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길 넘어 찾은 자유, 탈북자 증언 4
중국생활, 북한사람도 아닌, 중국사람도 아닌, 또 다른 사람으로 변해
신분이 드러나는 군복 차림이어서 어디가든 자유롭지 못한 상황은 뻔했다. 열한 명 중 남자군인은 단 한명이었다. 첩첩 산과 강을 넘는 것이 군인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거였다. 열한 명의 조심스런 발걸음은 어서 북한 땅을 넘어서는 거였고, 중국에서 얼마간 돈을 벌어 돌아가야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국경을 넘어서 기쁨의 호흡을 가다듬는 순간 다시 고향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일행은 1명, 2명, 3명, 5명씩 각자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흩어졌다. 다행히 산골짜기 외딴집에 사는 부부는 북한말이 통했다.
“계획이 어떤건가요?”
이후 그 집 부부는 다섯 명을 어디론가 데려갔다. 장장 여섯 시간을 차로 달렸다. 수미씨 일행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일주일 후 다시 그 외딴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그 집 부부가 하자는 데로 따르기고 했다. 다섯 명의 미래는 오로지 그 부부의 행동에 달려 있었다. 여섯 시간을 달려서 간 곳에서 그 집 남자가 잠바차림의 남자 둘과 만나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는 다른 차를 갈아탔다. 지금까지 북한말을 했던 남자가 두 남자와는 중국말로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그들의 눈빛을 통해 어떤 말이 오가는지 수미 일행은 직감으로 느낄 수는 있었다. 알 수 없는 닥친 현실 앞에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왔다. 이제부터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세 남자의 충혈 된 눈알을 통해 다섯 명의 여자에게는 가격이 매겨지고 있었다. 분명히 인신매매였다. 그게 사실이라 해도 다섯 여자에게는 외딴집 부부가 보호자였고 그들을 의지하고 믿는 수밖에는 아무도리가 없었다. 반항의 어떤 표현도 할 수 없는 동물과 같았다. 순간 가만히 있다가는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힌 수미씨는 자신의 처지를 밝혀야 한다는 판단에서 입을 열었다.
“저는 임신한 여자입니다.”
수미씨의 뜬금없는 말에 여자가 눈길을 돌리더니 몇 개월이나 되었냐고 되물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3개월째 된 것 같아요.”
“지우고 싶냐?”
여자는 안 되었다는 눈빛으로 수미씨를 다그치듯 물어왔다.
“낳고 싶어요.”
수미씨는 아이를 낳고 싶다고 해야 자신이 안전할 것만 같아 거의 무의식적인 대답을 했다. 일주일만 돈 벌어서 돌아가고 싶었던 꿈은 산산조각 어디론가 메아리 되어 흩어지는 것만 같은 여자의 다시 다그치는 말이 들려왔다.
“왜 임신을 했어? 지우겠다면 돈 들여서 지울 수 있어.”
수미씨가 임신을 했다는 말 때문인지 별도로 분리를 시켰다. 세 명의 동료들이 먼저 어디론가 보내진 후 여자가 말하기를 모두 음식점으로 갔다고 말해줬다. 한마디로 얼마의 돈을 받고 팔아먹은 게 틀림없었다. 수미씨와 이제 한 동료가 남았다.
“너희들은 잘 보호해 줄 사람들에게 보내겠다.”
여자가 둘을 안심시키듯 말했다. 그리고 다시 차를 태워 어디론가 데려갔다. 나중 동료들은 13,000원씩 팔려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디로 가는데요?”
“지금은 내가 얘기해도 몰라, 앞으로 알게 될 거니까 조금만 참아.”
