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무점 직전태예’(作事無漸 直前太銳)가 실패의 원인이라고 보았다.
80년대 자라던 어린 시절의 일상생활 속의 착한 행실을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다닐 때는 모든 것의 생활이 바르게 살아가는 것을 원칙으로 알고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눈여겨 보아도 모든 학생들 거의 유소년 시절의 생각은 과격하거나 충동성은 크게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그러면 율곡은 어떻게 했을까를 살펴보자. 유소년기의 행실의 율곡의 평화 사상은 그의 실제 생활과 그의 글을 아울러 검토하는 방법으로 탐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약 그의 실제 생활이 모가 나고 과격하며 주변 사람과 심하게 충돌하는 성향을 지녔다면 그의 평화 사상은 언행이 일치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율곡은 언행이 일치하는 평화 주의자 였다. 율곡은 중종 31년(1536) 12월에 어머니 사임당 신씨(師任堂 申氏: 1504~ 1551)1)의 친정집인 강릉에서 태어나서 여섯 살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어머니와 외할머니 이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다. 사임당은 평범한 주부가 아니었다. 아버지 신명화(申命和)는 깨끗한 선비 조광1) 사임당이라는 당호(堂號)는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어머니인 태임(太任)을 본받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율곡 이이의 평화사상 67조(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서 딸 사임당에게 유학을 가르쳤는데, 그 지식과 행실이 바탕이 되어 유년기의 율곡을 반듯하게 키우고 기초적인 유학을 가르칠 만큼 교양이 있는 여인이었다.
여기에 타고난 예능적 재능을 겸비하여 그림과 자수刺繡 에서 일가를 이룰 정도로 뛰어 났다. 행실과 교양과 예능을 겸비한 어머니의 교육은 유년기 율곡의 정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율곡은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
강릉지방의 순박한 풍습도 어린 율곡의 정서 형성에 크게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강릉 시절의 율곡은 유달리 착한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다섯 살 되던 해 사임당이 병이 나서 식구들이 경황이 없었는데, 어린 율곡은 아무도 모르게 외할아버지 사당에 들어가서 어머니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여 이를 본 사람들이 깜짝 놀라 위로하면서 안고 왔다. 또 어느 날 큰비가 와서 개울이 넘치자 어떤 사람이 개울을 건너다가 휩쓸려 내려갈 위기에 처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손뼉을 치면서 웃고 있었는데, 율곡은 기둥을 끌어안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하다가 그 사람이 무사히 나오자 그쳤다.
여섯 살이 되자 외할머니가 마련해준 서울의 수진방(지금의 청진동) 집으로 돌아와서 본격적인 공부가 시작되었다. 영특한 아들을 출세시키려면 서울로 가서 공부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아버지 이원수(李元秀; 1501~1561)는 나이 41세에 이르렀지만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아무런 벼슬이 없이 놀고 지내는 한량閑良 이었다. 율곡을 가르칠 만한 학식이 없어 사임당이 사서四書를 직접 가르치기 시작했다.
뒤에 학당學堂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지만 기록이 없다. 혹시 독학했는지도 모른다. 이원수는 덕수이씨(德水李氏)로서, 파주 율곡리(栗谷里)에서 대대로 살았다. 6대조인 이양(李揚)은 세종 때 공조참의를 지내고, 5대조인 이명신(李明晨)은 태조의 사위인 심종(沈淙; 세종의 장인인 沈溫의 친형)의 사위가 되어 왕실의 먼 외척이 되었다. 세종은 그에게 동지돈녕부사(종268/통일과 평화(10집 1호·2018)품)의 높은 벼슬을 내렸고, 세조 때에는 홍주목사를 지냈는데 선정을 베풀었다.
