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83회)
강진읍 신학마을
윤정님(90)할머니
“안 허먼 쓰겄다 혀서 내가 참으먼 ok여.”
윤정님 할머니는 매일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출근하는 아들 아침상을 차려준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낮 12시부터 50분간 기도를 하며, 저녁 먹기 전에도 똑같이 기도한다.
“아들기도는 날마다 허고 딸들 기도는 일주일에 한번만 해. 그러면 딱 50분 걸려.”
9남매를 둔 윤할머니는 자식들이 많아서 기도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에 딸들의 기도는 줄일 수밖에 없다며 웃는다.
“딸들도 똑 같이 잘하지만, 그리도 아들이 중하지.”
마당청소며, 집안을 깨끗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뒤돌아서 티끌하나라도 보이면 가만있지 못하고 주워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늘 바쁜 윤할머니다. 집안 청소가 끝나면 오후 3시에 회관으로 나와 5시까지 놀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내 책이 17개나 될 것이여.”
자식 누가 언제 와서 용돈을 얼마 주었는지, 손자 누구에게 얼마의 용돈을 주었는지, 누가 언제 몇 시에 전화를 하였는지, 전화요금과 생활비 들어간 내용을 지금도 매일매일 빠짐없이 적어 내려가는 윤할머니다. 그렇게 적어놓아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란다.
윤할머니는 18살에 성전면 도림리에서 신학마을 3살 위 총각에게 시집왔다. 친정 할아버지가 면장을 30년을 넘게 하고 있었으니 남부럽지 않은 친정집이었다. 천도교를 믿던 할아버지여서 가끔은 천도교인들이 집안을 드나들었고, 그 중의 한 사람이 시댁 할아버지였다.
“시댁 고모가 우리동네서 살았고, 서로 천도교를 믿자고 어쩌고 허면서 들어 다니더니 속닥속닥 허더만 여워 부렀어.”
일제시대였던 당시 학교에서는 일본글과 말만 가르쳤기 때문에 한글은 동네 야학에서 배운 것이 전부였다. 남편은 한문에 능한 사람으로 글씨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시대는 그런 능력을 쓸만한 데가 없었다.
“그때는 군대 안갈라고해 가먼 죽어분께, 제비 뽑아가고 군대 갔는데, 여섯 명이 가서 두 사람 밖에 안살아 왔더만.”
군대에서 돌아온 남편은 학교에서 10살 11살 되는 아이들을 30여명 모아서 가르치는 일을 했다. 이후 마을일을 했던 남편은 회관 짓는 일과 저수지 막는 일, 마을 전기를 끌어오는 일 등을 하여 마을에 공을 세웠다.
“나는 일만 많이 했어. 날마다 미영잡고 베짜고 밭메고 그 일이지. 나중에는 친정에다 말한게 기계베틀을 사서 보냈더만.”
58세에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과 33년을 살았지만, 한 번도 남편의 말을 거역해 본적이 없다는 윤할머니는 자신이 웃어버리면 모든 것이 해결되어 버리는 일이기에 싸울 일이 없었다면서 빙긋이 웃는다.
“남자는 욱으로 돌고 여자가 밑으로 돌아야 그 집이 훌륭한 집안이여.‘
그저 자신이 웃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따질 필요가 뭐 있겠느냐는 윤할머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뭣이 좋아서 그렇게 웃느냐고 묻기도 하였단다.
“내가 참으먼 다 좋아, 저것은 안허먼 쓰겄다 혀서 내가 참으먼 ok여.”
그렇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대구해서 집안에 좋을 일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는 윤할머니다.
“19년 동안 교회 열심히 다닌디, 지금은 주일에만 나가고 있어.”
91년도에 다리 신경통으로 고생했던 윤할머니는 어느 일요일 새벽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빨리 일어나거라, 일어나거라. 528장을 봐라> 라는 소리였다. 얼른 528장을 펴보니 <어느 곳에 가든지 너를 보살펴주마>라고 씌여 있었고, 다리 신경통으로 고생하며 서울 광주 등의 병원을 전전긍긍했던 다리는 씻은 듯이 나았다. 이후 15년이 지났어도 다리 병은 다시 생기지 않았고, 3년간 새벽기도를 다녔다.
“불쌍허긴 허지만은 하늘나라 가부렀는디, 뭐가 보고싶다요. 밭에서 뫼써놨는디 그 옆으로 가야지요.”
9남매 중 넷 결혼시켰지만 다섯이나 남겨두고 먼저 떠난 남편이었다. 먼저 간 남편이 너무 편안하게만 생각되었고 자식들을 가르치고 여울 생각에 앞이 까마득한 세월이 다 지나갔다. 막내아들이 간간히 보라면서 방에 세워두고 간 남편 사진을 들여다본다.
“당신은 참 편안히도 산게 좋겄소.”
윤할머니는 오늘도 이렇게 기도한다.
<아버지 나 건강하게, 하늘나라 갈 때는 간지 모르게 가게 해주쇼>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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