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군 도암면 석문리의 석문계곡에는 탕건바위가 있다. 탕건바위는 석문 계곡의 길목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한번이라도 이 바위를 보고 지나가고는 했다.
탕건바위는 탕건(갓 아래에 받쳐 쓰던 관의 한 가지))을 쓴 남자의 턱 아래에 큰 구렁이가 머리를 박고 있는 형상을 그대로 본 뜬 것처럼 생겼다. 그리하여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바위가 무슨 잘못을 하여 턱에 구렁이가 달라붙은 우스꽝스런 모양새인가 하고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했다.
아주 오래 전, 도암면에는 흥청망청하게 시간을 보내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천성이 ‘역마살이’라 집안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대신 전국을 홀로 유람하며 방탕한 삶에 빠져 주색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남자 때문에 집안 가산은 얼마 안가 탕진 되어버렸다. 남아 있는 가족들은 사라진 재산이 있던 자리를 허탈하게 바라보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했다. 남자는 홀몸이 아닌, 부인이 있는 가장이었다.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대신하여, 부인이 홀로 빚과 가난을 견디며 집안을 이끌어야했다. 부인은 지친 나머지 목숨을 끊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도 했으나, 언젠가 남편이 개과천선하여 돌아오리라는 한 가닥 희망을 믿고서 계속해서 인내했다. 그러나 이런 부인의 희망이 우스웠는지 남편은 집에 돌아올 줄을 몰랐다. 사람이 마음의 병을 얻으면 정신뿐만 아닌, 육신도 침체된다고 했던가. 부인의 몸은 마음을 따라 점점 마모되기 시작했고, 끝내 깊은 병마를 얻어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부인은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고 말았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남편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방탕하게 살던 그도 이제 지쳤기 때문이었다. 즐거움은 한때고, 몸은 계속해서 늙어만 갔다. 그는 쉬고 싶었다. 남편은 귀향길에 잠시 계라리의 계산마을 앞 석문주막에 하룻밤을 묵었다. 주막에서 남편은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그는 꿈속에서 지나간 즐거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방문이 열렸다. 열린 창호문 너머로 구렁이 한 마리의 그림자가 달빛 아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구렁이로 변한 부인이었다. 얼마나 마음에 깊은 한이 맺혔던가. 부인은 죽어서도 온전히 극락왕생하기는커녕, 구렁이로 변하여 이승을 떠돌게 되었던 것이었다.
부인은 오랜 시간 끝에 재회하게 된 남편에게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왔다. 구렁이는 남편을 그리운 남편을 만난 기쁨과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원망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남편에 대한 애증으로 구렁이는 남편의 턱밑으로 머리를 박았다. 남편은 턱밑에 느껴지는 서늘한 감각에 잠에서 깼다. 그리고 자신을 노려보는 구렁이의 눈빛을 보면서 두려움에 떨었다. 구렁이의 운에는 오랜 세월동안 쌓아온 원한과 증오가 느껴졌다. 그 시선을 견디지 못한 남편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의식을 잃었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이 괴이한 일을 끝가지 지켜봤던 석문산의 신령은 두 사람을 형상화한 바위를 만들었다. 바위에는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가정을 버린 남편과 그런 남편에게 한이 맺혀 구렁이로 변한 아내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석문산의 신령은 석문산의 길목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보라는 듯이 탕건바위를 내걸었다.
석문산을 지나는 사람들은 바위를 볼 때 마다 누군가 자신을 꾸짖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지나쳐야 했다.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