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초고령화시대
신전면 수양마을 윤이뇨할머니(90)
"오래 살으라고 이름을 천하게 지었다고 해"
“한번 만나자해 연애하게 한 번 만나자 해.”
윤할머니가 우스개 소리로 다그쳤다. 올해 아흔이라고 하시기에 기자가 잘 아는 할아버지도 아흔 살이라고 했더니 대뜸 소개시켜달라고 하시면서 서로 동갑이라는 자체만으로 반가워한다.
“생일이 언제디야? 나는 6월인디······나보다 오빠된가 한번 알아보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호기심 가득한 소녀처럼 생일을 따져본다. 생일이 두어 달 늦다고 하자 윤할머니는 금방 누나가 된 것처럼 좋아한다.
“그럼 내가 누나네······내가 누나라 좋네.”
동네에 동갑내기가 아홉 명이 있었지만 지금은 세 명만 남았음이 안타까운 듯 예전에 동갑끼리 계를 만들자고 했으나 하지 않았던 이유를 말해준다.
윤할머니는 18살에 수양마을로 시집왔다.
“옛날에는 양반, 상놈 많이 따졌어. 나는 그런 세상이 없어진 것이 참말로 잘됐다고 봐.”
친정 할아버지는 양반가문과의 혼사를 첫 번째로 꼽는 이조인이었다. 양반가문이어야만 큰 사람이 된다고 하셨던 할아버지의 말에 의해 윤할머니는 해주정씨 집안으로 시집왔다. 조실부모한 후 형님 아래서 자란 남편은 글만 읽는 선비였고 일을 할 줄 몰랐다.
“당신도 폭폭허재 일을 못헌게, 밥 지을 쌀이 없어도 쌀 없다 소리를 못해봤어. 친정에 갈 때 굶고 가도 굶었다 소리 절대 안하고 할아버지 나 못살겄소 소리 안했어.”
남편이 일을 못했기에 아들 나면 제일 먼저 쟁기질부터 가르칠 생각을 했다는 윤할머니는 양반가문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살았다. 소리 없이 집안일을 헤쳐 나가니 주변사람들에게는 역시 양반집에서 시집와서 얌전하다는 치사를 받았지만, 마음 병이 생겼고, 스스로 이겨내기 위해 가까운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아들 둘 두고 먼저 가 버린 것을 어쩌겄어. 차라리 대고 해볼것인디, 쌈이라도 해볼것인디 그것도 못해봤어. 그래도 또 나는 묵을 것 입을 것 다 입고 산디 먼저 간 사람이 불쌍헙디다.”
젊은 여자가 혼자 살면서 바깥에 나다니는 것 자체가 흉스럽게 보일까봐 동갑끼리 하자는 계도 하지 않았으며, 저녁이 되면 일찍 문을 걸어 잠갔다.
“호랑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무서워서 못나가······. 밤에는 절대로 못나갔어.”
남자들 하고는 절대 말을 안 하고 지내다보니, 누가 시집가라고도 안하고 오히려 무서워 가까이 오지도 않고 말을 걸지도 않더라고 말한다. 일을 할 줄 모르던 남편 대신 쟁기질 빼고는 다했지만, 혼자되어 어린 아들 둘과 살아가는 일은 더욱 힘들었다.
“밤에 잠이 안와서 일어나 염불을 하면 속이 딱 가라앉어, 절을 믿어왔기 때문에 평생에 이러고 사요.”
세 곳의 절을 옮겨 다니며 부처님께 공을 들였던 것은 절을 세 번 옮겨야 자식들에게 좋다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던 윤할머니는 부처님께 공들이는 일을 평생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집일을 끝내고 나면 언제나 절에 가서 불당을 닦고 부엌 설거지 등을 도맡아서 해놓곤 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이 부처님께 할 수 있는 유일한 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둘째 아들이 홍역을 앓고 왼쪽 어깨 소아마비에 걸려 고생헌디 뭔 생각을 허겄소. 재혼이고 뭣이고 아무 생각 없이 세월이 지나부렀어.”
남편이 몇 살이었는지, 몇 살에 세상을 떠났는지 그런 저런 생각은 해보지도 못하고 살아온 힘든 세월이었다면 고개를 저으셨다. 그러한 힘든 세월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부처님께 찾아가 기도했고 또 부처님이 기도를 다 들어주어서 지금껏 살고 있다며 윤할머니는 염주 알을 정성스레 돌렸다.
“우리아들 (큰아들;정장윤70)이 효자여, 그래도 내일이라도 죽어얀헌디, 어디 죽겄는가 좀 봐봐. 내 이름을 할아버지가 천하게 지어서 이렇게 오래 살어······위로 둘이가 먼저 가서 또 죽을까봐 이름을 천하게 지었다해.”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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