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상군열전(2)
맹상군이 제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위모(魏某)라는 한 가신이 있었다. 맹상군은 봉읍의 조세 업무를 그에게 맡겼는데, 그는 세금을 거두려 세 번이나 봉읍에 갔으나 번번이 빈손으로 돌아왔다. 맹상군이 그 연유를 따져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 현인에게 몰래 꾸어 줬는데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맹상군은 화가 난 나머지 그를 내치고 말았다. 그후 몇 년이 지나 어떤 사람이 제나라 민왕에게 맹상군이 반란을 획책했다고 모략했다. 마침 전갑(田甲)이 민왕을 위협하자 민왕은 맹상군을 의심했다. 이에 맹상군은 곧바로 달아났다. 그러자 일찍이 위모에게 돈을 꾸었던 현인이 이 소식을 듣고 궁문 앞으로 나아가서 맹상군은 절대로 난을 일으킬 사람이 아니라는 상소를 올리고는 스스로 궁문 앞에서 목숨을 끊어 맹상군이 무고함을 밝히려했다. 민왕이 깜짝 놀라 자세히 조사를 해보니 과연 맹상군은 모반을 꾀한 적이 없었다. 왕은 다시 맹상군을 불렀으나 맹상군은 병을 핑계로 사절하고는 설 땅에 은거하기를 청했다. 민왕은 이를 허락했다.
그후 민왕은 송나라를 치고 점점 교만해져서 마침내 맹상군을 없애버리려고 했다. 맹상군을 두려워 위나라로 갔다. 위나라 소왕은 맹상군을 재상으로 삼은 뒤 서쪽의 진나라, 조나라와 동맹하고 연나라 군대와 함께 제나라를 쳐부수었다. 제나라 민왕은 거 땅으로 달아나 그곳에서 죽었다. 이어 제나라 양왕이 왕위에 오르자 맹상군은 제후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면서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갓 즉위한 양왕은 맹상군이 두려워 그와 화친하는 한편 제후들과도 화친했다. 전문이 죽자 그에게 맹상군이란 시호를 내렸다. 그후 그의 아들들이 자리다툼에 여념이 없을 때 제나라와 위나라가 연합하여 설 땅을 멸망시켰다. 그로 인해 맹상군은 후대가 끊겼다.
일찍이 풍환이란 식객이 맹상군이 빈객을 환대한다는 말을 듣고 짚신을 신은 채 나타났다. 맹상군이 물었다.
“선생께서는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셨는데, 제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그대가 선비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워낙 가난한 신세인지라 그대에게 의탁을 하고자 왔소이다.”
맹상군은 풍환을 전사(傳舍 신분분이 낮은 사람들이 묵는 숙소)에 머물게 했는데, 그후 열흘이 지나 맹상군이 숙소장에게 물었다.
“그 손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더냐?”
숙소장이 대답했다.
“풍 선생은 아주 가난하여 칼 한 자루밖에 없는데, 그것도 노끈으로 자루를 감은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그 칼을 손으로 튕기며 ‘장검아 돌아가자! 밥을 먹으려 해도 생선이 없구나!’하고 노래를 합니다.”
맹상군은 풍환을 중간 등급의 숙사인 행사(幸舍)로 옮겨 머물게 한 다음 끼니때마다 생선을 대접하게 했다. 그후 닷새가 지나 맹상군이 또 숙소장에게 물었다. 숙소장이 대답했다.
“선생께서는 여전히 칼을 튕기며 ‘장검아 돌아가자! 나가려 해도 수레가 없구나!’하고 노래합니다.”
맹상군은 풍환을 다시 최고 등급의 숙사인 대사(代舍)로 옮겨 머물게 하고는 수레도 챙겨주었다. 그후 닷새가 지나 맹상군이 또 숙소장에게 묻자 그가 대답했다.
“선생께서는 여전히 칼을 튕기며 ‘장검아 돌아가자! 이곳에는 집이 없구나!’하고 노래합니다.”
맹상군은 언짢았다. 그후 1년이 지나도록 풍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냈다. 그 무렵 맹상군은 제나라 재상으로 있으면서 설 땅의 1만 호를 봉읍으로 갖고 있었다. 그의 빈객들은 3천 명이나 되어 봉읍의 수입만으로는 그들을 먹여 살리기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설 땅 백성들을 상대로 돈놀이를 하였는데, 한 해가 지나도 수입이 없었고 대부분의 채무자들이 이자를 갚지 못했다. 빈객들을 계속 접대할 수 없게 된 맹상군은 생각 끝에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빌려 준 돈을 받으러 설 땅으로 보낼 만한 사람이 있겠소?”
숙소장이 말했다.
“대사에 머물고 계시는 풍공은 다른 능력은 별로 없으나 풍채가 좋고 언변이 좋으므로 그를 보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맹상군은 풍환을 불러 부탁했다.
“우리 집에는 제가 불초한 줄도 모르고 모여든 빈객이 3천 명이나 됩니다. 그들을 모두 먹여 살리자면 봉읍에서 거둬들이는 수입만 가지고는 힘에 부칩니다. 설 땅의 수입도 좋지 않아 백성들이 이자를 갚지 않고 있고요. 지금 같아서는 빈객들의 식량을 대기에도 벅차니 선생께서 이 빚을 받아오면 좋겠습니다.”
