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동감 넘치는 고려 왕실 도자기의 대표적 작품
하늘빛 청자
비가 개고 안개가 걷히면 먼 산마루 위에 담담하고
갓밝은 하늘빛이 산뜻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하늘색의 미묘한 아름다움은
곧잘 청자의 푸른 빛깔에 비유되어
雨後晴天色이라는 말이 생겨났지만
무심코 고려청자의 이 푸른빛을 들여다 보노라면
정말 비 갠 후의 먼 하늘처럼 마음이 한결 조용해진다.
마치 고려 사람들의 오랜 시름과 염원
그리고 가냘픈 애환을 한꺼번에 걸러낸 깃발 같은 푸른빛
으스댈 줄도 빈정댈 줄도 모르는
그리고 때로는 미소하고 때로는 속삭이는
또 때로는 깊은 생각에 호젓이 잠겨 있는 이 푸른빛이
자랑스러워 고려 사람들은 翡色이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혜곡 최순우
강진과 고려왕실의 도자기
강진은 왕실 도자기의 대표 가마터였다.
먼저 고려왕실 도자기를 설명하기에 앞서 고려청자의 탄생부터 살펴보았을 때, 통일신라 말(676~918년) 말, 9세기 중엽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해상왕 장보고가 846년에 염장의 의해 살해될 때까지 강진의 청자는 중국으로 수출되었다.
그러기 전 장보고는 중국의 도자기 기법을 신라 사람으로 하여금 익히게 하여 청자를 만들도록 했다. 초기엔 중국 청자의 형태와 문양 장식 등에 있어 중국의 자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고려청자의 비색(翡色)은 중국에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해 ‘천하제일 天下第一’이란 말을 들었다. 고려청자는 비색은 물론 인물과 동식물을 본 뜬 각종 형태, 문양을 나타낸 상감(象嵌)기법 등으로 중국인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중국으로부터 그 기법을 배웠으나 나중에는 오히려 중국인들이 수입해 갔기 때문에 청자의 수준이 우월성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절강성 월요(越窯)의 영향을 받아 초기에는 해무리굽 형식을 보였는데, 그러나 전형적인 중국 자기의 해무리굽과는 굽의 높이와 넓이에 차이를 보이면서 차별화가 되었다.
신라시대부터 청자를 굽기 시작해 고려시대 최대 전성기를 누린 곳은 강진이다. 그리고 전북 부안이 있어 두 곳이 청자산지였다.
그러나 부안에 비해 강진의 가마터는 산과 계곡에 밀집되어 있어 우리나라에서 청자가마터로는 그 규모가 가장 크다.
고려시대에 자기를 굽던 자기소(磁器所)로 강진의 대구소(大口所)와 칠량소(七良所) 로 두 곳이 있었다. 자기소는 국가에서 관리하며 왕실과 관청 소용의 청자를 구웠던 관요(官窯)였던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대구소는 지금의 대구면이고 이곳에는 사당리와 용운리 등이 속해 있는데, 사적 68호로 지정된 가마터는 총 188개소애 달하고 있다.
강진의 사당리 가마터에서는 음각 또는 양각된 청자 매병 조각이 출토되었는데, 용이 생동감 있게 그려진 문양 외에도 구름, 용 무늬 청자 베개, 수양버들 무늬 향로, 목 긴 병, 대접, 접시, 받침대, 잔과 받침 등과 각종 요도구들이 대량 출토되었다. 음각, 양각, 인각, 상감 등의 기법을 보이면서 연꽃잎 무늬, 모란 무늬, 연꽃 무늬, 국화 무늬, 각종 넝쿨 무늬, 수양버들, 구름, 용 무늬 등의 소재가 사용되었다.
사당리에서 출토된 청자 조각에는 노국대장공주의 능호인 정릉(正陵) 등이 각각 상감기법으로 표기되어 왕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고려왕실 도자기는 어떤 것들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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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 모란넝쿨 용 무늬 매병 |
★청자 모란넝쿨 용 무늬 매병
유선형 몸체에 면을 8개로 나누어 각 면에는 능화형 창과 그 안에 승천하는 용을 양각하였다. 어깨와 굽 주변에는 연꽃잎 무늬대, 그리고 나머지 면에는 모란넝쿨 무늬를 양각하였다. 무늬와 윤곽선을 따라서 조각칼로 비스듬히 양각하였는데, 어느 한 부분 소홀함이 없이 섬세하게 정성을 들였다. 같은 특징의 청자 매병 조각이 사당리 가마터에서 발견되었다.
