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갔을 때 담배를 한 갑 샀더니 거기 쓰인 경고문이 간단명료하면서도 살벌하다. 그것도 대문자로만 ‘SMOKING KILLS’라고 써있다. ‘담배는 죽인다’ 말하자면 담배가 살인범이라는 얘긴데, 진짜로 그렇다면 당장 담배를 사람 손 안 닿는 곳으로 격리하거나 할 일이지 돈 받고 파는 건 무슨 경우란 말인가(더구나 호주는 담배 값이 무척 비싸다). 담배는 피우고 싶은데 살인 담배라니 마음은 찜찜하고, 더구나 들인 돈이 얼만데…. 나는 궁리 끝에 글자를 고쳐 마음을 달래고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워 물었다. 어떻게 고쳤느냐고? ‘담배 맛 죽인다’.
담배에는 잎담배와 살담배가 있다. 잎담배는 썰지 않고 잎사귀 그대로 말린 담배, 살담배는 칼 같은 것으로 썬 담배를 가리키는데, 북한에서는 살담배를 써레기나 썬담배라고 한다. 살담배는 품질에 따라 다시 세 가지로 나뉘는데, 붉은 빛의 불겅이가 가장 낮고, 불그스름한 반불겅이가 그 다음, 막불겅이가 가장 처지는 것으로 막초라고 한다. 골초는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을 뜻하기도 하지만, 품질이 낮은 쓰고 독한 담배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체인 스모크’라는 뜻으로는 골초 말고도 담배질꾼, 철록어미, 용고뚜리 같은 것들이 있다. ‘철록어미나 용귀돌이나 담배는 잘 먹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용귀돌(龍貴乭)이란 사람은 어느 때 사람인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담배를 잘 피우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용고뚜리는 아마도 용귀들의 변형일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용귀돌이라는 사람은 폐암에 걸리지 않고 한세상 잘 살다 갔는지 궁금하다. 이름으로 보아서는 천민(賤民)임이 분명한데 담배 값은 어떻게 댔는지 그것도 궁금하다.
쇠털담배는 쇠털처럼 잘게 썬 담배로 담뱃대에 담아서 피우며, 순담배는 담배의 순을 따서 말린 담배로 순뜯이라고도 한다. 퍼런 잎을 썰어 그 자리에서 말린 담배는 풋담배라고 하는데,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맛도 모르고 (따라서 멋도 모르고) 피우는 짓도 풋담배라고 한다. 풋술과 통하는 말이다.
얇은 종이(담배를 마는 종이는 말지라고 한다)로 가늘고 길게 말아 놓은 담배를 권련이라고 하는데, 권련은 ‘만 담배’라는 뜻의 권연(卷煙)이 변해서 된 말이다. 북한에서는 권련을 마라초(역시 ‘만 담배’라는 뜻이다)나 가치담배라고 하는데, 남한에서는 가치담배가 아니라 낱담배, 즉 낱개로 파는 담배라는 뜻이다. 참고로 담배의 낱개를 세는 단위로 남한애서는 담배 한 보루가 열 갑인데 비해 북한에서는 서른 갑을 한 보루로 센다. 담배 연기 자욱한 흡연실(吸煙室)을 북한에서는 담배칸이라고 한다. 통일이 되면 흡연자 대회라도 열어서 용어나 단위를 통일해야 하지 않을까.
권련은 지권련과 잎권련으로 나눌 수가 있다. 지권련은 담뱃잎을 썰어서 얇은 종이로 만 담배, 즉 우리가 아는 보통의 담배이고, 잎권련은 담뱃잎을 썰지 않고 통째로 돌돌 말아서 만든 담배로, 처칠 하면 생각나는 시가나 여송연(呂宋煙)이 바로 잎권련이다. 여송연은 필리핀의 루손 섬에서 나는 잎권련을 말하는데, 여송(呂宋)이란 루손의 중국식 표기에 다름아니다. 루손 섬을 중국에서는 여송도(呂宋島)라고 표기한다.
살담배나 잎담배를 넣고 다니는 주머니는 담배쌈지라고 하는데, 담배쌈지에는 허리에 차는 찰쌈지와 소매나 호주머니에 넣게 만든 쥘쌈지가 있다.
담배를 피우는 도구인 담뱃대는 길이에 따라 긴대(長竹)와 짜른대(短竹)로 나뉘는데, 짜른대는 곰방대라고도 한다. 담뱃대는 다시 물부리, 섶대, 담배통의 세 부문으로 쪼개진다. 물부리는 담배를 피울 때 잎에 물고 빠는 부분으로 빨부리라고도 하는데, 낱담배를 끼워서 피우는 하나로 된 담뱃대도 물부리라고 한다. 물부리 끝에 싸서 물린 쇠는 동거리나 동이라고 부른다. 담배통은 말 그대로 담배를 담는 통이고, 설대는 담배통과 물부리 사이를 연결하는 가느다란 대를 가리킨다. 물부리나 담배통에서 설대를 끼워 맞추게 된 부분은 댓5집이나 나무집이라고 한다. 삼동물림은 설대 중간에 금이나 은, 구리를 물린 담뱃대를 가리킨다. 골통대는 나무를 깎거나 흙을 구워 만든 담뱃대로 담배통이 굵고 크며 짧은 특징이 있다. 흙을 구워서 만든 담배통은 특별히 고불통이라고 부른다.
피우다 남은 권련은 꽁초, 얼마 안 피운 기다란 꽁초는 장초(이 말을 쓸 때는 대개 앞에 ‘피 같은’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라고 하는데, 담뱃대에 덜 타고 남아 있는 담배는 탄지라고 한다. 담뱃대 속에 낀 진은 댓진이라고 하는데, 댓진이 얼마나 지독한 물건이었던지 ‘좆 까고 댓진 바른 놈 같으니’라는 악담이 속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기억해 둘 만한 도사리
고불통 : 흙을 구워서 만든 담배통
골초 :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 품질이 낮은 쓰고 독한 담배
순뜯이 : 담배의 순을 따서 말린 담배
탄지 : 담뱃대에 덜 타고 남아 있는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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