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제각지기 김근수(52) 김미화(43)씨 부부
탐진최씨 제각 강덕서원(康德書院) 제각지기 8년째
60년대 까지만 해도 각 마을에 하나씩은 있는 제각에 으레 제각지기가 있었다. 특히 자자일촌인 경우 시향뿐 아니라 관혼상제의 굳은 일을 도맡아 해냈다. 그러나 그들의 대한 예우는 하대였다. 논이나 밭이라곤 한 뙈기도 없어서 그 문중에 빌붙어 살아야했으므로 벌초는 말할 것도 없고 어느 집에서나 생기기 마련인 혼례나 초상 때에 어김없이 나타나 굳은 일까지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굳이 먹고 사는 일에 얽매이는 세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논마지기 있는 것을 내팽개치고 도시로 떠나는 세상이 와버린 것이다.
조상을 모시고 봉제사와 함께 벌초하는 일이 머리 무겁게 생각하는 요즈음이다. 그러다보니 제각지기란 말이 제각지기이지 모셔와야 할 판이다. 대부분 제각에는 문중답이 있어 그것으로 시향의 제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농사일도 싫어하는 세상에 제각을 지키는 사람은 그래서 더욱 없다.
“서울에서 나름대로 잘 나갔는데 그만 기천만원의 어음부도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내려온 것이 여기까지 와버렸네요.” 김근수씨의 말이다. 그는 4500평의 밭을 경작하는 대신 1500평의 벌초를 해야 한다. 봉은 하나지만 면적이 크기 때문이다. 그 밭에 해년마다 고구마를 심는데, 멧돼지가 나타나 두어 차례 휘젓는 바람에 1천만원 정도의 수입 밖에 하지 못한다. 논은 스물여덟마기(5600평)를 짓는다. 그 대신 200만원 정도의 곡수를 내놓으면 그것으로 문중측에서는 제물비로 사용한다.
“강덕서원에서는 일년에 두 차례 제사를 모십니다. 가을에 이틀간 시향을 모시고, 음력 3월 보름에는 타성받이의 많은 분들이 오셔서 날것으로 제상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냅니다.”
어떻게 지내느냐는 질문에 김근수씨는 “갓쓰고 도포입고 지내지요. 가을 시향 때는 관광차 3대가 서울 등지에서 옵니다. 2-3백명의 자손들이 모여들어 조상님께 제사를 지냅니다. 제물은 모두 문중에서 준비를 하고 저는 밥만 준비하는 데 그 비용을 줍니다”하고 말하면서도 정작 누구를 모시는지는 잘 알지 못하는 듯 했다. 하지만 강덕서원에서도 충효의 선현을 모시고 있기에 타성받이 인사들이 찾아와 봉제사를 하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김근수씨가 사실 일년에 두 차례를 제사 지내는 일에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문제는 밭농사와 논농사에 일년내내 땀을 흘려야만 했다. 텃밭에는 지난 여름 배추를 심었는데 가을가뭄에 조석으로 물주기에 바빴고 추수철이다보니 곡식을 거둬들이기에 하루해가 빠듯했다.
“땅굴 속에 토종닭을 키우고, 사냥개도 여러 마리 기르는 재미로 삽니다. 어려움은 그다지 없지만 애들한테는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시대의 제각지기 김근수씨. 하지만 활달하고 바지런한 성품에서 젊은 귀농가 모습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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