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길목에서
제목: 25년을 함께 해준 고마운 벗 당신에게
조만종(강진경찰서 교통지도계장)
이젠 봄날이라기보다는 초여름이라고 해야 할 만큼 제법 날씨가 덥게 느껴지는 구려
소설가 한수산씨의 ‘사월의 끝’ 에서처럼 가로수 위로 아지랑이가 화사하게 반짝거리던 사월의 끝날, 당신과 나는 인연이 되었었소. 그 날 부부의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꼭 25년이 되는 날이라오.
연애시절, 발을 종종거리며 당신을 기다리던 그리움은 이제 봄날의 아지랑이가 되어 가로수 위에 걸쳐 있지만, 우리의 추억은 두 사람의 가슴속에 남았구려
어제 저녁 편지를 쓰면서 가만히 돌이켜보니, 25년이라는 동행의 시간동안 당신과 나는 무던히 애증을 키우고 또 서로를 위로하면서 흘러왔지만 그 시간들이 우리에겐 너무도 귀중한 날들이라는 생각이 들더구려. 그런 세월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의 가정을 만들어 놓지 않았나 생각하오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고 무엇 하나 잡지 못한 빈손이었지만 내 훗날 가장 소중한 것을 당신에게 꼭 쥐어주고 싶었던 순진한 마음, 당신은 알고 있었는지········ 그 때 따스한 손을 보여주겠다던 이 사람의 약속을 기억하는지?
사실, 나는 지금까지 그 약속을 잊어 본적이 없고 또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 왔소.
그러나 삶의 긴 여정에서 나는 언제나 작은 역경에도 쉽게 마음이 흔들리고 조바심을 드러내는 당신에겐 늘 부족한 남편이었소. 그런 나를 지켜보며 인내해준 당신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오.
늦은 밤 가족들을 묵묵히 기다리는 당신을 지켜보며, 이 세상에서 내가 외롭지 않은 이유와
내가 사는 세상을 더 많이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어가게 하는 당신은 나의 천사라오.
가끔 뜬금없이 전화해서 “점심은 먹었나요? 먹었다면 무얼 먹었나요.” 물으면서 이왕이면 이러이러한 것을 먹지 그랬느냐는 당신의 살가운 목소리에 나의 하루가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오. 그때마다 부부의 정이 이런 것일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오. 그러면서 잘 해주지 못한 날들이 떠오르며 괜히 가슴이 찡해지기도 했었소.
매일 아침 먼지 묻은 구두를 닦아주며 더 속속들이 챙겨주지 못함을 미안해하던 당신의 목소리가 너무 따스했고, 당신의 정성이 담긴 맛있는 음식들을 대할 때마다 당신의 푸짐한 마음 씀씀이처럼 우리가족에게 내일은 더 넉넉하고 포근할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오.
벌써 우리의 딸 나영이가 대학4학년, 아들 명훈이가 군대를 전역하고 시험 준비하고 있지 않소. 아이들이 도시 좁은 공간에서 매일 책과 씨름하면서도 밤 12시가 넘어서도 당신과 친구처럼 문자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부러움을 느끼기도 한다오. 그렇게 늦은 밤까지도 당신은 참으로 위대한 엄마노릇을 철저히 하고 있더구려.
매일 아침 건강과 항상 여유로움으로 남에게 배려하면서 살아보자고 노력하는 당신의 믿음과 정성은 두 아이들을 착하고 사려 깊게 키워놓았소.
나 또한 직장의 힘든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설 때, 당신의 수고했다는 말을 기대하곤 했었지만, 당신과 아이들의 믿음이 알알이 배인 속 깊은 위로의 말 한마디에 더 큰 힘을 얻으며 가족을 위해 일했다오.
또 사랑하는 당신과 힘든 세파를 헤쳐 나갈 우리 아이들에게 슬기로운 지혜와 건강이 넘치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늘 환한 웃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도록 기도를 했다오.
당신은 내가 가장 절실할 때 곁에 있어 준 사람이며, 나로 인해 가장 큰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며, 꿈결에서도 그 존재가 느껴지는 따스한 사람이며, 마주 보고만 있어도 미소를 짓게 만드는 사람이며, 카드에 적어 보내는 작은 사연에도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며, 타고 난 넉넉함으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었소
나는 파아란 하늘처럼 영원히 변치 않는 당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소.
25년을 살아오며 생긴 많은 상처와, 많은 다툼, 함께 살며 생겨난 많은 오해들은 어쩌면 우리 두 사람이 변치 않고 사랑한다는 징표일거요
언젠가는 당신이 좋아하는 장미 넝쿨이 올올이 피어난 아담한 정원에서 조용히 손자들 곁을 서성이는 당신을 보고 싶소. 그동안 한뜸 한뜸 꿰매주던 살가운 당신의 사랑과 미련한 나에게 한 줌 한 줌 내어주던 당신의 따스한 마음을 꼬옥 담아두겠소.
사월의 끝, 당신을 생각하니 가로수 위에 걸친 아지랑이 같은 우리들의 만남이 생각나는 구려. 이제 새로 맞는 오월의 가로수 위를 바라보며 고향과도 같은 우리의 시작의 시간들을 아름답고 화사하게 만끽합시다.
이 순간, 나는 편지를 쓰면서 당신을 위해 나만의 기도를 하오.
오십대 초반 중년부인으로서 들어선 당신이 당신의 띠, 닭처럼 늘 건강하고 웃음이 넘치기를 ·…··우리 두 사람이 함께 나누는 깊은 이해와 사랑,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생각하오.
나의 사랑하는 당신, 나영, 명훈이 엄마, 영원한 삶의 동반자, 사랑하오//
우리서로 항상 자연을 보는 것처럼, 흔들림 없이 모든 것을 세상의 이치라 생각하며 봉사하는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잘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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