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
작천면 삼열리 용동마을
김양님할머니(94)
해남 북평이 친정인 김할머니는 25살에 용동마을로 시집왔다.
“시어머니하고 며느리하고 대들 방아를 찌로 가서 할아버지가 애기를 보고 있는디, 애기가 막 울어재킨게 바깥에 내다 버렸는게벼, 그런디 가만히 있자하니 울음소리가 안나거든, 나가보니까 애기가 없어져 부렀당만······그래서 호랑이가 데려갔는게비다허고······.”
웃음 끼 있는 표정과 몸짓으로 옛날이야기를 그럴싸하게 들려주신다. 아기가 없어진 것을 안 할아버지가 대창을 깎아 들고 뒷산 호랑이 굴로 들어가 호랑이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앉아 있었단다. 그러자 호랑이가 애기를 업고 뒷걸음으로 들어왔다.
“호랑이는 뒤로 들어온당만, 똥구녁을 먼저 들이 밀고 들어와.”
굴 안으로 뒷걸음질로 들어오는 호랑이의 똥구녁을 대창으로 쑤셔버리자 아기를 그 자리에 떨어뜨리며 도망 가버렸단다. 그 뒤 마을 길가에 죽어 있는 호랑이를 보니 그 호랑이더라는 이야기로 작천 학동 새터라고 불리는 곳에서 실제 있었던 일로 시집와서 어른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란다. 그런데 해남에도 새터라는 곳이 있었단다. 처녀 때 들었던 그곳 이야기도 아기가 없어진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친정 이웃마을 새터이야기는 서방님이 먼저 죽고 아기만 데리고 살던 젊은 과부가 아기를 마당에서 데리고 자다 눈을 떠보니 아기가 사라졌더라는 것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젊은 과부는 다음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아기를 찾아보았고 산 밑 마을 구석에서 뼈만 남은 아이의 모습을 찾았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김할머니는 12살 무렵에 완도에서 배를 타고 모시러 오던 고모할머니를 떠올렸다. 당시 완도군수를 지내던 고모할아버지 덕이었는지 고기나 좋은 물건들을 많이 싣고 왔다는 것이다.
“내가봐도 두꺼비상으로 이삐게도 안생긴 고모할머니가 복이 있는지 잘생긴 고모 할배 만나 친정에도 잘허고 헙디다. 배짱이 좋고 큰 양반이라 조카들에게도 그렇게 대우헙디다. 어린 눈으로도 보입디다.”
갑자기 어릴적 이야기를 떠올리자니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는 김할머니는 고모할머니와 해남에 살던 할머니를 떠올렸다. 당시 해남에서 2층집을 짓고 살던 할머니가 늘 하던 말은 지금 와서 생각하면 미래를 예견하는 말들이었단다.
“이렇게 인종이 많아가지고는 사람이 귀한지 모르고 서로 죽이고 못 살 것이다. 앞으로는 집 욱에다 집 짓고 살고 녹집 짓고 살것이다. 라고 말을 허더만, 그러고는 내가 뭣을 안다냐, 그렇단 말이다. 라고는 더 말을 안해·····.”
5살 많은 총각과 혼인을 했으니 당시로 봐서는 노총각과 노처녀의 만남이 아닐 수 없다. 역시 부모가 맺어준 대로 사는 것인가 보다 하고 살아왔다는 김할머니의 대답이다. 6.25전쟁이 나자 남편은 강원도로 징용을 가게 되었다. 막 걷기 시작한 첫 아이를 둔 때였다. 집을 떠나 소식이 없던 남편은 3년을 강원도 어느 미군부대에서 지내다가 돌아왔다. 손가락 두개가 절단되어서였다.
“거그는 추와서 죽을 것 같다더만, 물 한잔을 먹을라혀도 미군 허락을 얻어야지 절대 못 먹은다고 해, 그날은 미군이랑 여그 사람들이랑 추워서 불을 피고 앉았을땐디 물이 먹고 싶어서 떨어진 쪽에 놔둔 도라무통에 물을 먹을라고 갔다더만, 그때 이북서 폭탄이 날아들어가고 폴 속으로 떨어져서 보니 손가락 두개가 없더랑만······불 옆에 도란도란 있던 사람들은 다 죽어 불고 말여······집에서는 알길이 없는디 3년 정도 지난게 살어서 오롸알.”
이웃마을 죽산리에서 갔던 두 사람 중에도 한 사람은 살아오고 한 사람은 죽어서 돌아왔다며 71살에 돌아가신 남편이 마지막 하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며 들려주신다.
“추와서 못 살 것 같아서 그때 죽을 것만 같았는데 이렇게 죽는 날이 따로 있구나. 라고 허더만.”
누구든지 자신이 타고난 대로 사는 것이어서 젊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안 든다는 김할머니는 지금은 자식들이 살아있을 때 죽는 것이 복이라는 생각이라며 밝게 웃었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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