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송하훈의 중국기행(1)

죄수들이 입었던 의복

8·15 광복절 기념행사를 T·V로 지켜보면서 여름 휴가철에 다녀온 여순감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순감옥을 간 것은 지난 8월 7일이었으므로 광복절을 일주일 앞두고 간 셈이었다. 여순 감옥이 있는 곳은 정확히 중국 랴오닝성 다렌시 뤼순에 있는 일제시대의 감옥을 말한다. 면적은 약 26.000㎡로 275개의 감방이 있고, 2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

나에게 있어 ‘여순 감옥’이란 어휘를 처음 쓴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국세청 전남지방 산문 글짓기 대회에 출품한 내용으로 ‘여순 감옥 돌벽에 무명지 손가락을 깨물어 대한독립만세라고 한 자 한 자 써내려갔던 안중근 의사!’란 글귀로 기억된다. 그런데 이제 나이 들어 그 역사적 현장에 가보게 된다는 사실에 가슴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안중근 의사가 순절한 사형장

큰 대(大)자 형으로 만들어진 방사형 구조로 된 여순 감옥에 들어섰을 때, 설레임은 곧 울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당하기 직전까지 지냈던 독방을 보면서부터였다.

그러니까 1909년 10월 우덕순, 조도선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처단을 계획한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서 조선 초대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였다. 일제 식민지 하에서 온 국민이 신음을 하고 지낼 때 하얼빈 역에서 울려 퍼진 총소리는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대 사건이었다.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교육자이자 의병장이었던 안중근은,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중국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귀국 후 학교 경영에 힘쓰다가 1907년 연변을 거쳐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갔다. 1908년에는 대한의군참모중장에 임명되어 이후 국민회, 일심회, 단지동맹 등을 조직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민족이 영웅으로 재판과정에서도 당당한 태도를 잃지 않았던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여순 감옥에서 순국하기 전, 그는 어머니께 편지를 보낸다.

--어머님 전상서.

불초한 자식은 감히 한 말씀 어머님 전에 올리려 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자식의 막심한 불효와 아침저녁 문안인사 못드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감정을 이기지 못하시고 이 불초자를 너무나 생각해주시니 훗날 천당에서 만나 뵈올 것을 바라오며 또 기도하옵니다.

이 현세의 일이야말로 모두 주님의 명령에 달려 있으니 마음을 편안히 하옵기를 천만 번 바라올 뿐입니다. 분도는 장차 신부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희망하오며, 후일에도 잊지 마옵시고 천주에 바치도록 키워주십시오. 이상이 대요이며 그 밖에도 드릴 말씀은 허다하오나 후일 천당에서 기쁘게 만나 뵈온 후 누누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위 아래 여러분께 문안도 드리지 못하오니 반드시 꼭 주교님을 진심으로 신앙하시어 후일 천당에서 기쁘게 만나 뵈옵겠다고 전해 주시기 바라옵니다. 이 세상의 여러 가지 일은 정근과 공근에게 들어주시옵고 배려를 거두시고 마음 편안히 지내시옵소서.

1910년 2월 14일 아들 도마 올림.

이 같은 내용은 여순 감옥에 있는 안중근 기념관에 걸려 있었다. 같은 날 안중근 의사는 또 하나의 편지를 아내에게 보낸다.

--분도 어머니에게 부치는 글.

우리들은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천주의 안배로 배필이 되고 다시 주님의 명으로 이제 헤어지게 되었으니 또 머지않아 주님의 은혜로 천당 영복의 땅에서 영원에 보이려 하오. 반드시 감정에 괴로워함이 없이 주님의 안배만을 믿고 신앙을 열심히 하고 어머님에게 효도를 다하고 두 동생과 화목하여 자식의 교육에 힘쓰며 세상에 처하여 심신을 평안히 하고 후세 영원히 즐거움을 바랄 뿐이오. 장남 분도를 신부가 되게 하려고 나는 마음을 결정하고 믿고 있으니 그리 알고 반드시 잊지 말고 특히 천주께 바치어 후세에 신부가 되게 하시오.

많고 많은 말은 천당에서 기쁘고 즐겁게 만나보고 상세히 이야기 할 기회가 있을 것을 또 바랄뿐이오.

2010년 경술 2월 14일 장부 도마 올림.

안중근 의사가 부인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그가 이날 ‘최후의 유언’도 작성했다.

--최후의 유언.

내가 죽은 뒤에 뼈를 할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르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비장감이 흐르는 말들이다.

그런데 정작 안중근 의사가 교수형을 당했던 현장을 볼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재판과정에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당당한 자세로 임했던 안중근 의사. 첫째, 둘째, 셋째 등으로 나뉘어 왜 내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는가에 대해 또박또박 말했던 언중근 의사. 그러나 그의 유언대로 하얼빈 공원 곁에 안타깝게도 묻히지 못하고 담장 너머 공동묘지에 버려지고 말았으니······.

여순 감옥 일본 의사 고가쇼이치가 기술한 교수형 집행과정은 다음과 같다.

--여순 감옥 중형범들은 다수가 만주와 몽골에서 잡혀왔다. 사형을 집행할 때 어떤 때는 3명, 많을 때는 5~6명이었다. 사형에 임할 때 형무소장, 의사 및 각 계장들 전체가 나란히 2층 계단에 서서 준비가 되면 사형수를 게단 밑에 끌고 내려가 먼저 중간에 선 형무소장이 판결을 선포한다. ‘관동군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사형에 처하며 즉시 집행한다’는 내용이다. 간수는 사형수를 1m 크기의 나무판에 끌고와 수갑을 채우고 눈을 가린 후 형구를 씌워 연결고리로 목덜미를 단단히 묶는다. 경첩이 열리면 사형수가 이동식 나무판에서 떨어진다. 의사는 계단 밑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사형수의 심장 박동을 검사하고 즉시 형무소장에게 보고한다. 제1구 시체가 통에 담아 이동하면 다음 것을 기다린다. (중략) 참말로 견디기가 어려웠다. 교수형에 달린 삼노끈은 아주 낡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를 빨았는지 증명해 주고 있지 않는가.

여기에서 의사가 말한 관동군 사령부는 동북지역에 주재한 일본의 최고 군사기관었으며 ‘대륙정책’을 추진하고 항고툰 사건, 9·18 사변을 주도한 본산이었다.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난 후 일본은 대련을 점령하고 일련의 식민통치기구를 건립하였는데, 1906년 설립된 여순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은 식민통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중요한 상징이었다. 그 사법제도와 기구들은 끊임없이 변화되었지만 한 가지는 결코 변하지 않았으니 그것은 칼 밑에서 벌어진 재판은 절대 공정할 리 없다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 역시 처음에는 유리한 재판이 진행되었으나 본국에서 재판장에게 사형을 시키라는 밀명에 의해 최종 사형으로 처리된 것만 보아도 공정한 재판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동법원도 1906년 관동도독부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을 여순에 설립(1923년 지방법원은 대련으로 이전)하였으나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후 해체되었다.

안중근 의사의 친필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은 살아 있는 민족혼의 상징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은 그가 썼던 글씨로 가득차 있고, 안 의사에게 꽃을 바칠 수 있도록 꽃 파는 여인이 있다. 안 의사가 집행당했던 형장도 그대로 보전되어 있고, 안 의사를 재판했던 법원도 보존되어 있다. 기자들이 재판과정을 지켜보기 위해 너무나 많은 인원이 몰려드는 바람에 큰 장소에서 재판을 했다고 한다.

8·15 광복절을 앞두고 찾아간 여순 감옥에서 안중근 의사의 충절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 바로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