얼마를 지나자 한 친구도 어디론가 데려가고 이제 수미씨만 남았다. 얼마 후 부부는 수미씨를 일행에게 넘기고 떠나면서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하라며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주었다. 수미씨가 그들을 따라 이틀 걸려 도착한 곳은 어떤 작은 도시였다. 들리는 말에는 안산이라는 곳이었다. 수미씨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몸을 의지한 채 숨어 지내야 했다. 그러나 탈북 때부터 좋지 않았던 건강상태는 더 악화되었다. 그렇다 해도 아픈 모습이 보이면 행여 더 안 좋은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안 아픈 척 하려 애를 썼다. 그렇게 20여일이 지나자 그들이 수미씨에게 결혼을 하게 된다고 말해 주었다. 수미씨는 어쩔 수 없이 애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들이 하자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수미씨를 어떤 시골마을로 데려갔다. 한 조선족 집안의 남자와 결혼을 시키기 위해서였는데 수미씨는 계속 몸이 마르고 아픈 상태였다. 결혼을 한 후에도 수미씨의 몸이 호전되지 않고 계속 아프자 시댁식구들이 중국 개인병원에 데려갔다. 병원에서는 맥박을 재더니 임신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몇 개월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하여 결혼한 조선족 남편은 자신의 아이인줄 알게 되었다. 중국병원에서는 산모의 맥박을 재어 임신인지 알아내지만 몇 개월인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 집에서의 생활은 북한보다 더 냄새가 나고 지저분한 집안은 물론이고 언어와 문화차이도 커서 통하는 것이 전혀 없었다. 배는 점점 불러 오르고 먹지도 못한 채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며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배가 남산만한 여자에게 나이든 시부모는 밤낮으로 밭을 매길 바랬다. 게다가 주변 사람이 수미씨를 경찰에 신고하는 상황이 생겼다. 수미씨는 애를 낳기도 전에 두 번이나 신고를 당해 잡혀갈 뻔 했다. 그때마다 조선족 남편이 신고한 사람에게 5,000원을 주고 해결했다. 똑같은 사람이 두 번이나 신고를 했는데, 모두가 돈을 얻어 내기 위한 이웃의 수작이었다. 수미씨는 그 곳에서 또 탈출할 기회를 찾아야 했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해.’
그곳 생활은 도저히 정이 들지 않았다. 북한 사람은 갈 때가 없으니 아무렇게나 대하고 욕을 퍼부어도 누구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이용했다. 노예와 같은 희망 없는 삶이 계속되었고, 7개월 만에 딸이 태어나자 조선족 남자는 자신의 아이가 칠삭둥이로 나온 줄 알고 아이를 예뻐해 주었다. 조선족남자는 처음으로 여자를 만나 결혼까지 했기 때문인지 수미씨에게 잘해주려고 했다. 그러나 차마 인간으로서 참지 못할 일이 생겼다. 북한을 탈출한 여성들이 자꾸 늘어난다는 사실을 안 이 집안사람들이 그 루트를 이용해 북한 탈출 여성을 또 데려온 것이다. 그리고는 두 여자를 두고 비인간적인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네가 먼저 왔으면, 저 애와 결혼 안 시키고 너와 했을 것이다."
자신의 처지들이 기가 막혔지만 두 북한 여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저 노예나 다름없었다.
“이 애가 누굴 닮았냐? 내 새끼인지 아닌지도 모른 애를 어떻게 키우냐?”
점점 아이까지 자기네 아이가 아닐 것이라는 의심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두 여자에게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해댔다. 이건 인간으로서 아니 여자로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치욕이었다. 견디다 못해 수미씨는 처음에 만났던 부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저를 여기에 시집보냈어요?”
들려오는 말은 어차피 이곳에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고, 애를 가져서 어쩔 수 없이 돈 받고 시집보냈는데, 그나마 겨우겨우 싸게 보낸 것이라는 답변이 들려왔다. 그런 후 그 집 조선족 이모가 수미씨를 한 번 더 팔아먹으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미씨는 이제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평소 그 집 이모가 남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남한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다 라디오를 통해 남한 방송을 듣게 됐고 이곳을 탈출하여 꼭 한국으로 가리라 마음먹었다. 이후 참을 수 없는 생활 속에 어느 날 한국방송국에 편지를 쓰기도 했다.
‘이곳은 도저히 정상적인 삶이 아닙니다. 북한보다 못한 삶이 바로 이곳입니다. 노예와 같은 삶이 바로 이곳입니다.’
편지가 전해진 것을 느꼈다. 그리고 늘 그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을 갖고 생활하던 끝에 드디어 그 집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탈북자를 돕는 한 스님을 알게 되었다. 중국내 탈북인들의 생활이 자유스럽지 못했으나 숨어 지내며 스님이 주는 용돈으로 한자공부를 하고, 책도 사보았다. 그 중 생활비를 모아 한국 대사관을 찾아갔으나 군인인데다가 중국체류 1년이 넘었다는 사유, 한마디로 불법이라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다.
“이제 이곳에서 죽을 수밖에 없구나.”