이명신이 왕실의 외척인 심종의 사위가 된 것이 인연이 되어 심씨 집안과의 관계가 그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율곡이 뒤에 벼슬 살이를 할 때 동인계열의 사류들은 당시 명종비 인순왕후의 종조부로서 권력을 잡고 있던 심통원(沈通源)과 그의 종손인 심의겸(沈義謙)에게 율곡이 큰 신세를 졌다고 하면서 율곡을 비난했으나, 오히려 율곡은 권력을 남용한 심통원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율곡이 외척 세력과 한패라는 동인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이명신 이후로 율곡의 선대는 하급 벼슬아치로 전락
5대조인 이명신 이후로 율곡의 선대는 하급 벼슬아치로 전락했다. 4대조는 군수(종4품)에 머물고, 3대조는 판관(종5품)에 머물렀으며, 할아버지는 무직이었으며, 아버지 역시 오랫동안 무직이었다. 그래도 파주에는 어느 정도의 재산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죽은 뒤에 그 재산이 4남3녀의 율곡 형제들이 나누어 받았다. 그 상속문서가 지금 남아 있는데, 율곡이 받은 재산은 노비 15명과 논밭 33복이었다.
이 땅은 약 1결의 3분의 1에 해당하므로 매우 가난한 편이었다. 노비를 먹이기에도 부족한 재산이었다. 율곡은 누이들이 받은 재산보다도 더 적게 받았다. 이원수는 이렇게 파주에 선대로부터 받은 약간의 재산이 있어서 자식들에게 상속을 했지만 서울에는 집이 없다가 장모가 사준 집에 거처하게 된 것이다. 한량으로 지내는 남편에 대한 사임당의 실망이 얼마나 컸겠는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사임당은 남편이 늦게라도 공부하여 과거를 거쳐 벼슬길에 나가기를 기대했지만, 이원수는 공부는 하지 않고 당시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 을사사화乙巳士禍를 일으켜 선비들을 죽게 만든 당숙 이기李芑 집에 식객으로 드나들면서 벼슬자리를 달라고 애원하여 50세 되던 해에 조운漕運을 담당하는 수운판관(水運判官; 종5품) 자리를 얻었다. 사임당은 이런 행태의 남편이 더욱 마땅치 않아 당숙집에 율곡 이이의 평화사상은 나들지 말라고 충고하여 발길을 끊게 했다. 오죽했으면, 남편을 “이 웬수야”라고 불렀겠는가? ‘이원수’가 사임당에겐 ‘이웬수’로 보였던 것이다. 사임당은 자식들 교육 문제로 서울에 이사 오긴 했으나, 강릉에 홀로 살고있는 어머니 이씨를 돌볼 사람이 없어서 강릉과 서울을 오가면서 살았다.
사임당이 무남독녀이기 때문이었다. 사임당은 시집온 뒤로 30년간 살다가 48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 가운데 강릉에 산 기간이 16년이었으니, 남편과 동거한 것은 14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원수는 처가에서 마련해준 강원도 봉평에서도 자주 살았으므로, 강릉을 왕래하면서 사임당을 만났을 것이지만, 서울에서 공부해야 하는 율곡은 어머니를 따라 강릉에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희첩(姬妾)으로 있던 여종의 부양을 받으면서 지냈다.이렇게 불행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율곡의 곧은 마음씨는 변치 않았다. 일곱 살 되던 해 이웃에 살고 있던 진복창(陳復昌)이라는 벼슬아치를 보고 율곡은 ｢진복창전｣이라는 글을 썼다. 그 내용은 이렇다. “군자는 마음속에 덕을 쌓는 까닭에 마음이 늘 태연하고, 소인은 마음속에 욕심을 쌓는 그 마음이 늘 불안하다. 내가 진복창의 사람됨을 보니, 속으로는 불평불만을 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려 한다. 이 사람이 만약 뜻을 얻게 된다면 나라의 근심이 커질 것이다.” 그런데 율곡의 예언대로 진복창은 뒤에 독사 같은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이 을사사화를 일으켜 선비들을 떼죽음시킬 때 그의 앞잡이가 된 인물이었다.
