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신문화의 큰별 탄허스님의 생생한 육성 법문
탄허스님의 선학강설③
상경하(上敬下) : 계현(戒賢),
제자 신찬(神賛)에게 법을 청하다
그런데 벌이라는 놈이 들어와서는 자꾸 창을 뚫어서 나가려고 한다. 나갈 수가 있나. 자꾸 뚫어도 못나가지. 그래서 벌(蜂)을 두고서 읊은 시가 염봉(念蜂), 제목이 염봉이지.
염봉(念蜂)
공문(空門)에 불긍출(不肯出)하고
“빈 문에 즐거이 나가지 않고”
타장야대치(打窓也大癡)라
“창문을 자꾸 두드리니 또한 크게 어리석구나”
백년(百年)을 찬고지(鑽故紙)한들
“백년을 날개질로 뚫어본들”
하일출두기(何日出頭期)야
“어느 날에 머리를 낼 기약이 있겠느냐”
벌을 주고서 지었지만 스님(신찬의 스승 계현(戒賢)이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자기가 경 보는 거 가지고 조롱하는 거 같거든. 그래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 이튿날 인자 그 목욕을 하는데 등을 문지르라 하니까 등을 문지르면서
호개법당(好皆法堂)이나 불무영험(佛無靈驗)이구나.
“다 좋은 법당인데 부처가 영향력이 없어”
불수무령(佛雖無靈)이나 능방광명(能放光明)이구나.
“부처가 영험은 없지만 능히 광명을 놓는구나”
등을 문지르다가 좋은 법당은 껍대긴지 부처가 영험이 없구나. (스승이) 힐끗 돌아보니까 부처가 영험은 없으나 능히 광명을 놓는구나. 그 괘씸하기는 한데 희한하거든. 어저께 벌을 두고서 읊은 것도 자기 경 보는 걸 조롱하는 거 같고, 오늘은 목욕하는데 조롱하는 거 같고 말이여. 그래서 목욕 다 하고 나서 불렀어.
“야 네가 어제 그 벌을 보고 읊은 것도 나를 조롱하는 것이고, 오늘 등을 문지르면서 네가 조롱했으니 뭔 소식이냐?”
물으니까 이실직고를 했어.
“사실은 남방에 가서 공부하다가서 뜻을 좀 얻었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상경하(上敬下), 법상(法床)을 차려놓고 법을 청한 거야. 자기가 제자 노릇을 하고 설법해 달라고. 그게 상경하야.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보는 거.… 어진 것을 기른 거야. 그러니까 뭐라고 설법을 했는고 하니, 그 시식(施食)에도 있는 그거를 봤어.
진성(眞性)이 뮤염(無染)하야 본자(本自)가 원성(圓成)하니
“참다운 성미가 물듦이 없어가지고서 본래 스스로 원성하니”
단리망연(但離妄緣)하면 즉여여불(卽如如佛)이라
“다만 망연을 여의면 곧 여여한 부처이다”
•망연:허망한 인연
그런데 그 스님이 거기서 홀연히 알아들었어. 그런 소식도 상경하(上敬下).
•“구라마습이 처음 소승교를 배울 때 반두달다에게 정례하였다. 이것은 ‘하경상(下敬下)’.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공경하는 것으로, 이를 귀존(貴尊)이라 한다. 반두달다가 나중에 대승법을 구할 때 구라마습에게 예를 드렸다. 이는 ‘상경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공경하는 것이다. 이를 존현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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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꺾지 않으면 배울 것이 없다
(不折我無以學)
“⌜주역⌟에 겸(謙)은 덕(德)의 병(柄)이라고 했고, ⌜서전⌟에 말하기를 ‘네가 자랑하지 않으면 천하가 너로 더불어 능한 것을 다툴 이가 없다. 네가 오직 자랑하지 않으면 천하가 너로 더불어 공을 다툴 이가 없다”하며, 여기서 벌(伐)은 ’자랑할 벌(伐)‘이라 그려.
“안자(晏子)가 하는 말이 ‘대저 작(爵)이 더욱 높은 자는 뜻이 더욱 낮고, 관(官)이 더욱 큰 자는 마음이 더욱 작다. 녹(祿)이 더욱 두터운 자는 시(施)가 더욱 박(博)하다”하며 “자하(子夏)가 하는 말이 ’경(敬)하여 잃음이 없고 공(恭)하여 예(禮)가 있으면, 온 사해(四海) 안이 다 형제긴‘이라고 했느니라” 이 자하는 공자의 십대 제자 중에 문학가로 제일가는 양반이다. 사마우(司馬牛)라는 사람은 공자의 십대 제잔데, 공자를 죽일라고 하는 천하의 못된 놈 사마환퇴(司馬桓魋)를 형으로 뒀기 때문에 탄식한 말이다.
•사마우가 걱정하면서 말했다. ‘남들은 모두 형제가 있는데 나만 홀로 없구나’ 자하가 말했다. ‘나는 들으니,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 있고, 부유함과 귀함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 하였네. 군자가 몸가짐을 삼가고 잃음이 없으며 남을 대함에 공손하고 예가 있으면 천하 사람들이 다 형제이니, 군자가 어찌 현제가 없음을 걱정하겠는가?’
