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특별기고>
박정희 독주시대의 종말
김현철(전 언론인)
필자는 몇 해 전, 미국 - 한국 간 비행기 안에서 한국 정세에 밝고 영어를 잘하는 인텔리 층 독일 중소기업 부사장과 주로 한국 정세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지루한 비행시간을 메운 적이 있다.
이 때 필자는 화제가 바닥나자 독일인들의 의식 수준을 알면서도 직접 본국인 입을 통해 들어 볼 생각에서 이 분에게 "히틀러가 오늘 날 독일의 경제 부흥의 기초가 되는 전국 고속도로망 완성과 폭스바겐 등 처음으로 서민 용 자동차를 국민들에게 실비로 보급한 장본인인데 왜 독일 국민들은 실질적인 독일 경제 부흥의 아버지인 히틀러에게 그에 알맞는 대우를 하지 않느냐?"고 질문했었다.
이 분의 대답은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의 그런 공로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히틀러가 그렇게 한 목적이, 모든 독재자들이 그렇듯 토목공사를 잘 해서 국민의 환심을 사 장기집권을 획책한데서 온 것이기 때문에 독일인들은 그러한 히틀러의 노력이 아무리 컸다 해도 철저히 무시한다고 대답했다. 이 분은 이어 히틀러는 오히려 170만(6백만은 과장된 수로 이를 이용해서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서 막대한 동정금을 받아냈다.) 유대인 학살로 전 독일인들의 체면을 구긴 장본인이라고 분노했다.
이 때 필자는 한국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군사 독재자(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를 생각하며 창피해서 얼굴을 붉혔었다. 이를 눈치 챈 이 분은 "가까운 장래에 한국인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재조명할 때가 올 수도 있다"면서 박 전 대통령의 공과를 샅샅이 논제로 올릴 만큼 한국 정세에 밝은 데에 놀랐다.
그 후 박 전 대통령의 지지도는 여전히 높아서 자꾸 그 독일인 기업인의 말이 머릿속에 남아 맴돌았다. 더구나 한국에서 가장 의식 수준이 높다는 호남 지역에서 조차 독재자의 딸이 아직도 차기 대통령 후보 중 가장 인기가 좋다는 데에는 할 말을 잊어야 했다. 호남 푸대접 정책으로 오늘날 우리 고장을 국내에서 가장 영세한 지역으로 떨어트린 박 전 대통령을 호남 사람들마저 건망증이 심해 벌써 잊었단 말인가? 전 세계의 제대로 된 나라치고 독재자의 자식이 가장 유망한 대통령 후보나 여 야당 당수를 지내는 경우란 대한민국 말고는 없으니 호남인들은 물론,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을 어찌 봐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얼마 전 시사주간지 <시사인>이 창간 3주년을 맞아 전 현직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한바 박 전 대통령의 경우 2007년에 약 53% 였던 것이 불과 3년만에 34%로 급낙했다. 기타 전두환,이승만 전 대통령이 각각 2%대, 김영삼,최규하,노태우,윤보선 전 대통령이 각각 1%이하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보면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서울이 50%이던 것이 25%로, 연령별로는 30대가 49%에서 14%로 , 학력별로는 대학재학 이상의 경우 43%에서 23%로 3년만에 각각 급낙한 것이다.
반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재임 중 6%대에 불과했던 신뢰도가 25%를 넘어섰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3년전 12%대에서 18%대로 올랐다. 즉, 김,노 두 전 대통령의 신뢰도를 합하면 약44%로, 보수진영의 이명박(6.4%), 박정희(34%) 두 전 대통령보다 높게 나타났다.
<시사인> 측은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후 박정희식 성장주의에 대한 향수가 흐려졌고, 보수층이 느슨해지면서 진보개혁 층은 김,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짙어지면서 '박정희 독주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청장년층의 꾸준한 의식 수준 향상으로 2010년 현재 20~40대 중 진보 개혁 세력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 머지않아 박 전 대통령의 인기도가 더욱 떨어지리라는 전망이 선다.
한국민이 민주정부를 쿠데타("5.16혁명"이라 함은 무지의 소치다)로 뒤엎고 장기집권을 위해 경제 개발에 전력을 기울였던 전 독재자를 재평가하는 때가 옴으로써 그동안 한국인을 바라보는 전 세계인의 멸시 섞인 눈길들이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보수 성향의 이명박 정부가 거듭된 실정으로 본의 아니게 오히려 국민들을 진보개혁적인 좌파 성향으로 몰고 간 결과니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의 의식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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