율곡이 11세 되던 해 아버지가 병환을 얻어 고생하자 율곡은 자신의 팔뚝을 찔러 피를 뽑아 아버지에게 드리고 사당에 가서 울면서 아버지 대신 자신이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효성 때문인지 아버지 병은 나았다. 13세가 되자 율곡은 진사(進士) 시험의 초시에 급제하여 화제를 일으켰으나, 2차 시험에는 응시하지 않았다. 자신을 테스트하는 것으로 통일과 평화(10집 1호·2018)
율곡은 19세에 가족들이 모르게 금강산으로 들어가서 승려가 되다
그쳤다.율곡이 15세 되던 해 아버지가 수운판관이 되자 그다음 해 삼청동에 있는 우사(寓舍)로 이사를 갔다. 벼슬아치들이 임시로 빌려 사는 집이었다. 이때 사임당도 이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사 간 지 두 달 뒤에 세상을 떠났다. 16세의 율곡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빠졌다.2. 승려가 되었다가 환속하다어머니를 여읜 율곡은 심각한 정신적 공황에 빠졌다.
율곡은 어머니의 죽음을 옆에서 임종하지 못하여 더욱 가슴이 아팠다. 그 이유는 이렇다. 아버지가 세곡(稅穀)을 배로 실어 나르는 수운판관이었기 때문에 자주 배를 탔는데, 이해 5월에 이원수가 평안도에 갈 때 큰아들과 셋째 아들 율곡을 배에 태우고 함께 떠났다가 일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와서 서강(西江)에 도착했다. 이때 평안도에서 놋그릇을 사가지고 왔는데, 그 빛깔이 변해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겼다. 서강에 도착하자 어머니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접한 율곡은 파주 자운산 자락에 모셔진 어머니 묘소에서 3년 동안 여묘살이를 했다.
거상을 마친 율곡은 19세에 가족들이 모르게 금강산으로 들어가서 승려가 되었다. 속세를 버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세상을 버리려고 했겠는가? 여종으로 있다가 계모가 된 어머니가 율곡을 학대한 것도 한 원인이었다. 이 여인 때문에 어머니가 생전에 마음고생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도 율곡은 서모를 뒤에 다시 모시고 살았다. 율곡이 승려가 된 배경에는 집에 불경(佛經)이 많았던 것도 한 원인이 되었다. 평소 율곡은 아버지가 집에서 읽고 있던 불경(佛經)을 즐겨 읽었다고 하므로 불교에 대한 관심도 없지 않았다. 율곡의 착한 마음속에는 율곡 이이의 평화사상 71불교사상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율곡이 머리를 깎고 금강산에 들어가자 생불(生佛)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산사에 퍼졌다.
승려생활이 너무나 모범적이었다. 그러나 1년 뒤에 율곡은 하산하여 강릉의 외할머니를 찾아갔다가 다시 파주와 서울로 돌아왔다. 이단에 빠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자경문｣(自警文)을 써서 새 출발할 것을 스스로 다짐했다. 그는 뒷날 승려가 된 이유를 회고하면서 “어머니를 잃는 재앙이 참담하게 몸에 다가오고, 방향을 잃은 병이 마음을 때려서 미친 듯이 산속으로 달려갔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선조 임금에게는 “일찌기 자모(慈母)를 여의고는 망령되이 슬픔을 잊고자 불경을 탐독하다가 본심이 어두워져 드디어 깊은 산속으로 달려갔다”고 말하기도 했다.
율곡이 세속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어머니에 대한 슬픔이 다스려지고 나서 원래 어머니가 바랐던 유학의 길로 다시 돌아가 작게는 가족의 생계를 구하고 크게는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뜻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향인 파주와 서울을 오가면서 유학 공부를 다시 시작한 율곡은 파주에 사는 중요한 두 학우를 만났다. 한 사람은 우계 성혼(牛溪 成渾)이고, 또 한 사람은 구봉 송익필(龜峰 宋翼弼)이었다.