★청자 용 머리 장식 붓꽂이  |
| 청자 용 머리 장식 붓꽂이 |
고려 시대의 청자 필가는 남아 있는 예가 적은데, 이처럼 투각기법으로 장식을 한 예는 더욱 귀하다. 상형 투각 음각 양각 철화 기법이 어울려 뛰어난 조형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장방형 몸체의 양 끝에 장식된 용머리는 송곳니와 비늘까지 양각기법으로 입체감 있게 표현되었고, 눈동자는 철화로 점을 찍어 생동감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소형이지만 많은 정성을 들인 작품으로 12세기 전성기 고려청자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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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 거북이 모양 주자(국보 96호) |
★청자 거북이 모양 주자(국보 96호)
연꽃 받침 위에 앉아 있는 거북이 모습을 한 주자로 얼굴과 목은 고려시대 석비(石碑)의 귀부(龜趺)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용머리로 표현하였다. 수염· 갈기· 이빨· 비늘· 이마의 뿔 등이 모두 정교하게 제작되었다. 눈에는 철사 안료를 써서 검은 점을 찍었다. 등껍질에 있는 육각형 무늬 안에는 ‘왕王’자를 하나씩 새겨 넣었는데, 이는 사용하는 사람의 신분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청자 어룡 모양 주자(국보 61호)  |
| 청자 어룡 모양 주자(국보 61호) |
이 주자에서 물을 따르는 부분은 용머리이고, 몸통은 물고기 모습을 한 상상의 동물을 형상화했다. 이러한 동물을 ‘어룡魚龍’이라 부르는데, 힘차게 펼쳐진 지느러미와 치켜세운 꼬리가 마치 물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용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하여, ‘비룡飛龍’이라고도 한다. 역동적인 조형미와 아름다운 비색 유약이 특징인 12세기 전성기 청자의 대표작이다. 옛날부터 어룡은 벽사辟邪적인 상징물로 건축물에 많이 사용되었는데, 파주 혜음원 터와 개성 고려 궁궐터에서 지붕에 얹는 장식 기와로 만든 예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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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 용 장식 향로 |
★청자 용 장식 향로
향로는 원래 금속기에서 시작되었다. 고려시대 청자 향로의 조형은 기본적으로 금속 향로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자유로운 변화가 가능한 흙의 성질을 잘 살려 다양한 조각과 무늬가 장식되었다.
이 향로는 뚜껑과 넓은 전이 달린 둥근 몸체, 그리고 짐승 얼굴 모습을 한 세 개 다리로 구성되어 있다. 몸체에서 향을 피우면 조각 장식의 입을 통해 향이 분출된다. 고려시대 청자 향로의 뚜껑에 장식된 조각의 종류는 원앙·오리 등 실제 동물들과 불법을 수호하는 사자·기린 ·용 등 상상의 동물들로 구성된다.
이 같은 특징을 가진 향로는 중국에서는 북송 11세기 후반의 요주요 청자·경덕진요 청백자, 그리고 12세기 여요 청자에서 제작된 사례가 조사되었다. 고려청자는 강진군 용운리 10호 가마터와 사당리·삼흥리가마터, 그리고 부안군 유천리 가마터 등에서 제작했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청자 사자 장식 향로(국보 60호)  |
| 청자 사자 장식 향로(국보 60호) |
인종 1년(1123) 개경을 방문했던 송나라 사신 서긍은 「고려도경」에 ‘산예출향狻猊出香(사자 모양을 한 향로)’ 역시 비색인데, 위에는 쭈그리고 있는 짐승이 있고 아래에는 연꽃이 있어 그것을 받치고 있어. 여러 기물들 가운데 이 물건만이 가장 뛰어나다‘라고 고려의 청자 사자 향로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이 사자 향로는 넓은 전이 달린 몸체와 이를 덮는 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체를 받치는 세 개의 다리는 짐승 얼굴 모습을 하고 있어 서긍이 보았던 연꽃 받침의 사자 향로와는 차이가 있지만, 12세기 전반 청자의 상황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강진 사당리·삼흥리 가마터와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같은 특징을 가진 청자 조각이 발견되며, 특히 원덕태후 곤릉(坤陵)에서도 짐승 얼굴 다리를 가진 향로 몸체가 출토되고 있어, 조각 장식을 한 뚜껑 향로가 13세기 전반까지도 제작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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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 연꽃 모양 향로 |
★청자 연꽃 모양 향로
청자 연꽃 모양 향로는 대구면 삼흥리·사당리 가마터와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가마터, 그리고 파주 혜음원 터에서 출토되었다. 받침대는 뒤집힌 연잎 모양인 것과 복련형 연꽃 모양에 원형 돌출 장식이 있는 것이 확인된다. 연꽃 모양 몸체는 원형 돌출 장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된다. 특히 받침대와 몸체 사이의 연결 부위는 용머리 모양의 막대 장식이 있는 경우와 넝쿨 무늬만 양각된 경우가 확인된다. 제작 초기에는 중국 청자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다가 점차 새로운 요소를 가미하면서 고려적인 특징으로 발전시켰다고 여겨진다.
