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 이순신은 황상과 함께 조용한 바닷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늘은 맑았고 바다 또한 그날따라 푸른빛을 더하고 있었지만 이순신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장군. 오늘은 장군의 얼굴이 몹시 어둡습니다. 말 못할 사정이라도 계신지요?”
“아니오. 왜적이 오면 언제든지 출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소. 다만 들리는 말이 심상치 않아서······.”
이순신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원 장군 때문에 그렇습니까? 재작년 8월에도 원 장군 때문에 얼마나 마음을 상하셨습니까?”
황대중은 이순신이 원균 때문에 왜적과 싸우는 것 이상으로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1593년 8월, 이억기 우수사가 와서 원균이 이순신을 욕하더라는 말을 전해왔었고, 걸핏하면 엉뚱한 말을 지껄이는 바람에 이순신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속만 상해한다는 사실이었다. 그해 8월 말경에는 원균이 이순신에게 술을 달라고 하면서 마시고 나더니 잔뜩 취해서는 횡설수설하다 못해 막말까지 거침없이 했었다.
“장군. 아무래도 조정 대신들도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장군을 처음 추천한 분은 유성룡 대감이 아닙니까? 그러다 보니 유 대감을 좋아하지 않는 대신들은 원균과 어울리면서 장군을 공격하는 것 같습니다. 이에 덩달아 원 장군도 장군을 직접 괴롭히고 있질 않습니까?”
“흉악하게 도리에 어긋난 언행을 해 온 것은 사실이지요.”
“그 쪽에서 계속 장군더러 와서 구원을 해주지 않았다고 모함을 해 오지 않습니까? 뭔가 대단한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장군.”
“요사이 꿈자리가 사납소. 자다가 벌떡 깨어나 보면 어느 틈에 식은땀을 흘리지 않나.”
이순신이 고개를 들어 먼 바다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장군. 건강을 생각해야 합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때 조카 이분(李芬)이 다가와 이순신을 불렀다.
“장군님. 서울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이분은 차마 금부도사가 왔다는 말을 하지 못한 채 우물거렸다. 이순신은 고개만 끄덕거리고 나서 본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황대중은 뭔가 일이 터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잠자코 이순신을 뒤따라갔다.
“교지를 받으시오.”
추상같은 선전관의 말에 이순신은 공손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청천벽력 같은 말이 선전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순신은 조정을 속였고 임금을 업신여긴 무군지죄(無君之罪)를 저질렀다. 멋대로 노는 적을 치지 않았으니 나라를 배반한 무국지죄(無國之罪)를 저질렀을 뿐 아니라, 남의 공을 빼앗고 남을 죄에 빠뜨렸으나 무기탄지(無忌憚之罪)를 지었도다. 이 같이 많은 죄를 지음에 법에서는 용서가 있을 수 없도다······.
금부도사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교지를 읽어 내려갔을 때 주변에 있던 장졸들이 놀란 나머지 어안이 벙벙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황대중은 두 다리가 후둘후둘 떨리면서 갑자기 눈앞에 뿌예지는 바람이 앞이 보이지 않앗다. 이순신 장군이 반역죄를 지다니······. 반역은 곧 죽음이었다.
“장군! 이런 날벼락이 어딨습니까?”
황대중의 두 눈에서 솔방울만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3년 7개월 동안 살았던 한산도를 떠나 이제 의금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해야할 판이었다. 이순신이 오랏줄을 받고 받기 전, 이미 이순신의 종사관과 원균 부하들이 인수인계를 했을 때에도 충분히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군량미 9천9백14섬과 화약 4천 근과 총통 3백 정이 전쟁을 위해 준비했지만 고스란히 원균 부하들에게 인계인수 되었던 것이다.
이순신이 병졸들의 삼엄한 경계를 받으며 포구로 나가자 백성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털썩 주저앉고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큰소리로 이순신을 부르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이윽고 배에 오른 이순신이 차츰 멀어져가는 한산도를 바라보았다. 왜적들을 반드시 물리치겠다며 군량미를 비축하고 화약을 만들었으며 총통을 만든 한산도였지만 역적의 몸이 되어 떠나는 신세였다.
이순신은 일주일 후인 3월 4일 의금부에 도착하자마자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해평부원군 윤근수(尹根壽)가 조사관이 되어 이순신을 심문하였다. 묻고 답하는 심문이 아니라 이미 죄인임을 결론짓고 나서 그 절차를 밟는 식의 심문이었다.
이순신은 이윽고 12일부터 고문이 시작되었다. 천하장사도 의금부의 고문을 당해낼 사람은 없었다. 죄인도 아니요,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아니었다. 왜적과 싸워서 맨날 지기나 하는 패군지장은 더더욱 아니었으며, 그는 싸워서 이기는 무적의 장수요, 조선의 자랑스러운 수군의 장수였다. 그러나 이순신은 왜적에게 죽는 것이 아니라 지키고자 목숨을 걸었던 조정에 의해 초죽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실직고 하렸다!”
윤근수는 땅바닥이 울릴 만큼 큰소리로 닦달을 했지만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요, 했던 일을 아니했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전혀 사실무근이올시다.”
