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교양칼럼25
인간의 자존심(自尊心)
이형문(수필가·영랑기념사업회 자문위원)
세상 사람은 누구나 서로가 기대어 살아가기 마련이지만, 깊이 따지고 보면 서로 물고 물리는 적자생존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생존경쟁의 본능 속에서 자신의 개성적 존재를 잃지 않고 굴함이 없이 품위를 스스로 높이 지니고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런 가운데 자신의 얼굴인 자존심(自尊心)마저 망가지지 않기 위하여 살아갑니다. 그건 자신의 목숨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흔히 자존심 하나 떼어내 버리면 시체라는 말을 하지요. 그처럼 우리가 한 시대에 태어나 만남 속에 서로 공존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따지고 보면 엄청난 인연입니다. 단, 나이의 선후나 좀 더 배웠다거나 덜 배운 차이 뿐, 사는 방법은 저마다 제멋에 겨워 살아가기 마련이지요. 그러기에 인간은 근본적으로 서로 어깨를 기대고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지역적 특성과 환경에 따라 끼리끼리 유유상종(類類相從)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살다보면 어떤 사람은 때를 잘 타고나 출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하던 사업의 실패로 빈 깡통만 차고 다시 재기의 발판을 노리는 가운데 저마다 살아가는 사정(事情)(얽히고설키는 일들)에 따라 만고풍상을 겪으며 험한 세상을 견디면서 바람 잘날 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탐욕(貪慾)에서 비롯됩니다. 탐 그 차체는 만족할 수 없는 데서 생겨나지요. 탐욕은 곧 화(禍)를 불러 옵니다. 이젠 우리도 마음을 비우면서 살아야겠습니다. 그러면 일 단 마음이 편해집니다. 작년 한 해도 저물어 가는 세모에 저는 친척분의 병 위문 차 서울 메디칼 센타에 모처럼 나들이를 하였습니다. 누워 있는 환자분들을 보며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을 타기위해 을지로를 걷던 저녘무렵 늦은 밤인데도 한쪽 모퉁이에 박스와 신문지를 깔고 조용히 잠들어 있는 노숙자나 또 한켠에서는 서너 명이 둘러앉아 술에 곤죽이 된 상태인 사람, 몇이서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서 세상에 낙오자들처럼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 상태에서 인생을 포기나 하듯 옷 마저 남루한 모습으로 세상만사가 다 싫은 듯 끼리끼리 알아듣지도 못하는 소리들로 힘없이 중얼거리고 있는 노숙자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가 3. 4십 년 전 일본에 무역업을 하던 당시 가서보니 밤에 길거리나 다리 밑에 노숙자가 버젓이 이불까지 깔고 자는 모습을 보며 이런 부자나라에도 노숙자가 있음을 의아스럽게 여겼는데 오늘날 우리나라 서울만도 1천명이 넘을 것이라고 하는 뉴스들을 보며 이들에 대한 위정자 당국에서는 따뜻한 보살핌으로 삶의 터전을 제공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왜 되었을까? 싶어 그 길을 그냥 스쳐 지나지 못하고 그분들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은 오직 술뿐이라 생각되어 소주 두병과 오징어를 사들고 곁에 가 이들에게 주며 위로하듯 이야기를 나눠 본적이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다들 많이 배운 분들로 말솜씨의 수준이 대단 했고, 그중에는 자랑같이 서울대 출신이라고 자랑하는 분도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삶에 지치고 망가진 이들의 모습은 내일이 없는 인생처럼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지만, 저들 나름의 오가는 대화 속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재기 하기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도 있었고, 가족들이 그립고 보고파 목 놓아 우는 사람, 또 자식을 외국에 떠나 보내놓고 기러기 아빠가 되어 거기다 구조조정으로 실직되어 오갈 때 없이 되어버린 사람의 기막힌 하소연을 들으며 그날 밤 이들 속에서 나도 함께 얼마나 눈시울을 적셨는지 모릅니다. 그래, 내가 남겨준 한마디는 자존심 잃지 말고, 고난과 좌절과 슬픔을 딛고, 재기해야 한다는 용기의 말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말하는 대부분이 "나의 마지막 보루인 자존심 하나" 때문에 아직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며 그것마저 버리면, 이 세상을 떠나는 길뿐 더 있겠느냐는 말이었습니다. 그 모질게 먹고 있는 마지막 가느다란 자존심마저 없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오늘도 처절하게 술로 마음을 위로하며 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젠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다고 하더군요. 돌아오면서 생각나는 노래가사를 한번 불러봤습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이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면 큰 착오입니다. 정말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이며 나를 지켜주신 하느님께 은혜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누구나 만났다 헤어지는 것은 인간의 철칙이듯 언젠가는 우리는 서로가 정(情)만을 두고 헤어져야 합니다. 당신과 깊고 깊은 인연으로 하여 이렇게 만나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모래알같이 많은 사람 속에서 하필 당신과의 만남이 아닙니까? 그 만나는 사연이야 가지각색으로 좋은 인연, 나쁜 인연 등 인연공덕으로 이승에서 재탕되고 있다는 불가의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린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 질수 있기에 옛말에도 남녀는 속궁합이 잘 맞아야 삶이 행복 해 진다고 했습니다. 인생살이 남을 헐뜯지 말고 오손 도손 오늘 하루를 감사하게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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