★청자 도철 무늬 향로(1)  |
| 청자 도철 무늬 향로(1) |
고려시대에는 중국 고대 청동기인 ‘정鼎’을 모방한 청자 향로를 만들었다. 정(鼎) 모양 향로는 몸체의 형태에 따라 원정형(둥근 몸체)과 방정형(사각 몸체)으로 구분된다. 방정을 모방한 이 향로는 직사각의 점토판을 붙여 몸체를 만들었으며, 안상(眼象)이 장식된 짧은 다리와 사각의 수직 귀를 붙였다. 몸체는 번개 무늬를 바탕으로 상단에는 기봉(외발의 봉황), 하단에는 도철(饕餮) 무늬를 압출양각하였다. 강진 용운리 10호 가마터의 Ⅱ 층위와 사당리 가마터에서 같은 특징의 청자 조각이 출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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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 도철 무늬 향로(2) |
★청자 도철 무늬 향로(2)
고려청자에 중국 고대 청동기의 영향이 나타나게 된 것은 고려의 예제(禮制)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중국 송나라의 예제를 받아들여 필요한 부분은 참고하면서, 주로 왕실의 길례대사(吉禮大祀)와 관련된 제기들을 함께 수용했기 때문이다. 또 「선화박고도(宣和博古圖)」등의
서적이 전래되어 중국 고대 청동기의 조형이 고려의 청자 향로에 도입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 향로는 둥근 몸체에 3개의 짧은 다리와 둥근 고리 모양의 수직 귀를 붙였다. 무늬틀로 눌러서 무늬를 양각하였는데, 바탕면에는 번개 무늬가 표현되었으며, 상하단으로 나뉜 몸체의 상단에는 기봉(夔鳳), 하단에는 도철 무늬를 장식하였다. 같은 제작 수법과 장식의 청자 조각이 사당리 가마터에서 출토되었다.
★청자 연꽃넝쿨 무늬 매병(국보 97호)  |
| 청자 연꽃넝쿨 무늬 매병(국보 97호) |
이 매병의 부드럽고 우아한 곡선은 12세기 고려인들이 추구한 미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몸체 전면에 조각칼을 옆으로 눕혀서 큼직한 연꽃과 넝쿨 무늬를 새겼는데, 일반적인 음각선에 비해 무늬의 선이 넓고 깊어서 양각된 듯 보인다. 여기에 음각선을 더해 연꽃잎과 연꽃의 맥까지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조각칼을 옆으로 뉘어 새겨서 반양각의 무늬를 만드는 장식 기법은 중국 북송대 요주요와 정요 등에서 널리 유행하였다. 이러한 기법은 고려청자에 도입되면서 예리한 선의 새김 수법이 훨씬 부드러워지고, 복잡한 무늬가 장식될 때 중심 무늬를 강조하는 기법으로 사용되는 등 고려청자에 맞게 변모되었다. 이 청자 매병과 같은 특징을 가진 청자 매병 조각들이 강진 용운리와 사당리 가마터에서 출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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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 대나무 학 무늬 매병(보물 903호) |
★청자 대나무 학 무늬 매병(보물 903호)
순청자의 아름다움이 깊고 푸른 비색이라면, 상감청자는 보는 사람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풍부한 무늬가 매력이다. 우리는 고려청자를 바라보고 느끼면서, 그 속에 담겨진 고려인들의 정서와 사고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이 상감청자 매병을 마주하면, 과연 이 매병의 주인은 어떠한 사람이었을까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서정적이고 우아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이 매병은 여유로운 공간 배치와 섬세한 상감 무늬의 조화가 뛰어나다.
마치 꿈 속 정원을 거닐 듯, 대나무와 매화가 어우러진 신비로운 공간이 잔잔히 펼쳐지고, 그 사이에 학들이 날거나 쉬고 있는 모습을 한 폭의 그림처럼 표현하였다. 저 멀리 무리지어 날고 있는 학들은 작게 나타내서, 종은 공간 속에서도 거리감과 깊이를 느끼게 하였다. 대나무와 매화나무 가지는 흑상감, 활짝 핀 꽃은 백상감이라고 하였는데, 그 새김 수법이 가늘고 섬세하여 마치 붓으로 세밀하게 그린 듯 하다. 이처럼 넓고 시원한 무늬 배치와 정밀한 새김 수법을 가진 상감청자 조각은 전북 부안군 유천리 가마터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다. 정리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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