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길 넘어 찾은 자유, 탈북자 증언 2
외화벌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접하다
수미씨는 딸만 넷인 집안의 장녀다. 아버지는 아들이 없어 군대에 보내지 못하는 것이 한이 맺힌 듯 했다. 그것은 당비서로서 군대 보내는 아들이 있다면 국가를 위해 그보다 더한 충성과 영광이 없기 때문이었다. 장녀인 수미씨에게 중매가 들어오는 등 시집을 가야 한다는 얘기가 종종 아버지 입에서 흘러 나왔다. 그러던 중 수미씨 마음에 큰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것이 바로 김일성 사망이었다. 보름동안 광장에 있는 김일성 동상에서 슬픔을 이기지 못한 체 대성통곡을 했던 수미씨 가족이다. 아니 수미씨 가족뿐 아니라 북한의 모든 주민이 그랬고, 그 자리에서 실신하고 죽는 사람도 속출했다. 수미씨는 이런 충격적인 상황에 중매나 시집가야 한다는 말을 나눈다는 것은 사치라 생각됐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군대에 자원하는 것이었다. 평소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녀가 잘되어야 동생들도 잘 된다”
입버릇처럼 하시곤 했던 아버지 말씀이 이때 더 확실하게 가슴에 못 박히듯 다가왔다. 사실 군대에 가기로 마음먹은 것은 김일성 사망에 의한 충격 때문이지만, 이때 군대에 간다면 이보다 더 큰 효도도 없을 것 같았다. 나라와 집안의 여러 가지 상황으로 봤을 때 군대에 가는 일보다 더 큰 일은 없다는 확신이 서자 자신 있게 아버지께 의사를 밝혔다. 아버지의 반응은 적극 찬성이었다. 아버지는 아들 못 나아서 군대에 보내지 못하는 것이 한이었고, 아들을 군대 보내는 사람이 부러움의 대상이었기에 수미씨가 군대에 간다고 하였을 때 기뻐하며 환영했다. 수미씨는 군에 자원하여 면접 시 큰 소리로 말했다.
“김일성 대원수님께서 서거하셨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군대에 자원 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조국이 통일 되는 그날까지 군복을 한 번도 벗지 않고 통일의 광장에서 태양이신 김정일 장군님을 꼭 모시고 싶습니다”
면접관들은 큰 박수를 치더니 더 잔말할 것도 없이 입대하라고 말했다. 면접관들의 태도는 당연 아버지가 당비서라는 신분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한 면접관은 이렇게 말했다.
“호송이 딸, 아들 못지않게 잘났네”
수미씨는 옆에 함께 간 친구들도 있었기에 면접관들의 우호적인 태도가 쑥스러운 날이었다. 면접 본 30명 중 3명이 뽑혔다. 북한의 군대기간은 처음에 여자는 3년에서 4년, 나중 7년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여자는 아무나 군대에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신분이 뚜렷하고 올바른 여성으로 인정받아야만 갈 수 있는 거였다. 남자의 군대는 나중 10년으로 늘어났다. 북한에서 젊은이들은 오로지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친다는 생각으로 군대에 가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수미씨가 군대에서 하사관 생활을 할 때 북한의 경제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었다. 그 영향은 군대에까지 당연히 미치고 있었는데, 군대에 배급량이 줄어들자 부대 안에서 외화벌이를 나가게 되었다. 외화벌이는 불법이었지만 부대 안에서는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일이 되었다. 남자군인들과 여자군인들이 함께 나가지만, 여자들이 더 많이 나갔다. 여자군인은 단속이 덜 심했기 때문이었다. 외화벌이의 수단은 농사외화벌이 사금외화벌이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수미씨가 처음 한 외화벌이는 오징어 외화벌이다. 나중 한국에 와서 보니 북한에서는 낚지를 오징어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외화벌이는 부대에서 나갈 사람들을 그때그때 뽑아서 나갔다. 어부들의 배와 사전에 계약을 하고 그 배가 들어올 때가 되면 부대에서 차를 타고 이동한다. 어부들이 잡은 것들을 싹쓸이로 사들인 후 그것을 바로 중국 상인들에게 되팔아 그 이득금을 부대에 보내는 일이다.
