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산야에 푸른 꿈 심고
평생직장 전원생활 한꺼번에 구축한 손석균(42)씨
우체국 다니면서 배 과수원 일궈 낸 우리 시대의 젊은 표상
탐진바다가 저 아래로 펼쳐져 보이고, 그래서 밤이면 만덕호를 가로지르는 그 많은 가로등 불빛이 꿈처럼 보이는 도암면 학장리 355번지에 손석균씨의 배 농장은 자리 잡고 있다. 야트막한 야산과 아래로는 산골 논처럼 그리 넓지 않은 논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오붓하고 정겹고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그렇다고 마을과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어서 외롭다는 것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곳에 그는 농장을 세운 것이다.
배 농장 3천 3백평, 집터 470평이 그의 공간이지만 일년에 매출액이 5-6천만원이나 된다. 그러므로 평생직장으로서도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주변이 특히 야산과 어우러져 있어 전원생활 치고는 최상급에 속한다. 바다가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전원생활을 꿈꿀 수 있는 곳이다.
그는 95년도에 도암면 야산을 사들여 배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소를 키워볼까 하다가 비싼 소값 때문에 포기하고 때마침 농업기술센터에서 과수를 권장하는 것을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군동우체국을 다니는 공무원 신분이어서 시간을 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독해져야 일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른 봄부터 개간작업을 홀로 시작한 손석균씨는 퇴근하기가 바쁘게 군동에서 도암까지 30리 가까이 되는 현장으로 달려가 캄캄해질 때까지 접목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낮에는 직장에 묶여 있기 때문에 포크레인이나 덤프차 비용이 배로 드는 아픔을 감수해야 했다. 작업량이 5일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도 10일까지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현장에서 작업지시를 일일이 해야 하는 데 못하니까 그같은 현상이 일어나더라구요. 결국 돈이 배로 든 셈이지요” 어쨌든 개간이 끝나자 묘목 구입을 서둘렀다. 나주배 전문가에 의뢰해서 원황, 신고, 황금 등의 새품종을 구입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감천이란 묘목이 섞여져 있었던 것을 알게 된 것은 3년이 지나서였다. 배수확을 할 때 쯤 되었을 때 200주 정도가 감천 묘목이었던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3년이란 세월을 헛되이 보낸 꼴이 돼버린 셈이었다. “서로 수정을 해야 하는 데 품종이 다르니까 잘 안될뿐더러 상품성이 없는 묘목이었지요. 모양, 익는 시기도 다르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잘라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시련은 계속 이어졌다. 베어낸 빈 공간에 곁의 배나무 가지를 끌어오려고 애썼지만 회복이 쉽게 되질 않았던 것이다. 배나무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가지가 뻗어야만 수확량이 좋은데 그런 실수로 인해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다. 또다시 시련은 찾아왔다. 4년 째 되던 해 폭우가 쏟아지자 과수원 곁에 파놓은 몰고랑이 터져 과수원을 덮쳐버렸다. 사람의 키를 넘는 깊이의 물줄기에 많은 배나무가 훼손되고 말았다. 자식 잃는 아픔이 이런 것일까. 새벽부터 작업을 서둘렀지만 막상 출근시간이 되자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직장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그의 신념이었으므로. “두 가지 일은 하는 사람은 자칫 직장에 피해를 줄 수가 있습니다. 년가 등을 내서 자기 일을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거든요. 그러나 오히려 더욱 직장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이 일이 잘 풀리거든요”
친환경저농약으로 배 생산
“친환경으로 하다보면 일이 많아집니다. 특히 풀베기 작업인데 예초기로 한쪽을 베고 나면 이미 베어낸 쪽이 벌써 허리까지 자라 있습니다. 한계를 느낀 나머지 3년 전부터는 경운기예초기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배과수원 가꾼다는 것이 어찌 풀베기 작업 뿐이겠는가. 영양제 투입을 주중에 해야 할 때에는 밤중이 되도록 해야 했고, 때로는 로터리로 작업을 하다가 넘어져서 깔릴 뻔한 사고도 있었다. 매일 아침 5시 기상해서 8시까지 일했고, 퇴근 후 7시부터 10시까지 일했다. 직장생활 하면서 매일 6시간을 일한 셈이다. 물론 토요일과 일요일은 농장에서 종일 보내면서 배 과수원을 가꾸어나갔다. 주5일 근무제는 그에게 있어 행운이었다. 소도 사서 키우기 시작했다. 퇴비생산을 위해서였다. 어미가 7마리, 송아지가 4마리 모두 11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앞으로 늘릴 계획이다. “농업은 만만한 대상이 아닙니다. 도시에서는 농업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막상 덤벼들면 농업처럼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더 좋은 품질을 위해 노력해야만 경쟁력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망했다. 하지만 각고 없는 결과가 어디 있겠는가. 지난 해 8월 5일 서울 가락동 공판장에 출하를 했을 때 전국에서 두 사람만 고액의 경매를 받은 적도 있었다. 조생종 원황을 심었기 때문인데, 7.5키로의 한 상자 배값을 무려 7만 5 천원 받았던 것이다. 친환경인증을 받아 출하하다보니 이번엔 백화점까지 진출하게 되었고, 한 번 백화점으로 진출하다보면 백화점으로 반드시 물건이 가야하기 때문에 경매가 잘 되었다.
아내 이혜정(41) 씨의 내조도 큰 몫
아내 이혜정씨는 농(農)자도 모르는 도시형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다리를 놓고 꽃솎기, 열매솎기, 봉지싸기 등을 스스럼없이 해낸다. “사다리에 떨어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어서 두 다리가 성한 곳이 없을 정도인데도 열심히 해준 덕택으로 과수원을 해 나갈수가 있었습니다” 손석균씨는 아내의 말이 나오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굵은 일은 제가 잘한 편이지만 대신 섬세한 일은 못하거든요.” 군말 없이 자신의 길을 함께 걸어준 아내가 마냥 고맙기만 하는 것 같았다. 35평의 아담한 집은 말 그대로 전원주택이었다. 집 주변으로는 배 과수원이 펼쳐져 있는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손유성(6학년) 손유진(5학년)의 두 남매와 행복하게 사는 손석균씨는 우체국을 다니면서도 자신의 노력으로 평생직장과 전원생활을 한꺼번에 얻은 우리 시대의 참 젊은이의 모습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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