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신년특집
한 평생 흙과 살아온 우리 시대의 어머니
당신의 손이 있었기에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강진군 성전면 송월리 알콩달콩 체험장 대표 주 경자씨
주경자씨는 1952년 성전 신풍에서 태어났다. 1973년 12월 조강국(강진여중학교 교감)씨와 결혼한 이래 밤낮으로 쉬는 날 없이 흙과 살아온 전형적인 농업인이다. 우리는 흔히 매우 부지런하고 지악스런 사람을 일컬어서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일을 한다고들 하지만 주경자씨는 눈을 뜨면 일의 시작이요, 눈을 감고 잠을 잤을 때 비로소 휴식하는 것이어서 일하는 때가 일정하지 않다. 꼭두새벽이고 오밤중이고 간에 주씨는 일어나기가 무섭게 손을 놀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주씨의 손은 일에 능해서 선수(選手)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도와주는 조수(助手)이기도 하다. 그리고 손이 안 가는 것이 없고 그 가지 수가 너무 많아 천수(千手)이기도 한다.
친정어머니로부터 배운 교훈
주경자씨 친정어머니는 쪽박으로 반 되도 채 되지 않은 쌀을 들고 시집을 갔다. 덕석을 깐 남의 집 작은방에서 살면서 지독한 가난을 신혼 때부터 맛보았다. 그러나 친정어머니는 억척스레 일을 하기 시작했고, 종내에는 마을에서 가장 잘 사는 1등 부자가 만들었다. 그런 친정어머니 밑에서 자란 주씨는 왜 1등 부자가 되는가를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은 일꾼에게 최고 대접을 해주는 일이었다. “친정어머니는 남편이나 자식보다도 일꾼을 더 우대했습니다. 젤 많이, 젤 맛있는 것으로, 그리고 먹고 남아서 싸갖고 갈 정도로 챙기다보니 친정집 일이라면 너나나나 덤벼들어 일을 해주었습니다” 주씨는 친정어머니로부터 일의 철학을 배웠고, 특히 밤새도록 가마니 짜는 소리, 물레 돌리는 소리, 베 짜는 소리를 들으며 일이란 밤낮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터득했다. 그리고 시집을 갔는데, 8대 종갓집 종부자리였다.
종갓집 8대 종부
시집을 가서 보니 조부모 두 분이 사시면서 반가의 전통을 고수하고 계셨다. 사랑채에서 소작농들이 살면서 스무 마지기의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일이라곤 전혀 모르는 조부모 때문에 집안 꼴은 말이 아니었다. 6개월 동안 교사인 남편을 따라 해남 송지에서 살다가 남의 집 작은방 살이도 그렇고 집안일도 못 잊어 본집으로 돌아왔다. 농사일을 친정에서 보기만 했지 경험은 없었던 터라 첫 해에 다섯 마지기의 농사를 처음 지어보았다. 스물두 살에 결혼했으니 스물네 살 때부터였다.
“본가에 오니 비로소 이웃 사람들의 말이 귀에 들어왔어요. 망해가는 집안이라고 말입니다. 옛날에 비해 지금은 가세가 곤궁해지고 기울어져 간다는 집안이란 말을 들었을 때,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습니다. 이제 조씨 집안의 종부로 들어온 이상 반드시 책임을 다하겠다고요.”
그러나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단박에 가세가 일어나겠는가. 오히려 주씨의 발목을 붙잡는 것은 하루 종일 논밭과 집안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한 달에 한 번꼴로 찾아오는 기제사만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몸을 깨끗하게 하고 자정에 제상을 차리면 새벽녘에 철상을 했다. 꼬박 날을 새는 일이었다. 게다가 집 안팎은 풀 천지여서 물뱀이 어디서고 나타날 것 같았다. 그 때부터 주씨는 눈만 뜨면 일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환갑이 다 되도록 일만 해 온 탓에 그네의 손은 선수(選手)가 되어 갔다.
