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7년 다산이 46세 때의 일이다. 당시 그는 강진에 유배 중이었다. 그런데 그해 9월 강진현에 사는 과부 정 씨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강진현 사또는 다산을 모셔다가 검안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도움을 받으려 했다. 다산은 사건과 무관한 데다 심지어 조사할 지위에 있지 않은 유배객 신세였지만, 워낙 형사 사건의 심리에 뛰어나다는 평이 자자하기에 사또가 부탁한 것이었다. 나중에 다산은 형법서 <흠흠신서>를 저술하면서 1807년 자신이 참여해 작성한 과부 정 씨 사건 보고서를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의 보고서가 매우 잘못되었음을 비판하고 크게 반성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정 씨 부인
고금도에 살던 정 씨는 완도로 시집갔다가 남편이 비명에 죽고 딸 하나를 키우며 살고 있었다. 나이 스물넷이니 아직도 젊고 고았지만 절개를 지키며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했다. 당시 진영의 장교 김상운은 나이가 45세로 자식이 없었다. 그는 정 씨를 첩으로 들여 대를 이으려고 중매쟁이를 붙여 재가를 권유했지만 정 씨의 뜻을 돌리지 못했다. 이에 김상운은 오치군이라는 자에게 돈을 주며 과부 정 씨의 마음을 바꾸도록 부탁했다. 하지만 오치군은 “정 씨의 마음은 수백 마리 소로 끌어도 돌리기 어려우니 차라리 뇌물을 돌려주겠다.”라고 하며 그만 두었다.
백방으로 모색하고 여러 가지 게획을 꾸몄는데도 정 씨가 듣지 않자 김상운은 결국 사단을 벌이고 말았다. 야음을 틈타 과부 정 씨의 집에 강제로 침입해 정 씨를 강간하려 했던 것이다. 놀란 정 씨가 소리를 지르고 가족들이 몰려 나와 김상운을 쫓아낸 뒤에야 소란은 잠잠해졌다.
하지만 김상운은 포기하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과 함께 일하는 장교를 꼬여 정 씨와 가족을 허위로 관아에 고발하도록 한 것이다. 마침내 전라도 수영을 관리하던 첨사는 군졸 백득문에게 정 씨를 잡아들이도록 명령하였다. 백득문은 오라를 허리에 차고 정 씨의 집에 도착해 그녀를 공갈하고 결박하려고 했다. 정 씨는 “내가 죄가 없는데 어찌 오랏줄을 두려워하리오. 다만 이 한 몸이 붙들려 가면 필경 정절을 잃고 말 것이다. 살아 정절을 잃으니 차라리 죽어 장절을 온전히 하느니만 못하다.”라고 한 뒤에 방으로 들어가 새끼줄로 목을 매 자진하고 말앗다. 여러 사람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갔지만 정 씨는 이미 죽은 뒤였다. 정 씨의 오빠 정서룡이 강진현에 달려가 고발했고 조사가 시작되었다.
사정을 참작하여 용서하는 게 과연 옳은가?
다산은 정 씨가 죽은 원인을 자살로 판단했다.
“이 시체를 보니 스스로 목을 매 죽은 것이 분명하다. 유족들의 진술과 시신의 상처를 보면 의심할 바가 없다. 목을 맨 흔적이 턱 밑에서 머리 뒤까지 둥글게 한 줄을 이루었으니, 검은 자줏빛으로 너비는 5푼 정도였다. 대들보 등에 줄을 매단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목을 매달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목숨이 끊어진 뒤 6일이 지나 시신의 여러 부위가 부패하여 목을 맨 상처가 분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술과 증거가 이미 하나로 귀결되고 상처가 <무원록>과 일치하나 스스로 목을 맨 것으로 결론짓는다. 그러나 자진했다고 한다면 범인이 없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김상운을 사형에 처할 수 없다는 것인가? 평범한 부인이 정절을 지키려는데 한 미친 사내가 무례하게 남의 집에 들어가 강간을 일삼고 그것도 부족해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부인을 협박하다가 티 없는 구슬이 스스로 깨저버리도록 했으니, 김상운이 이런저런 말로 해명한다 한들 어찌 죽음을 면하겠는가? 또한 <대명률>에 강간하려다가 부녀자를 위협하여 죽게 한 경우 사형에 처한다고 분명히 실려 있다. 그런데 단지 스스로 목을 맸다고 한다면, 김상운의 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다산은 김상운을 처벌하고자 했다. 여기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검안보고서의 말미에서 다산의 태도가 바뀌었다. 김상운이 핍박한 게 분명하지만 그가 직접 죽이지 않았으니 법인으로 확정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 씨를 협박한 사람은 김상운이 아니라 현장에 출동한 군졸 백득문이므로 그가 범인이라는 주장이었다.
