불안하다’고 말할 때 쓰는 신은 좁은 의미의 신이다. 이는 사람의 사유, 의식, 정신활동을 가리킨다. '황제내경'에서는 ‘신이 안정되면 심이 평안해지고 심이 안정되면 사람이 안정된다’고 하면서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내단학에서는 신을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으로 구분한다. ‘선천적인 신’은 ‘원신’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다. ‘후천적인 신’은 ‘식신識神’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의 역할은 ‘인식하고 분별하는’ 것이다. 대단학에서는 수련을 통해 ‘식신’을 ‘원신’으로 바꿀 수도 있다고 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배움에 힘쓰면 나날이 쌓이고 도에 힘쓰면 나날이 버리게 된다’라고 하였다. 학문을 추구하고 지식을 쌓기 위해서는 식신의 역할에 의지해야 하는데, 도를 수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식신을 줄여야 하고 식신의 간섭을 배제하여 무위의 직감적 상태로 접어듦으로써 원신을 단련할 수 있다는 원리이다. 식신은 지식을 학습하는데 유용하지만 도를 수련하는 데는 해롭기 때문이디. 원신의 관조를 통해서만이 ‘후천적인 기’를 ‘선천적인 기’로 전환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원정을 보양하고 영원한 청춘의 빛을 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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