하늘과 땅만이 아는 일
제아무리 일을 잘한다고 해도 여자 혼자서 하는 일은 잘 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이라곤 전혀 모르는 조부모를 모시는 것도 그렇고, 남편 역시 그저 학교 교사생활에만 충실할 뿐 집안일은 나 몰라라 하는 편이어서 주씨는 하늘과 땅만이 아는 일을 해내기 시작했는데, 어느 틈에 가세가 슬금슬금 일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당시 수세나 토지세가 많았던 시절, 소작료를 받아봤댔자 세금 주고나면 막상 땅주인은 먹을 것이 없었지만, 악착스레 직접 농사를 지어나가자 거두어들이는 수확도 쏠쏠했고, 재미가 생겼다. 그런 가운데 감· 옥수수, 채소 등과 심지어는 은행잎까지 따서 성전장터에 내다 팔았다. 살림에 보탬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씨는 그러나 농사일을 죽자 사자 하는 것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본채가 초가지붕에 겨울철이면 찬바람이 미친년처럼 파고들어 사칸 접집의 기와집을 지어냈다. 이 때 직접 목수일은 하지 못하므로 조수(助手)의 손이 큰 역할을 해냈다. 뿐만 아니라 외양간이 있는 아래채를 모두 사람이 지낼 수 있도록 고쳤다. 집 짓고 집고치는 일이란, 해도 해도 굴어지지 않는 게 당연하다. 장정들이 덤벼들어 해치우면 모를까, 여인 홀로 해내는 일은 끝도 갓도 없었다. 그래서 그네는 하늘과 땅만이 알만큼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씨는 본채와 아래채를 짓고 고치고 나서 사람 사는 집 모양 꼴을 갖추자 이번엔 주변정리를 시작했다. 하수구를 놓고 나무를 심고, 마당을 고르는 등 집 주변을 가꿔나가자 제법 정원이 있는 아름다운 집으로 탈바꿈되어 갔다.
하지만 종부의 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먹을 것의 농사짓기와 사는 것의 양택을 겨우 마련해 놓고 나자 이번엔 조상들을 모신 음택이 문제였다. 먼 곳에 있는 선대의 묘를 이장해야할 일이 생기는가 하면 직접 그 많은 묘의 벌초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장을 할 때도 직접 제가 했지요. 벌초 역시 직접 낫질을 해서 해년마다 해왔습니다. 낫질 하나는 끝내줍니다”
알콩달콩 체험장
녹향월촌은 성전의 8개 마을을 일컫는다. 정부로부터 아름다운 농촌으로 선정이 되어 많은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주씨는 이런 녹향월촌 부녀회 총무를 맡아 일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다섯 삶의 의견을 좇아 알콩달콩 체험장을 만들었다. 그동안 주씨는 종가집이어서 된장과 청국장 및 간장을 담아왔다. 일가친척이 찾아올 때면 종가집 된장 맛을 보라며 나눠주곤 했다. 맛이 좋다고들 평가해준 바람에 순수한 우리 콩으로 메주를 쑤곤 했는데, 알음알음 입소문으로 된장이 팔려나갔다. 평년 40kg 콩을 3- 40 가마니 정도 사용해 메주를 만들었고, 전통방법으로 메주를 쑤기 때문에 나름대로 인기가 좋았던 것이다. 큰 솥 10개를 마당에 설치해 놓고 일정기간 장작불로 쪄낸 후 손으로 적당한 크기의 메주를 만든 다음, 불 땐 방에 일주일 정도 말리고 다시 짚으로 묶어 통풍이 좋은 곳에 2개월 정도 말리는 방법이 전통방법이다. 이 때 향을 가미하기 위해 솔잎을 함께 끼어 넣어 말리기도 한다.
주씨가 이렇듯 열심히 메주와 간장을 만들고 있을 때 녹향월촌에 사는 사람들이 법인체를 만들어 공동으로 작업을 하자며 제의를 해왔다. 그것이 알콩달콩 체험장이다. 다섯 사람이 뭉쳐 만든 알콩달콩 체험장은 양지민박 운영, 떡메치기 체험장 운영을 함께 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금으로 자비포함 2억 5천만원 건축비가 소요된 전통한옥 사무실과 건조장을 최근 세우기도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전국에 주씨의 노하우가 담긴 전통된장과 청국장, 간장 등을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손은 고마운 것이다
주씨의 삶의 철학은 <일하지 않으면 먹지를 말라> <이웃과 더불어 함께 한다> <농촌에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남을 도우면 내 자손에게 복이 돌아 온다>이다. 열심히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인 가치관이다. 이런 주씨의 철학 때문인지 세 아들 역시 나름대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장남은 7급 공채로 합격해서 도청에 근무하고 있고, 큰며느리는 고등학교 국어교사이다. 둘째는 광주농협에 근무하고 있는데, 둘째 며느리 역시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셋째는 메리츠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농사일 때문에 충분히 뒷바라지를 못해 준 한은 솔직히 지금도 남아있는 주씨다.
“제 삶을 80% 정도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제 10년간 더 열심히 일해 볼 생각입니다. 물론 답 8천평과 전 2천평도 직접 농사를 지어야지요. 이렇게 살 수 있도록 해 준 손이 늘 고맙다고 생각하면서 살지요”
기자의 방문에도 불구하고 선 채로 얘길 나누더니 총총 장독대 뒤로 사라지는 주씨의 모습에서 기자는 생각했다. 당신의 손이 있었기에 농촌은 지켜졌고 지켜질 것이며 우리는 행복하다고.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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