•자하:성은 복(蔔). 이름은 상(商), 자(字)가 자하다. 복상은 공자보다 41세 연하로 문학에 있어서 자유(子游)와 함께 공자의 중요한 제자였다. ⌜춘추⌟ ⌜시경⌟, ⌜서경⌟등의 경전을 후대에 전수했으며,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게으름을 부릴 바에는 차라리 바둑, 장기라도 두는 것이 낫다
“공자의 말씀에 배불리, 뱃대기 잔뜩 부르게 먹고서 마음을 쓰는 바가 없으면 어렵다” 어렵다는 것은 도에 들어가기 어렵다. 아까 그 저 총림(叢林) 얘기를 하는데 거기 이 말 나왔잖아“
“바둑 두고 장기 두는 자가 있지 않느냐. 그거라도 두는 것이 안 두는 것보다 낫다” 이렇게 말씀하셨어. 그게 무슨 소린고 하니, 포식종일해가지고 마음을 쓰지 않고 뻔뻔 노는 놈한테 경책한 말인데, 차라리 바둑 주고 장기 두는 편이 낫지 않느냐. 그게 바둑 두고 장기 두라고 한 게 아니다 이 말이여.
그런데 꼴떼기 선비들이 그 문장을 갖다가 “공자 말씀에 박혁(博奕: 장기와 바둑)도 유현호이(猶賢好已)니라. 바둑 두고 장기 두는 것도 않는 것보다 낫다고 그랬다. 박혁 두세~” 이런 얘기가 있거든. 하여간 희한하게 문장을 갖다 쓴 거야.
•꼴떼기: 꼴뚜기의 방언.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의미다.
지음(知音)인 친구 : 백아절현(伯牙絶絃) 이야기
본래 이 지음(知音)이라는 술어가 어디서 나왔는고 하니, 종자기(鍾子期)한테서 나온 거야. 이 백아(伯牙)가 동양 역사에 거문고를 제일 잘 타는 사람인데, 백아의 지음이 종자기다. 그러면 거문고 곡조 소리를 알아준다. 그건 친구 간에 서로 그 사람 뜻을 알아준다. ‘아 옳지 그럼!’ 그렇게 되는 거여. 지음(知音)이 지기(知己)랑 자꾸 혼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백아가 저 진(晉)나라 대부(大夫)로서 초(楚)나라에 사신을 가게 됐는데, 가다가 풍랑을 만났어. 그래서 낙도 섬에 다다랐는데 달밤에 거문고 한 곡조 뜯으니까, 참으로 이 거문고 소리가 기막힌데, 저쪽에서 누가 제대로 장단을 맞추어 “간등득~ 건득~”하거 지음이 흘러나온다. 거문고 연주 수준이 워낙 높으니 듣는 사람이 곡조를 제대로 아는지 바로 알 수가 있다.
“하~ 내가 평생 이거 알아주는 놈 하나를 못 봤는데…요 어디 있나?”
사방을 둘러보니까 웬 사람이 지게 목발을 치면서 장단을 맞춘다. 그래 산수곡(山水曲)을 뜯었는데,
청산(靑山)은 아아(峨峨)하고 녹수(綠水)는 양양(洋洋)하고
“푸른 산은 높고 높고, 푸른 물은 양양이 흘러가는구나”하는 산수곡을 뜯어. 그런데 웬 놈이 지게 목발을 뚜드리면서 “청산은 아아하고 녹수는 양양”이라고 맞장단을 친다. 네가 누구냐고 그러니까 종자기래. 그래 거기서 의형제를 맺는다. 일국의 대부, 장관하고 그 떼당꾼(나무꾼으로 추정)하고 의형제.
그 지음 자리에는 국경도 없어. 귀천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 그래 거기서 그렇게 놀다가 풍랑이 가라앉아서 특사로 갔다. 갔는데 3년 만에 그 친구 생각이 나서 찾아왔다. 전엔 풍랑을 만나서 왔지만 이번엔 그냥 찾았단 말이야. 그 자리에 와서 또 한곡조 뜯는데 웬일인지 비곡(悲曲)이 나온다. ‘참 희한하다 어째서 이럴까?“
그 종자기를 찾으려니 어느 동넨지 모르니까 길을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 가다가 보니까 세 갈래 길이 있는데 웬 노인이 괭이를 들고 온다.
“여보 노인. 종자기라는 사람이 어느 마을에 사는지 아시오?”
물으니 그 노인이 엎어져서 대성통곡을 해. 그 왜 이러시냐니까
“이런 귀골이 어째서 종자기를 찾습니까?”
장관이니까 귀하게 차렸을 거 아니야.
“내 종자기를 만나려 그런다오”
하니, 종자기가 자기 아들인데 죽었다 이거야. 그러니까 슬프게 비곡이 나오지. 백아가 거문고만 잘 뜯는 게 아니야. 의형제니까 수양아버지 아니여. 그 부모를 데려다 자기 친부모처럼 모셨다. 그리고 거문고를 산산조각이 나게 다 부숴버리고 다시는 거문고를 뜯지 않았다. 지음이란게 그런 것이다.
<정리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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