성혼은 평생 처사(處士)로 지낸 성수침(成守琛)의 아들로 가학을 계승하여 오직 학문에만 전심했다. 송익필은 아버지가 비첩(婢妾) 소생이어서 출세를 단념하고 평생 학자로 일생을 마쳤다. 율곡은 두 학우와 수시로 편지를 교환하면서 학문을 토론하여 대학자로 성장하여 후세인들은 이 세 사람을 가리켜 ‘파주3현’(坡州三賢)으로 추앙했다.율곡은 21세 때 한성시(漢城試)에 도전했으나 ‘대책’(對策)에서만 장원급제하고 끝났다. 다시 성균관에서 시행하는 알성시(謁聖試)에 응시했는데, 수험생들이 옆에 앉는 것을 기피하여 가까스로 응시했으나 또 실패했다.72. 통일과 평화(10집 1호·2018)22세가 되자 우선 가정을 가져야 한다는 가족들의 설득에 따라 곡산노씨(谷山盧氏)와 결혼했는데, 세종 때 의관(醫官)이던 노중례(盧重禮)의 후손이었다. 장인은 목사(牧使; 종3품)를 지냈지만 당당한 집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황해도 해주 야두 촌에 큰 농장을 가지고 있어 훗날 율곡이 이곳에 가서 학교를 세우고 후학을 가르쳤다. 그런데 부인 노씨로부터 아들을 얻지 못해 측실(側室)에게서 세 아들을 낳아 재산을 나누어 주고 대를 잇게 했다.
율곡은 적서차별을 반대했는데, 이를 몸소 실천한 셈이다. 노씨 부인은 율곡보다 8년을 더 살았으나, 왜란이 일어나자 남편 무덤 옆에서 순절하여 뒤에 열녀로 표창을 받았다. 율곡이 생원시와 진사시, 그리고 문과에 급제한 것은 29세 때였다. 이때가 명종 19년(1564)이다. 13세부터 시험에 응시했지만 16년 만에 급제한 것이다. 율곡은 아홉 번이나 장원급제한 천재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최종시험에서 아홉 번 장원했다는 말이 아니고, 여러 차례 시험을 치러 장원급제한 것을 모두 합쳐서 하는 말이다.
벼슬길에 나가 을 촉구하다 문과에 급제한 율곡은 6조의 낭관(郎官: 5~6품)과 사간원의 언관(言官)을 두루 지내면서 패기 넘치는 선비의 기개를 보이기 시작했다. 문정왕후의 동생으로서 권세를 부리고 사림을 탄압하던 소윤파 윤원형(尹元衡)과 심통원(沈通源) 등 부패한 척신(戚臣)을 탄핵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리고 백성을 괴롭히던 공납제(貢納制)의 폐단을 개혁하는 일을 긴급한 과제로 내세웠다.32세 때 명종이 죽고 후사가 끊어지자 중종의 후궁 소생인 16세의 선조가 즉위하자, 선비들은 이제야말로 부패한 척신정치를 청산하고 깨끗한 선비정치를 회복할 때라고 여겼다.
선조도 명성 높은 율곡에게 크게 율곡 이이의 평화 사상. 73 의지하여 홍문관과 사간원의 청요직을 주어 우대했다. 선조는 율곡을 스승처럼 여겼고, 율곡은 선조를 성군(聖君)으로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율곡이 임금에게 기대하는 것은 ‘경장’(更張)이었다. 그것은 혁명적 개혁도 아니고, 수구(守舊)도 아닌 온건하고 점진적인 개혁을 말한다.
중종 때 조광조(趙光祖)가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다가 수구세력의 역습을 받아 회생된 전례를 거울 삼이 율곡은 하루에 한 가지씩 고쳐나가는 점진적 개혁을 추구했다. 율곡은 조광조의 개혁 정신을 높이 평가했으나, 그 방법이 점진성이 부족하고 너무 날카롭고 직선적이어서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이른바 ‘작사무점 직전태예’(作事無漸 直前太銳)가 실패의 원인이라고 보았다. 아무리 개혁의 목표가 정당해도 방법이 너무 날카롭고 급진적이면 반드시 부작용을 가져와서 실패한다는 교훈을 얻은 것이다. 율곡의 평화주의적 개혁노선이 여기에서 선명하게 보인다. 서울:민음사, 2016.한영우.율곡 이이 평전,요약
정관웅
힐링코칭상담연구소장.
시인•칼럼니스트
강진고을신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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