그리고 몇 달, 자포자기와 희미한 희망이 교차되는 날들을 보내던 중에 결국 도움을 받아 남한으로 올 수 있었다. 이후 남한에서 함께 북한을 탈출했던 동료 중 다섯 명을 만날 수 있었다. 동료들은 중국에서 저마다 차마 들춰내기 싫은 비참한 생활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중 한 동료의 사연은 너무도 기가 막혔다. 인신매매를 통해 팔려간 곳이 자동차로 이틀을 걸쳐 가는 곳이었다. 중국의 깊숙한 산골마을이었던 그곳에는 여자라곤 단 한명도 없이 20대 젊은 남자부터 70대 노인까지 전부 남자만 스무 댓 명이 살고 있었다. 여자들이 모두 도망가고 남자만 남아 살고 있는 마을이었다. 그곳 남자들은 그 친구가 행여 도망갈까 봐 가둬놓고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다는 거였다. 그녀는 죽어버릴까 여러 번 시도했으나 죽음도 제대로 되지 않아 결국 포기한 채 그들이 하라는 대로 순종하며 탈출할 기회만을 엿보며 살았다고 했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옥 같은 생활을 견뎌냈다. 그리고 그녀는 남한에서의 생활도 잘 적응하지 못하고 사기를 당했으며, 캐나다로 떠났다.
북한이탈주민은 중국으로 넘어가면 무국적 상태에서 돼지 취급 받으며 생활할 수밖에 없고 죽여도 아무도 항의할 사람이 없다. 당시 장백산 부근 중국마을에서는 북한 사람들을 보면 때려죽여도 괜찮다며, 전혀 상관하지 않고 처벌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주민들에게 전달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장백산 부근에는 인삼을 재배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었다. 인삼은 6년을 재배해야 하는데, 북한 사람들이 밤에 몰래 넘어와 인삼을 캐서 중국 상인들에게 싸게 파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장백산 부근 중국 사람들이 화가 나 걸리면 주민들이 달려가 때려 죽였다는 거였다. 북한이탈주민들은 일단 중국으로 넘어가면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노예와 같은 생활을 견디는 수밖에는 어떤 도리가 없는 현실이다. 북한사람으로 태어나 중국으로 탈북 하여 지내는 생활은 한 인간의 많은 것을 앗아간다. 탈북자들은 중국에 머무는 동안 더 이상 북한 사람도 아니요, 중국 사람도 아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또 다른 인간이 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에서의 생활은 비인간적이고 비참한 생활을 하며, 극히 안 좋은 상황만 알게 되기 때문에 탈북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신적인 치료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버려야 했던 아픔의 치유가 그 무엇보다도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한으로 온 수미씨는 하나원에서 얼마간 생활했다. 백화점에 가서 비싼 옷도 사줘서 입어보기도 했으며, 일식집에 가서 음식도 먹어보고, 물론 공짜로 먹여주고 용돈도 주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이 탈북자들에게 허황된 생활에 길들여지게도 했다. 수미씨는 나중 그런 생활이 탈북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차라리 일을 시켜 그에 따른 보수를 주어서 스스로 먹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저축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더 필요한 것이었다. 또 다른 정신병자는 바로 거기에서 오는 거였다. 자신의 본분을 잃어버린 채 겉모습만 남한 사람으로 변장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북한에서의 생활에 비하면 엄청난 혜택을 받고 있으면서도, 공짜로 제공 받는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면 자기 삶을 망각하게 되었다.
“왜 우리 탈북인들에게 더 잘해주지 않는가?”
마치 탈북해 온 것이 큰 혜택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일자리를 얻어도 6개월을 넘기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 결국 퇴폐적인 일로 빠지는 일도 많이 봤다. 북한에서 쓰던 모든 사고방식, 문화 등이 남한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많은 탈북인이 힘들어 했다. 북한사람과 남한사람이 서로 말이 통하는 한 민족이라는 것으로서 모든 것이 통하리라 생각하지만 그건 전혀 맞지 않다. 북한에서 태어나 평생 살아온 사람과 남한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들의 차이는 다른 나라사람끼리 만난 것이나 똑같은 것이다. 대화가 통하지만 말의 내용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고, 문화의 차이는 엄청나다. 그래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상황을 빨리 받아 들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수미씨는 새로운 삶을 사는 마음으로 하나원에서도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았고, 하나원을 나온 뒤에는 미친 듯이 열심히 일했다. 그것만이 앞으로 남한에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일한만큼 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 기쁨이 바로 행복이었고 우울했던 정신도 점점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
수미씨는 늘 다짐했다. 그러나 탈북자들 중에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지만, 탈북자라는 딱지가 남한 사람들 사이에서 제약을 받기도 한다. 무조건 탈북자들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수미씨는 탈북자들을 위한 일을 시작했다. <다음호에 계속>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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