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광 신부, 여성도 낀 비신자들과 밤샘놀이
김현철(전 언론인)
20 여 년 전, 마이애미 한인성당에 60대 중반의 노인신부 한 분이 부임했다. 얼마가 지나자 나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 당시 사목회장(신도회장)으로 있던 박아무개 교수가 나에게 상의할 게 있다면서 나를 찾아 왔다. 평소에도 성당 일이라면 부부가 모두 적극적인 자세로 협조를 해 오던 터라 이번에도 혹시 외부 손님(주교, 신부, 수녀 등)이 방문하게 되어 관광 안내, 식사 대접, 비용 부담 등 문제를 상의하려나 보다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목회장은 남이 들을까 두려워서였든지 조용한 목소리로 ‘신부님이 몇 십 년 묵은 습관성 화투놀이에 빠져 미사시간마저 잊는 경우가 허다해서 문제’라며 ‘이 일을 어쩌면 좋겠냐? 우리 신부님이니 기사는 안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시 내 생각에는 내가 형제처럼 가까이 지내는 분의 부정해위도 가감 없이 있는 사실 그대로를 보도하는 기자라는 선입관념 때문에 내가 이 사실을 알아내기 전에 알려 기사를 미리 막아보자는 속셈도 있었던 듯했다.
그 때 나는 이 분에게 1) 청장년 신자들 중 화투놀이 할 시간이 있는 분들을 최소 8명 정도를 모아서 조를 만들어 신부님의 화투놀이 요구에 돌아가면서 응하도록 한다면 외부 화투놀이판에 신부님이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2)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내 귀에 신부님이 우리 신자 이외의 외부 인사들과 화투놀이를 한다는 소식이 들어오지 않게 해 달라. 그 때는 이미 외부 사람들도 신부님이 습관적으로 화투놀이를 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후가 되는데 어떻게 내가 모르쇠로 일관하겠나? 3) 만일 신부님이 비신자 동포들과 어울려 화투놀이를 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우리 신분님이니 한 번쯤은 경고를 드리고 다시 또 같은 일이 벌어질 때는 어쩔 수 없이 기자가 할 도리를 할 수밖에 없다. 신부님께 그렇게 말씀드려 절대로 그런 일(외부 화투놀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 달라. 나는 신자 이전에 양심이 있는 기자다. 제발 나를 난처하게 하지 말아 달라는 등 세 가지 요청을 드렸다.
물론 내가 직접 신부님께 같은 얘기를 할 수는 있겠지만 까딱하면 경망스런 기자의 공갈협박 정도로 오해받기 쉬운 사안이었기에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박교수는 ‘좋은 제안이다. 당장 화투놀이 팀을 만들어 그렇게 하겠다. 신자들이 밤샘화투놀이를 즐기는 신부님을 위해 그토록 희생하는데 설마 밖으로 나가시겠냐. 그런 일이 없겠지만 어쨌건 기사를 한 번은 유예해 준다니 고맙다. 물론 한 없이 기사를 봐 줄 수 없음을 잘 안다. 협조해 주어 고맙다’며 돌아갔다.
그 후 신자들의 희생적인 호응으로 한동안 조용히 지나가는 듯했기에 나로서는 잘 됐다며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비신자 동포 5~6명(상습 도박꾼들)과 함께 신부님이 밤 샘 화투놀이를 했는데 그 중에는 화투에 미친 아주머니 한 분도 끼어 있다는 소식이 들어 왔다. 예감이 좋지 않았던 나는 즉시 신부님을 위한 화투놀이팀의 한 분에게 계속 신부님과 화투놀이를 하느냐고 물었다.
이 분은 “모두가 열심히 퇴근 후 밤새도록 화투놀이에 시간을 빼앗겨 다음 날 직장 근무에 지장이 올 만큼 피로가 가시질 않는데 신부님은 대낮에도 화투놀이가 필요한 분이라 문제”라 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신자들만의 협조로는 해결이 안 될 내용이었다. 누가 생업을 포기하고 대낮에 화투놀이로 신부님을 위로하겠는가?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이 분은 사제직에 합당한 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처럼 넓은 곳이라면 몰라도 동포 수가 적어 서로들 알고 지나는 이곳 한인 사회에서는 신부님이 화투에 미쳐 여성 등과 함께 밤샘 화투놀이를 한다는 소문은 바로 이삼일이면 온 동포사회에 퍼지게 마련이었다.