이순신은 극구부인 했지만 사실 확인에 앞서 우선 매질이 먼저였다. 피투성이가 된 이순신은 맞아 죽으나 오랏줄에 묶여 죽으나 매한가지였다. 이제 천하의 명장 이순신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누명을 쓰고 천추의 한을 품은 체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치 않았던지 병조판서가 바뀌었다. 이덕형에서 이항복으로 바뀐 것이 다행스러운 것은 당시 이덕형은 이순신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반면 이항복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유성룡조차 나서질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 정탁이 신구차(伸救箚)라는 상소문을 임금 선조에게 올렸다. 저승사자의 옷자락을 움켜쥐는 상소문이었다.
저 임진년에 왜적의 배들이 바다를 덮고 적세가 하늘을 찌르던 날, 나라를 지키던 신하들은 성을 버린 자가 많고, 장수들도 군사를 온전히 보전한 자가 적었으니 조정의 명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였습니다.
이순신은 수군을 거느리고 원균과 함께 적의 칼부리를 꺾었으니 이로써 백성의 민심니 겨우 얼마쯤 생기를 얻게 되었고, 의병들은 용기를 얻을 수 있었으니 그 공로가 커 조정에서는 높은 직위와 함께 통제사의 이름까지 내린 것은 매우 잘 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왜적을 소탕하던 첫 무렵에 이순신이 원균보다 용기가 적었다고 더러 의심하고 있지만, 원균은 많은 배들을 침몰시킨 것에 반해 이순신은 장한 진세를 만들어 공로를 세웠습니다. 전쟁에 이함에 있어 피하지 않는 용기는 원균에게 있다고 하겠으나 이순신은 마침내 왜적을 무찔렀으니 그 공으로 따진다면 조금도 원균보다 덜 하다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원균에게는 수군을 거느리는 장수로서의 장점이 있기에 두 장수가 힘을 합치면 적을 물리치기에 어려움이 적어질 것이옵니다. 조정에서는 두 장군의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에 원균을 버리시고 이순신만 수군에 관한 일을 맡게 하였는데, 왜적을 방어하는 일에 능란한 나머지 군사를 잃지 않고 그 당당한 전세가 전일과 같아 왜적들이 조선수군을 겁내는 까닭도 여기에 있사옵니다.
무릇 인재란 나라의 보배입니다. 더구나 장수의 재질을 다긴 자로서 적을 막아내는 데에 가장 관계된 사람을 오직 법으로만 다스리려고만 하고 용서가 없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이순신은 참으로 장수의 재질이 있고 수전과 육전에서 못하는 일이 없으므로 변방 백성들이 촉망할뿐더러 적들은 무서워하고 있는 바이므로 끝내 큰 벌을 내리시려 한다면 공이 있는 자도 스스로 더 내키지 않을 것이고 능력이 있는 자도 스스로 더 애쓰지 않을 것이옵니다.
바라옵건대 은혜로운 하명으로써 문초를 덜어주셔서 그로 하여금 공로를 세워 성상의 은혜를 천지부모와 같이 받들어 목숨을 걸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옵니다.
한편 황대중은 이순신의 군관 송희립(宋希立)과 함께 서울로 화급히 달려갔다. 황대중은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나 이순신이 행여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에 일각이 여삼추였다.
“어서들 갑시다!”
황대중은 일행들을 재촉해 가며 이윽고 대궐 앞에 다다르자 멍석을 깔아놓고 임금 선조에게 탄원서를 보냈다,
“주상전하! 이순신을 살려주십시오!”
“주상전하! 이순신을 살려주십시오!”
황대중은 허리를 꺾고 무릎을 꿇을 때마다 이순신을 살려달라고 외쳤다. 끼니도 거른 채 간단없이 이어지는 황대중의 처절한 목소리에 대신들도 지나가다가 걸음을 멈추었고, 그를 지켜 본 내시며 궁녀들도 혀를 끌끌 차는 모습이었다.
3월 30일 의금부에서는 임금선조에게 이순신을 죽일 것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정탁의 절절한 탄원서와 황대중의 탄원서가 주효했던지 임금 선조는 사형을 면하는 대신 백의종군(白衣從軍)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리고 권율의 막하로 들어가라는 지엄한 어명이었다.
4월 1일. 이순신은 옥문을 나왔다. 황대중이 얼른 앞으로 달려가서
“장군! 그래 몸은 괜찮소이까?”
하고 묻자 이순신은 불편한 가운데서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미소를 띠어 보였다.
이순신이 남문(숭례문)으로 천천히 걸어 나가자 조카 붕, 분과 아들 울이 윤사행(尹士行), 운경(遠卿)과 함께 마중 나와 같이 대화를 나누었다. 그 때 지사 윤자긴(尹自新)과 비변량 이순지(李純智)가 와서 위로의 말을 건네 왔다.
이 밖에도 술을 가지고 와 따라주며 위로해 주는 사람도 있었는데, 여의정 유성룡, 판부사 정탁 등이 사람을 보내 문안을 해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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