“백득문이 정 씨를 핍박한 것은 모두 김상운 때문이지만 실제로 협박한 사람은 백득문이다. 특히 도둑을 잡는 것도 아닌데 대낮에 붉은 오랏줄을 들고 협박하여 한 순간에 자진하게 했으니 핍박하여 죽게 한 죄는 백득문이 받아야 마땅하다.”
나아가 다산은 자식이 없어 대를 이어보려는 재취는 단순히 정욕과 다르다고 김상운을 두둔하기도 했다. 김상운이 중매쟁이를 보내 양가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중이었으므로 정 씨 부인이 재취할 뜻이 없었지만 재취 이야기에 익숙했을 것이라고도 적었다. 이 때문에 다산은 나중에 크게 후회할 반성의 빌미를 이 사건 보고서에 남기고 말았다.
“이상의 사정을 감안해 보면 사건 처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저녁 무렵 문득 한 여인을 자진하게 한 변고를 생각해 보면 김상운을 사형에 처해도 안타까울 게 없다. 하지만 정 씨는 자기 몸이 더럽혀지지 않았으므로 김상운을 그렇게 원망할 필요가 없었는데, 문득 백득문의 붉은 오랏줄과 공갈 협박에 갑자기 억울한 생각이 들어사 목을 맨 것이었다. 김상운은 정 씨를 재취로 들이려는 마음뿐이었지 죽이려는 마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처음부터 정 씨를 죽이려고 생각했다면서 모살죄를 적용해 김상운을 사형에 처한다면, 인정을 살피지 않았다는 질타를 받을 것이다.”
다산은 남을 대신하여 작성한 문서에 김상운의 고의 없음을 절절이 변호하고 말았다, 김상운은 사형에 처해지지 않고 유배형과 약간의 돈을 내는 데 그치고 말았다.
판결은 조심하고 또 조심할 일
나중에 다산은 당시의 검안보고서를 검토하고 자신의 잘못을 통렬히 반성했다. 다산은 ‘법’이란 죄를 저질렀다는 의미이고 법률을 어겼다는 말이니, ‘법’의 조건을 손수 범행한 경우로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두운 방에서 계획을 세우고 자객을 보내 사람을 죽였다면 그가 죽이지 않았더라도 범인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양반이 마루에 앉은 채 사내종을 시켜 몽둥이로 다른 이를 때려죽이게 했을 때 양반이 범인이 되는 것은 불문가지라는 것이다. 다산은 김상운이 정 씨 부인을 핍박해 죽음으로 몰고 간 ‘김상운-정 씨부인 사건’의 경우에도 이와 동일한 이유로 김상운을 범인으로 처벌해야 했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특히 정절을 지키려는 과부를 욕보이려다가 죽게 했으니 김상운을 사형에 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았다. 이전의 판결문대로 김상운이 애초에 정 씨를 죽이려고 했던 게 아니었으므로 용서하게 된다면 강간하려다거 죽이거나 피해자가 자살한 경우 처음부터 죽이려던 게 아니었으니 용서해야 하지 않느냐는 황당한 주장도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산은 부녀자를 강간하고 협박해 마침내 죽게 한 김상운을 사형에 처해야 했는데, 검안보고서의 말미에 고의가 없었으니 정상 참작을 해야 한다고 서술함으로써 김상운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데 대해 마음 속 깊이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그리고 정 씨 같은 열녀를 조정에 알려 표창토록 해야 했지만, 살인사건 조사를 제대로 못했다는 질책을 받을까 두려워 그냥 덮어버리고 말았으니 이 또한 부끄럽고 애석한 일이라고 후회했다.
아마 다산이 1807년 장교 김상운을 사형에 처할 수 없다고 두둔한 것도 당시 강간 미수 사건 이후에 벌어진 피해자의 자살사건에 대해서는 피의자를 사형에 처하지 않았던 조선의 법관행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수십여 년이 흐른 뒤 죄와 벌의 관계, 다시 말해 죄책의 조건을 고민하게 된 다산은 정씨 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김상운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래야 ‘범(犯)’의 의미가 정확하게 적용되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숙고의 과정들을 통해 다산은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라는 의미의 당호(與猶堂)을 취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건의 판결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며 판결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라는 뜻에서 조심할 ‘흠(欽)’자를 겹쳐놓은 <흠흠신서>의 제목을 떠올리게 되었다. <정약용, 다산의 정의를 말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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