나는 무거운 기분으로 사목회장을 만나 이 사실을 알렸더니 자기도 그 소식을 들었다며 “이를 어쩌면 좋지요? 신부님께 그토록 말씀을 드렸는데...”하고 말 끝을 흐렸다.
나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우리 신자들이 계속 화투놀이에 호응해 드리는 데도 밖으로 나가신다면 앞으로 큰일이다. 이번만은 약속대로 모르는 척 지나가겠지만 또 같은 일이 벌어지면 그 때는 방법이 없다. 제발 신부님께 단단히 말씀드려라. 지금껏 다른 교회 교역자의 경우 단 한 번도 내가 보도를 유예해 본 적이 없음을 이곳 동포사회가 모두 알고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이 분은 ‘또다시 신부님께 다짐을 받겠다. 이 번 일을 모르는 척 지나가 준다니 고맙다’면서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 후 얼마 안 가서 또다시 같은 멤버와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그 때 이젠 할 수 없다면서 기사 취재를 하려는데 아내가 “여보, 제발 이번 만 모르는척하고 넘어가요. 신부님께 단단히 말씀드려서 재발하지 않도록 해 봅시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취재를 중단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밖으로 나가지 않을 의지력이 없는 신부님임을 알았기에 얼마 후 사건의 재발은 불가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네 번째 같은 사건이 벌어진 후 나는 2단짜리 까십으로 이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실명제 기사만을 써 왔으나 이 까십 만은 내가 천주교인이라는 죄(?)로 그냥 ‘성직자’ 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이 보도되자 일반 동포사회보다 성당 식구들 간에 적지 않은 잡음이 일어났다. 내가 놀란 사실은 문제를 예방해야 한다며 화투놀이팀을 구성하게 하고 기사도 약속과는 달리 몇 차례씩 유예해 줘서 나에게 몇 번이고 고맙다고 인사를 한 박 교수마저도 그토록 가까이 지내던 나를 사탄이나 되는 듯 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 내가 느낀 것은 대학 교수를 비롯해 대부분의 천주교 신자들은 성직자의 잘 못은 크건 작건 무조건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것이 옳은 자세라고 생각한다는 것, 그런 사고방식이니 사제가 복수의 여성들과 몸을 섞어 여성들이 서로 머리채를 뜯고 ‘애인신부’ 쟁탈전을 벌여도, 14세 소녀를 성희롱해도, 공금을 횡령해도, 교회법을 어기면서까지 바른 말을 하는 신자들을 10 여 명씩 교회에서 추방을 자행해도, ‘이러시면 안 됩니다’하고 나서는 의식이 깨어있는 신자들은 고립할 수밖에 없는 곳이 한국천주교라는 사실 등이다.
더욱이 가관인 것은 그런 수준의 사제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한국의 주교(교구장)들은 사제들이 교회법은 물론 형법 등 무슨 법을 어겨도 그 사제에게 벌을 주는 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어느 사제가 불법, 범법 각종 불의와 부정해위를 두려워하겠는가? 그런 못된 버릇에 일단 재미를 붙이면 그 버릇은 정신력이 아주 강한 분 말고는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 법이니 엄밀히 말하자면 오늘 날의 한국 천주교는 우선 의식수준이 맹종 수준에 있는 신자들과 이를 교정해 나가야 할 주교들의 직무유기 태도 때문에 앞으로 적어도 수십 년은 21세기 민주사회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중세기 시절의 교회를 운영해 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인 것이다. 이 화투광 신부님은 그 사건 이후 다른 지역의 성당으로 옮겼으나 그 버릇이 어딜 가겠는가. 역시 그곳에서도 이 분의 화투놀이에 신자들은 진저리를 내야 했다.
오죽했으면 이 분이 타처로 전임되자 지도급 신자 한 분은 “앓던 이를 뽑은 기분”이라 했겠는가. kajhc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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