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유혹을 이길 때 뒤따르는 영광
- 나의 기자생활을 회고하며 -
김현철(전 언론인)
필자가 옛날 서울에서 기자생활을 할 때 겪었던 일입니다.
당시 전국 성악가 중 가장 유명하고 외모가 아름다운 소프라노 가수(당시 50대 초반의 모대학교 성악과장) 한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60 여 년 전인 30대 초반에, 음악을 사랑했던 선친의 귀여움을 받은 데다 이 분은 또 선친의 시를 좋아해서 가끔 찾아뵈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리고서 20 여년이 흐른 후, 음악에 대한 열정과 의욕이 대단했던(?) 이 분은 폐결핵 3기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던 남편의 병상은 외면(몇 개월 후 남편 사망)한 채 자신의 미모와 명성을 토대로 주한 미 고위층 인사까지 유혹하는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악계 발전을 위한 모금 운동에만 온 정신을 쏟는 여걸(?)이 되어 있었습니다.
드디어 목표했던 모금액을 달성한 이 분은 다음 해에 오페라(자세한 내용은 본인의 명예를 위해 생략) 공연을 위한 화려한 막을 올렸고 모든 성악가들의 꿈인 여성 주역(Prima Donna)을 맡아 수많은 청중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습니다.
그 때 사회부의 팔팔한 젊은 기자였던 필자에게 귀가 번쩍 띄는 제보가 들어 왔습니다. 바로 이 유명한 가수가 이제 나이가 들어서 고음 처리가 힘들어지자 가장 유망한 수제자(당시 졸업반 학생)를 뒤 텐트 속에 숨겨, 아리아 중 가장 높은 음정 부분을 노래 부르게 하고 자신은 청중 앞에서 입만 벙긋거리며 자신이 노래하는 것처럼 청중을 속이는 연습을 석 달 동안이나 계속한 끝에 자신이 생기자 며칠 전부터 개막을 했고, 입장권이 모두 매진 상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의 명성으로 보아 이 제보 내용이 사실이라면 기사의 가치는 메가톤 급에 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취재차 만난 이 분은 20 여 년 전 앳된 모습은 이미 사라졌지만 농염한 미모는 아직도 많은 남성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미 기자의 집안을 다 알아 놓은 이 분은 10대 소년의 모습에서 이제는 몰라보게 성장한 기자를 반기면서도 한편 긴장한 표정이 역역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이 분은 "선친께서 나를 얼마나 귀여워해 주시고 오늘 날의 나로 길러 주시느라 애쓰셨는데 그 아들 되는 분이 나를 죽이려들다니 말이 되느냐?"며 눈물로 호소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미 내용 거의 전부를 알고 확인 절차만 남겨 놓은 기자를 막을 방법이 없었던지 "자신의 노욕이 너무 과해 저질은 결과”였다고 눈물로 자백하면서 선친 얘기를 비롯한 온갖 감언이설로 기자의 환심 사기에 바빴습니다.
기자가 무슨 말을 듣고도 반응이 시들 하자 이 분은 다음 날 밤 미모의 제자 (대학 졸업반)한 분을 이용해서 적극적인 미인계까지 썼습니다. 그야말로 대학교수가 못 할 짓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미인계에도 실패하자 다급해진 이 분은 값 비싼 서울 인사동 소재 부동산을 당장 명의변경해서 넘겨주겠다면서 집문서(등기필증)를 들고 나와 또 다시 유혹했지만 이 분 눈에 보이는 기자는 인간이 아닌 목석같은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기자들의 월급은 오늘 날과는 너무 거리가 먼 수준으로 최저생활이 어려운 실정임을 이 분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방법 다 동원해도 뜻대로 안 되자 이 분은 무서운 표정으로 돌변하면서 "밤길에 신변을 조심하라"며 마지막으로 협박까지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죽어가는 남편도 안중에 없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성공시킨 오늘의 영광을 쉽게 포기할 여걸이 아니었기에 이 분의 '신변 조심'이라는 예상도 못 했던 협박을 그냥 다른 경우처럼 흘려들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기자의 요청으로 그 날부터 기자 뒤에는 서울 시경 소속 사복 경찰 한 분이 취재가 끝나 그 기사가 보도되는 날까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일부 기자들처럼 이 분의 유혹에 넘어갔더라면 기자 생활로는 상상도 못할 호화생활이 가능했겠지만 그러한 일이 지금 또 생긴다 해도 기자의 행동은 똑같이 반복되리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수습기자(당시에는 '견습기자'라 했음) 때 '절도범이 부모라해서 체포하지 못하는 경찰은 옷을 벗어야 한다'는 원칙론을 들먹이면서 "공과 사를 구분 못할 바에는 처음부터 기자 생활을 그만 두라"는 일부 선배 기자들의 준엄한 가르침은 나의 40년 기자생활을 부끄러움 없는 것으로 바로 잡아 준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넘어가서는 안 될 달콤한 유혹을 물리친 후에는 언젠가는 반드시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다.'는 '자긍심'도 덤으로 받는다는 사실을 체험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의 특종상은 특종상장 없이 소속 부장이 퇴근 때 약간의 돈이 든 봉투를 담당 기자에게 “특종상이네”하며 던져 주는 것이 상례였는데 이 사건의 특종상은 4 백여 명의 전 직원을 회사 옥상에 집합시켜놓고 사장이 직접 특종상장 내용을 낭독하며 시상한 한국 언론사상 처음 있는 시상식이었으니 일반 기자들의 부러움은 대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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