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지인으로부터 좋은 글을 받았다. 청안(靑眼)과 백안(白眼)이라는 글이었는데,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가슴
깊이 새겨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가져야지 하는 다짐을 했었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세상을 보는 눈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청안은 좋은 마음으로 남을 보는 눈이고 백안은 눈의 흰자위가 나오도록 남을 업신여기거나 흘려보는 눈입니다. 우리가 아는 옛 고사에서 무학대사의 눈이 청안이라면 태조 이성계의 눈은 백안입니다. 무학대사가 기거하는 도봉산의 절을 찾은 이태조가 무학 대사와 곡차를 마시다 문득 대사에게 이런 농을 시작하였습니다. 요즘 대사께서는 살이 뚱뚱하게 쪄서 마치 돼지 같소이다. 소승이 돼지처럼 보이십니까? 전하께서는 언제보아도 부처님처럼 보이십니다. “아니, 격의 없이 서로 농을 즐기자고 해놓고 대사께서는 과인을 부처님 같다고 하면 어쩝니까?” “예, 본시 돼지의 눈에는 모든 것이 돼지로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모든 것이 부처님으로 보이기 때문이지요.” 옛 일화처럼 청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부처로 보이고, 백안으로 보면 세상만사가 돼지로 보이게 마련입니다. 불교 능엄경에는 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말이 나옵니다. 같은 물이지만 천계에 사는 신은 보배로 장식된 땅으로 보고, 인간은 물로 보고, 아귀는 피고름으로 보고, 물고기는 보금자리로 본다는 뜻입니다.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각각 생각하는 견해가 다름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입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보는 시각대로 세상을 보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청안으로 보면 세상에 사랑이 가득하겠지만, 백안으로 보면 미운 사람밖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돼지로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비극적일까요? >
豕眼見惟豕 佛眼見惟佛(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
이 글은 돼지 눈으로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오직 돼지로 보이고 부처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오직 부처로 보인다는 함축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무학대사에게 이 태조는 크게 한방 먹었다며 껄껄껄 웃고 말았다는 얘기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좋은날, 좋은날, 좋은날 이렇게 세 번 외쳐보라는 말처럼 자신에게 긍정적인 주문을 외우는 거와 비슷하다. 나는 가끔 거울 앞에 서서 일부러 밝은 미소를 지으며 스스로에게 마술을 걸듯이 좋은날을 3번 말한다. 그것은 나의 좋은 하루를 만들기 위한 하루의 시작과 같은 것이다. 그러면 얼굴 근육도 쫙 펴지면서 밝아지기 때문에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기도 한다. 그런 아침, 아는 누군가를 마주쳤을 때 상대방이 나에게 말했다.
“다들 죽겠다 하는데 현숙씨는 아침부터 콧노래가 나오고, 좋은 일이 많은가 봐요.”
그 말이 정답이다. 아침부터 거울 속 자신에게 좋은날을 세 번씩이나 외쳤으니 얼마나 좋은 날인가. 내가 그런 하루를 시작하니, 나를 본 상대방도 반가운 인사를 건네면서 미소를 짓는다. 웃는 얼굴에 어찌 짜증난 표정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좋은날이라고 주문을 외웠다고 해서 좋은날만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내가 경험한 인생이다. 그래도 원하는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일부러라도 더 ‘좋은날’ 주문을 외우자고 하고 싶다. 왜냐하면, 좋은 언어나 좋은 몸짓은 기도와 같은 효과가 있어 자신을 결코 험한 길로 내몰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춘수 시인의 ‘꽃’을 보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나에게 ‘좋은날’ 이란 ‘꽃’ 과 같은 의미로서 내가 언제든 부를 수 있고 응답하는 단어다.
요즘 젊은이들의 세대를 N포 세대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회,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연애, 결혼, 주택 등 많은 것을 포기한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다. 연애, 결혼, 출산포기를 3포 세대, 거기에 두 가지가 더 보태어져 내집 마련, 인간관계 포기까지를 5포 세대, 거기에 꿈과 희망을 포기한 7포 세대, 거기에 특정 숫자를 정하지 않고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세대라고 한다. 이 용어만가지고도 얼마나 불행한 세대인가. 그러나 스스로를 이 용어 속에 묶어 두려하지 말자. 내힘들다를 거꾸로 하면, 다들힘내가 되는 것처럼 내가 어떻게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지금부터 나만의 좋은 언어를 가져보라. 내 안에 심고 가꾸고 그러다보면, 내가 바로 그 언어처럼 멋지고 아름다운 인간이 되지 않겠는가.
따라서 청안(靑眼)과 백안(白眼)이라는 무학대사와 이성계의 일화에서 세상이 내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내 삶도 달라질 수 있음을 느껴보자. 조지오웰은 ‘동물농장’에서 돼지를 권력을 다투는 지도자로 표현했듯, 2019년은 돼지가 살만 찐 돼지가 아니라 모두 갖고 싶어 하는 황금돼지해가 아닌가. 올해 돼지는 어디가나 황금돼지로 우리 모두에게 부자가 되는 꿈을 안겨주고 있다. 그런 것처럼 자신의 멋진 미래는 자신이 바라보는 멋진 눈과 몸짓에 달려있음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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