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온 길 윤재준 (주)선도소프트 사장 회고록
미래 전망
내가 스탠포드에 다닐 무렵에는 IBM 의 360과 370 메인 프레임 (main frame) 과 DEC 의 PDP-11 등 미니 컴퓨터 시대였다. IBM 360 이라야 지금의 노트북 컴퓨터 보다도 성능이 훨씬 모자랐다. 물론 지금의 워크 스테이션 (work station) 이나 PC가 출현하기 훨씬 전이다. 한국에는 KIST, 경제기획원, 통계청 및 서울대 등 10 여곳 미만에서 컴퓨터를 보유하는 정도로 컴퓨터가 아주 귀한 세상이었다. 나는 미국에 오기 전에 KIST 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았다. 그 당시는 키보드가 없었기 때문에 Marquette 대학에 다닐 때는 펀치 카드 (punch card)를 이용해서 프로그램이나 데이터를 입력하곤 했다.
내가 대학에 진학할 당시는 취직이 가장 큰 희망이었고 대학 진학의 가이드 라인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계 공학을 택했다. 그 당시는 화학 공학과와 기계 공학과 출신들이 취직이 제일 잘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미국에 와서 생각이 달라졌다. 앞으로는 디지털 (digital) 세상 즉 컴퓨터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확신이 생겼다. 35년이 지난 지금 내 예측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모든 사람이 컴퓨터와 모바일폰 (mobile phone)을 가지고 생활하게 되었으며 인터넷이 우리들의 생활과 사업과 사고까지도 바꾸어 놓았다. 말 그대로 디지털 세상이 된 것이다. 스탠포드에 올 당시 컴퓨터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기계 공학에서 컴퓨터 공학으로 바로 옮기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생산 시스템을 다루는 산업 공학을 택한 것이다. 그렇지만 워크 프로세스 관리 등 산업 공학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다만 컴퓨터 기술 활용으로 바꾸기 위한 중간 단계로 산업 공학을 선택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진로를 컴퓨터 응용 분야로 바꾸기로 하고 컴퓨터 제조 회사에 취직하기로 마음 먹었다. 따라서 미국에서 첫 직장으로 택한 것이 컴퓨터 회사인 암달 코퍼레이션 (Amdahl Corporation) 이였다. 암달은 IBM 에서 360과 370등 세계 최초로 업무용 컴퓨터를 설계한 암달 (Amdahl)이 IBM 을 그만두고 만든 회사이며 IBM 의 경쟁 회사였다. IBM 처럼 암달 회사의 첫 메인 프레임 컴퓨터는 암달 460과 470 이였다.
l 막다른 선택
팰러 앨토 클리닉의 Dr. Lash 는 나에게 제 2차 암 수술을 하라고 끈질기게 설득했디. 그래도 듣지 아니하자 암 때문에 목의 림프 노드가 썩어 들어가는 흉측한 사진들을 보이면서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의학적으로 무모하다고 생각했던지 마침내는 스탠포드 대학 병원 의사 10여명과 좌담회 형식 면담을 주선했다. 스탠포드 대학 병원 의사들은 세계적으로 뛰어난 의사들이다. 여기에서 나 나름대로의 대응 방안을 이야기 했더니 어떤 의사는 내가 정신적으로 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영어도 서툴고 의학에 대해 전혀 모르는 엔지니어가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않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조용히 생각했다. 두 가지 할 일이 있는 것 같았다. 하나는 취직을 해서 식구를 먹여 살리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나 나름대로 암과 공생하던 물리치던 암을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일이었다. 이 두 가지 할 일은 내가 세상을 그만두기 전까지의 일이었다. 내가 죽는다면 대학 입학 이후 가정 교사 생활에서부터 지금까지 어렵게 어렵게 살아온 것은 그만두고라도 가족에게는 너무 미안한 일이었다. 특히 아내는 고생을 모르고 살다가 시집 와서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셋방살이와 처가살이에 고생하다가 미국 와서는 죽어 라고 키펀치 생활만 하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기 인생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 후 두 애들과 생활은 어떻게 해 나가겠는가 생각했다. 그래서 죽기 전까지만이라도 벌어서 식구를 먹여 살리다 세상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해서 학교를 그만 두고 직장을 갖기로 했다. 박사 학위 취득 하는 일이 문앞까지 왔고 박사 학위를 따지 못하면 인생 낙오자가 아닌가 하고 두려웠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박사 학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훨씬 더 중요하고 급한 일들이 있었다. 그래서 컴퓨터 제조 회사인 암달 코퍼레이션 (Amdahl Corporation) 에 취직했다.
작은 봉급이지만 내가 벌어서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있으니 내가 할 일의 반은 시작한 셈이다. 다음은 암으로부터 살아 남는 일이다. 내가 의사들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2차 수술이 너무 광범위하고 2차 수술을 하면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나는 나 나름대로 암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기로 했다. 첫째, 막연하지만 현재 나의 의식주 생활이 내 몸에 암을 발생시킬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삼성 그룹의 이건희 회장께서 기업의 발전을 위해 처와 자식을 빼고는 다 바꾸라고 했다고 했던가. 나야 말로 처와 자식을 빼고는 나의 모든 의식주를 다 바꾸기로 했다. 둘째, 몸에서 암을 발생시킬 수 있는 요인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서 그러한 요인들을 다스려 가기로 했다. 즉, 간단히 말해서 몸에 해로운 것을 집어 넣는 일과 몸에서 해로운 것들을 내보내는 작용 (혹은 신진대사)이 평형을 잃으면 해로운 것들이 몸에 쌓이게 되고 이것 때문에 몸의 세포에 변이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물론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이러한 기능이 다르겠지만 말이다. 지극히 공학적인 사고와 접근 방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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