외화벌이는 군인들이 하기에는 쉬운 점이 있다. 북한에서는 어디서나 군인증만 내밀면 이동을 공짜로 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다닐 수 가 있다. 수미씨도 중국상인들이나 일본상인들과 은밀한 거래를 통해 돈 맛을 알게 되었다. 일본사람들은 값을 치는데 있어서 솔직한 맛이 있어서 대하기 편했으나 중국상인들은 이래저래 속이려 들고 값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그러나 외활벌이는 외국 상인들과 현금 거래를 통해 약간의 이득금을 챙길 수 있는 기회였다. 외화벌이를 시작하여 얼마간은 고지식하게 부대에다 돈을 꼬박꼬박 갖다 바쳤지만, 점점 요령이 생기면서 얼마의 돈을 주머니에 넣을 수 있었다. 오징어 가격은 계속 조금씩 올랐지만, 부대에는 옛날 가격을 대고 나머지는 돈을 챙기기도 했다. 그래서 외화벌이를 나왔다 돌아갈 때면 동료 속옷도 사다주는 등 나름대로 돈을 쓸 수 있는 재미를 솔솔 맛보았다. 수미씨는 외화벌이를 3년간 다니면서 남몰래 꽤나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처럼 외화벌이는 돈을 모을 수 있는 기회였지만, 중요한 것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학창시절부터 군대생활까지 북한에서 받았던 주변 국가에 대한 교육은 모두 다 헐벗고 못사는 모습뿐이었다. 군대에선 토요일마다 정치 강의를 했다. 남조선의 불쌍한 주민들의 모습이 비디오로 비쳐 나왔다. 길거리를 전전하는 많은 노숙자들의 비참한 생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추위에 떨며 줄 서 있는 불쌍한 남조선 사람들, 군인들이 일반 주민들을 처참하게 죽이는 모습들을 보면서 통일을 위해서는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야 했다.
중국도, 미국도, 일본도, 그 어느 나라도 전부 끊이지 않는 전쟁의 연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가난에 찌든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알았다. 그래서 북한에 사는 자신은 어떠한 현실에서도 그들보다는 잘 살고 있었고, 어떤 역경도 이겨내고 미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남조선 괴뢰도당을 쳐부수고 통일을 이룩하는 그날까지 모든 힘을 다해 전진하는 일만이 전부였다.
그런데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외화벌이에서 만나는 중국사람들이나 일본사람들의 모습은 달라보였다. 그들의 옷 입은 차림새와 기름기 번들번들한 얼굴은 북한사람들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북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비쩍 마르고 이가 드글드글한 차림에 냄새가 났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매번 느끼지만, 그 어떤 동료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고 수미씨 또한 그랬다. 그러던 중 마음이 통한 동료가 자신의 생각을 슬쩍 전해왔고, 서로 같은 생각을 나누게 되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해 속일 수는 없는 것이었다. 점점 여러 동료들이 속 얘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서로서로 드러나지 않는 이국에 대한 알지 못하는 동경을 하게 되었다.
“우리 죽기 전에 저 중국이라는 나라에 한번 가볼까?”
“아냐, 우리가 변질되면 안되지.”
중국에 가서 일주일만 벌면 북한에서 평생 먹고 살 수 있다는 어느 중국 상인의 말이 귓가에 쟁쟁하니 남았다. 막연하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환상이 외화벌이 동료들 사이에 조용히 퍼져 있었다.
군대에는 여군과 남군이 함께 있었다. 그래서 여자군인들의 군대 생활은 또 한가지 힘든 점이 따랐다. 여자군인이 몇 되지 않기 때문에 남자군인들 사이에서 쟁탈전이 흔히 벌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군대 내에서도 드러나지 않게 짝이 있었지만, 어떤 동료는 상사에게 몸을 버리는 일도 쉽게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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