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 시인에게 공감이 가는 날들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 엘리엇의 장시 황무지는 1920년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황량했던 20세기 서구의 정신적 풍경을 담았는데, 당시 극도의 우울과 공황 상태에 빠졌었고, 종교에 귀의해 종교적 시각을 바탕으로 황무지를 써내려갔다고 전해진다. 사중주 네 편으로 쓰인 장시에서 내게 가장 기억되는 시구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이다. 시인 엘리엇이 4월을 왜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말했는가에 대해서는 그 시인만이 느끼는 어떤 느낌에 대한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그 시인처럼 정말 4월이 참으로 잔인하다는 것을 가슴이 아리도록 느낀 일이 내게도 생겼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서 하루하루 늘어나는 확진자 숫자를 보며 우리는 많이 지쳐가고 있었지만, 국가적 재난으로 함께 극복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신념으로 몇 달을 지나왔다. 그런데 그날 그 뉴스는 코로나19로 인한 그 어떤 것보다도 내겐 가슴 아픈 일이었다.
전남 신안군에서 튤립축제를 위해 정성껏 키운 100만송이 튤립 꽃을 모두 제거했다는 것이다. 신안 임자도 대광해변 옆 튤립 단지 내에 형형색색으로 만개한 튤립 꽃을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 내어 그 예쁜 튤립 봉우리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텔레비전에 비친 그 넓은 튤립단지에는 햇빛가리개 모자를 눌러쓰고 포대를 갖고 다니는 몇몇 아주머니들의 분주한 손길과 발길뿐이다. 그분들의 손과 가위에 꽃이 모두 잘려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꽃봉오리가 잘린 몸뚱어리만 남은 튤립가지로 대광해변은 변해버렸다. 아, 내 머릿속에는 그 초록들판이 아니라 아직 아름다운 튤립 꽃봉오리들이 그대로 피어 있는데, 가위에 잘려 포대 속으로 들어가 버린 튤립 꽃봉오리들이 너무 안타까워 눈물이 나려 했다. 너무도 잔인한 일이었다. 죽은 땅을 뚫고 나와 겨우겨우 꽃봉오리를 피운 그것들이 피지도 못하고 잘려야 하다니 말이다. 내 가슴에선 100만송이 튤립 꽃들이 도란도란 소색이던 추억과 그들 다양한 색색의 욕정이 뒤섞여 황무지를 보는 듯 울부짖었다. 꽃들은 AI에 걸린 닭오리도 아니고, 아프리카 돼지열병에 걸린 돼지처럼 병든 것도 아니고 인간이 만든 감염병 코로나19에 걸린 것도 아닌데, 인간의 손에 모가지를 잘리며 살 처분 당하고 있으니 그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남편에게 튤립 꽃봉오리들이 모두 잘려나간 그 해변이 너무 아플 것 같다고 했더니, 남편은 코로나19로 관광객들이 오면 더 위험하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다 그렇단 말인가. 그것은 정말 아닌 것 같았다. 저건 정말 잘못 생각한 것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어쩌다 실수로 꽃봉오리 하나가 싹둑 떨어져 나가도 가슴 아픈데, 저 많은 꽃봉오리들을 잘라내고 그 섬이 한동안 아프지 않다면 말이 안 된다. 식물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아플 것인가 생각해보자. 주말에 내린 봄비가 꽃봉오리 잘려나간 튤립의 잠든 뿌리를 깨울 것이다. 인간이 동물을 함부로 다루면서 각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질병들이 감염병으로 인간에게 들어왔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각종 식물들도 독성을 갖고 있는 것들이 많고, 그 식물들을 잘못 다루었을 때 치명적인 병을 않게 되기도 한다. 그런 것처럼 생명이 있는 것들은 함부로 다루지 말아야 한다.
코로나19 감염이 위험해서 봄 축제를 하지 않는 것은 맞지만, 피는 꽃들을 없애는 것은 잘못됐다. 그곳에 관광객들이 몰려와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있다면, 섬 입구에서 돌아가게 하면 되는 것일 텐데, 감염이 우려되어 꽃들을 잘라 내어 선제조치를 하다니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고 무척 아쉬운 소식이다. 그래서 4월이 잔인한 게 아니라 결국 4월의 인간이 참 잔인한 것이다. 시인 엘리엇은 약 1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1차 세계 대전 후, 황폐한 세계와 구원에 대한 전조를 모더니즘으로 묘사하며, 탐욕과 위선의 인간 군상들을 시 황무지를 통해 전해주고 있는데, 전쟁과 같은 코로나19 감염병이 우리 마음을 황폐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 (球根)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슈타른 버거호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
우리는 주랑(柱廊)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들며 한 시간 동안 얘기 했어요.
저는 러시아인이 아닙니다. 출생은 리투아니아지만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톤 태공의 집에 머물렀을 때 썰매를 태워줬는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 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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