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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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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흑백 사진 한 장
황형자(강진문인협회 회원)

흑백 사진 한 장

 

황형자(강진문인협회 회원)

 

형자야 반갑다야 이거 얼마 만이냐

동향에 먼 친척이 되면서도 남과 여란 성별이기에 서로 모른척하고 지나곤 했다. 어린 시절 말수도 적고 부끄럼을 많이 타던 일호는 한 번도 나에게 말을 걸지 못했고 나 또한 그랬다. 그렇게 우리는 초등학교 졸업가를 불렀었다. 그런 일호를 만난 건 초등동창회 날이었다. 왁자지껄 밝은 웃음으로 포옹과 악수로 서로를 반기며, 50년 만에 만남이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라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의 흔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던 상황에서도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유년 시절 얼굴들은 약간씩 보였으나, 어떤 애는 도통 알아 볼 수가 없었다. 50년이란 긴 세월을 생각해보면 어떻게 지내왔는지 까마득하기도 하다.

자리에 착석하고 정겨운 눈빛들의 입담이 옅어질 즈음이었다.

형자야 이리 와 봐, 너에게 꼭 보여 줄 것이 있는데.” 하며 그 수줍던 일호가 말을 건넸다. 나는 일호 곁으로 자리를 옮겨, 궁금증에 빨리 보고 싶다는 설렘으로 바라봤다. 일호는 안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냈는데, 닳고 닳은 헌 지갑이었다. 지갑 속에서 일호는 흑백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 주었다. 어머니와 일호였다. 사진 속 젊은 새댁은 뽀글뽀글한 퍼머 머리를 하셨고 일호는 초등학교 2학년쯤 되어 보였는데 모자가 일호의 얼굴을 반쯤은 가리고 있었다. 옷도 어디서 구했는지 중학생 교복까지 입고 있었다.

내 보물 1 호다. 힘들 때마다 꺼내 본다. 사진이 많이 닳았지?” 하며 나를 쳐다보는 일호의 얼굴에서 초등학교 뒷산 언덕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삐비꽃 같은 유년이 서려있음을 보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난 일호는 야간중학교와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며 새벽에 신문을 세 군대씩 배달하면서, 숙식은 또래와 여럿이 해결하는 생활을 했노라고 하였다. 그러고도 등록금도 내야하고 생활을 해나가야 했으므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었다는 자신의 살아온 길을 짧게 들려줬다.

가난으로 평생 찌드신 어머니셨지. 그리고 가난으로 뭉쳐진 우리 가족이었고, 장남으로서 나는 그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게 하고 싶었어.”

그러면서 사진을 보여준 일호는 마치 사진 속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많은 말들이 담겨있다는 듯 나를 보았다.

이 사진은 나의 인생을 견고하게 지탱해 준 버팀목일 뿐 만 아니라, 내 모든 소망이었지. 가난에서 벗어나야 했으니까,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야.” 사진 한 장으로 자신의 살아온 길이 모두 설명되는 순간이었다. 그 사진으로 그는 명문대학을 졸업하였고 당당히 한국전력에서 상당한 거물이 돼 있었다.

1960년도 그 시절에는 배고픔과 배우지 못한 서러움을 덕지덕지 달고 다니는 시대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친구들 중에 대학을 졸업한 친구는 3명뿐이었다. 거기에 일호도 낀 셈이다. 그렇게 성공한 일호는 초등학교 동창생 친구들에게만큼은 거리감이 전혀 없는 넉넉하면서도 겸손한 친구다.

문득 세월의 저편에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일호, 이호, 삼호, 사호, 오호 아들 내리 다섯을 둔 일호의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는 무척 부러워하셨다. 두 분이 탁배기 한두 사발 잡수시고 술기운이 거나하시면 손가락 세워가며 다섯 아들을 자랑하던 일호 아버지셨다. “나는 아들이 다섯이라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하시면서, 자네는 딸만 일곱이지.....“

두 귀 바퀴가 귀찮을 정도로 다섯 아들을 자랑하시던 일호 아버지셨다. 그런 날에 집에 돌아오신 나의 아버지는 내 팔자는 딸만 일곱이라고 울컥거리시곤 했었다. 이제 두 분은 이미 고인이 되셨다.

나는 일호가 보여준 사진을 보면서 까마득한 시간으로의 상념에 젖어 있는데, 친구들이 옆자리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것 아닌가.

여기 동창회 모임이지, 친척 찾으러 왔냐고?”

한마디씩 일침을 놓았다. 초등 동창들은 이렇게 나이를 먹고 언제 만나도 허물없어 좋다. 우리들 가슴마다 지피는 추억으로 어울리며 유쾌한 농담과 담소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운 날이었다. 설레이며 보고 싶던 동창들의 만남은 반가움에 거나한 술 파티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나갔다. 그리고 회장님의 끝인사가 시작되었다.

다음 모임은 고희 때 갖기로 하고, 우리 친구들, 모두 모두 건강하게 다시 만나기로 합시다.”

오랜만에 유년시절로 돌아가 본 머리가 희연 친구들이 우우우하며 박수를 쳤다. 또 각기 다른 시간 속으로 연기처럼 흩어지면서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그 멀어져 가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초등학교 뒷산 삐비꽃이, 이제는 할미꽃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다음 만남의 날에 꼭 한 친구도 잃어버리지 말기를 하는 마음으로 아쉬운 작별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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