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합이합(非閤伊閤)
영의정(領議政) 김좌근(金左根)의 애첩은 본래 나주기녀였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영의정 김좌근의 애첩이다 보니 세력과 권세가 넘치나 귤을 가득 채운 마차를 끌고 갈 만큼 부잣집 잘 생긴 남자는 혹 벼슬자리를 얻을까 하고, 허리라도 붙잡아 출세를 하겠다고 하는 수령(守令)은 아부를 해대면서 영의정인 김좌근에게 부르는 합하(閤下)의 합(閤)자를 나주기녀에게 붙여 불렀다. 그래서 나씨(羅氏) 성에 합자를 붙이니 나합(羅閤)이 된 것이다.
하루는 김좌근이 나합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너를 불러 나합이라고 한다 들었다. 도대체 무슨 영문이더냐?”
나합이 대답하기를,
“세상 사람들은 저를 그렇게 말한다지만 전혀 다른 말입니다. 저를 희롱하기 위해 조개 합(蛤)이라고 하니 나합(羅蛤)의 합자(字)는 조개 합(蛤)이오, 대감의 합하(閤下)의 합(閤)이 아니옵니다.”
나합의 기세등등함에 합<閤>자를 붙인 것 같지만 실은 여자의 성기를 일컫는 조개 합<蛤>자를 붙여 나합이라 불렀으니 이를 두고 웃을 것일까, 탄식할 것인가 모를 일이로다.
분당총중적일웅(粉䕋叢中亦一雄)
강산 이서구(薑山 李書九)가 전라감사로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영교(營校)를 불러 한 자루 검(劍)을 주며 말했다.
“지금 당장 나주읍(羅州邑)으로 가서 모일모시모처(某日某時某處)에서 아이를 분만하는 여자가 있을 것이니라.”
영교가 대답했다.
“어떻게 그 일을 알고 계십니까?”
“그것은 물을 필요가 없다. 그 여자가 남자 아이를 낳거든 이 검으로 즉살(卽殺)하라!”
영교는 당장 말을 타고 나주에 가 탐삭(探索)해보니 과연 모일모시모처(某日某時某處)에서 분만하는 임산부가 있었다. 그런데 그 임산부는 남자 아이가 아니라 여자 아이를 낳고 있었다. 영교는 돌아와 사실대로 고하였는데, 나중 그 여자 아이가 나합(羅閤)이었다. 자색이 뛰어나고 영리하고 똑똑하며 애교가 넘치는지라 어디를 가나 그 모습이 군계일학이었다. 그런 나합은 김합(金閤 : 영의정을 세 번이나 한 김좌근 대감)의 합(閤)을 자신의 이름에 붙였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분대총중(粉黛叢中)의 일웅(一雄)이라”하였다. 즉 분바르는 여인 중에 오직 나합만이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 이서구(李書九)는 1785년에 시강원사서, 홍문관교리, 한성부판윤, 평안도관찰사, 형조판서, 판중추부사 등의 벼슬을 하며 임금의 총애를 받았다. 나이 5세 때 어머니를 여읜 외로움이 일생동안 영향을 미쳤고, 벼슬보다는 은거에 미련을 가진 사람으로 독창과 개성, 현실문제, 조선의 역사와 자연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문학을 하게 되었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자연세계와 고귀한 내면의 깊이를 아울러 그려냄으로써 시의 격조를 높이는데 힘썼다.
혜당댁 나귀는 약식(藥食)을 잘 자신다
뇌물이 공공연하게 오가니 삼백육십주의 방백(方伯)과 수령(守令)의 봉물짐은 길거리에 길게 뻗쳐 교사동(校寺동)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와 우측 창고에 쌓인다. 이에 삼정승의 집에서 연회가 벌어질 때에는 육산주림(肉山酒林)과 주지과산(酒地果山)을 이루니 고기와 술과 과일이 산처럼 쌓였다. 천 가지 물건을 함부로 써대니 양반이나 상놈이나 노비나 종들이 약과(藥果)와 약식(藥食)을 가져다가 어느 집 나귀와 어느 집 큰 말에게 장난삼아 먹이는 고로
혜당댁(惠堂宅) 나귀는 약식을 잘 자시고 호판댁(戶判宅) 나귀는 약식을 잘 자시며, 호판댁 큰 말은 약과를 아니 잡순다는 말이 길거리 아이들의 희롱거리로 유행되었다.
영남(嶺南)의 문관(文官) 김진형(金鎭衡)은 이 같은 말이 무성하므로 상소문을 올렸다.
「주문지육(朱門之肉)에 시천극율(0踐0栗)하고, 취루지전(翠樓之前)에 여0악식(00樂食)하므로 가축이 식인식이(食人食而) 부지금(不知禁)하되 년풍동요(年豊冬腰)에도 전하지적자(殿下之赤子)는 유유동아자야(猶有凍餓者也)」하였다.
/원작:윤효정(1860~ ?) 정리:송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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