풍환은 이에 승낙을 하고는 인사를 하고 설로 떠났다. 그는 맹상군의 돈을 빌린 사람들을 모두 불러 놓고 이자 10만 전을 받았다. 그리고는 그 돈으로 술을 빚고 살찐 소를 잡은 다음 술을 걸러 주연을 베풀었다.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그는 이자를 낼만한 사람과는 의논을 하여 갚을 날을 정하고, 가난해서 갚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차용증서를 불태워 버린 뒤 이렇게 말했다.
“맹상군께서 여러분에게 돈을 빌려준 것은 가난한 사람은 농사에 더욱 힘쓰게 하기 위함이었소. 또 이자를 요구한 것은 빈객들을 대접할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었소. 이제 부유한 자에게는 갚을 날을 정해 주었고, 가난한 자는 그 차용증서를 불태워버렸소. 여러분은 마음껏 먹고 마시도록 하시오. 이런 군주가 있는데 어찌 그 뜻을 져버릴 수 있겠소.”
그의 말이 끝나자 앉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거듭 절을 올렸다. 맹상군은 풍환이 차용증서를 불태워버렸다는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사람을 보내 그를 불러오게 했다. 풍환이 이르자 맹상군이 말했다.
“나에게는 빈객이 3천 명이나 되오, 그런 까닭에 설 땅 백성들에게 돈을 빌려주었던 것이오. 나의 봉읍은 작은데다가 백성들은 제때에 이자를 내지 않고 있소, 그리하여 빈객들을 제대로 접대할 수가 없을까 봐 빚을 받아오게 한 것이오. 그런데 듣자 하니 선생은 돈을 받은 즉시 그 자리에서 고기와 술을 마련하여 잔치를 베풀고 차용증서를 태워 버렸다고 하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풍환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고기와 술을 많이 마련하지 않고서는 돈을 빌린 자들을 다 모이게 할 수 없었고, 여유 있는 자와 가난한 자를 구별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유 있는 자에게는 갚을 날을 정해 주었고, 반면 가난한 자는 그 차용증서를 10년 동안 갖고 있어도 이자만 쌓일 뿐입니다. 게다가 심하게 독촉하면 달아나 이자도 갚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 되면 결국 보상도 받지 못하고, 위로는 당신이 돈놀이를 좋아하고 백성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게 되고 아래로는 선비와 백성들이 당신을 떠나 거역한다는 오점만 남기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선비와 백성들을 격려하고 당신의 명성을 높이는 일이 아닙니다. 저는 쓸데없는 빈 증서를 태워버리고 받을 수 없는 빈 장부를 없애는 것으로 설 땅의 백성들이 당신을 가까이하고 당신의 명성을 높이고자 했을 뿐입니다. 무엇을 의심하는 것입니까?”
이에 맹상군은 손뼉을 치며 고마워했다.
이후 제나라 왕은 진나라와 초나라의 비방에 현혹이 되어 맹상군의 명성이 군주를 능가하고 제나라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른다고 여겨 마침내 그를 파면하고 말았다. 그의 빈객들은 그가 파면되자 모두 훌훌 떠나버렸다. 풍환이 말했다.
“제게 진나라로 갈 수레를 한 대 마련해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제나라에 다시 중용되도록 하여 봉읍을 더욱 넓혀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맹상군은 그의 말대로 수레와 예물을 준비하여 풍환을 진나라로 보냈다. 풍환은 곧장 서쪽으로 가 진나라 왕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천하의 유세객으로서 수레를 몰고 진나라에 온 자치고 진나라를 강하게 하고 제나라를 약하게 만들고자 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수레를 몰고 제나라에 간 자치고 제나라를 강하게 하고 진나라를 약하게 만들고자 하는 자도 없을 것입니다. 이 두 나라는 자웅을 가리기 어려운 나라로, 서로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수컷이 되는 나라가 천하를 차지할 것입니다.”
진나라 왕은 무릎을 꿇고 물었다.
“어떻게 하면 진나라가 뒤처지지 않을 수 있겠소?”
풍환이 되물었다.
“제나라가 맹상군을 파면한 사실을 왕께서는 아십니까?”
“들어 알고 있소.”
풍환이 말했다.
“천하가 제나라를 강국으로 보는 것은 맹상군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나라 왕은 다란 나라의 비방에 현혹되어 그를 파면했는데, 맹상군은 속으로 원망하며 제나라 왕을 배반할 것입니다. 만약 그가 제나라를 배반하고 진나라에 온다면 제나라 실정을 모조리 알려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되면 제나라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니 어찌 앞서가는 것뿐이겠습니까? 왕께서는 속히 예물을 마련하여 사신을 보내 몰래 맹상군을 맞아들이십시오. 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만약 제나라 왕이 후회하고 다시 그를 등용한다면 어느 나라가 앞서갈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지나라 왕은 적이 기뻐하며 수레 10승과 황금 100일을 마련하여 사람을 보내 맹상군을 맞아들이게 했다. 풍환은 진나라 왕과 헤어진 후 사신보다 먼저 제나라에 와서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하의 유세객으로서 수레를 몰고 제나라에 온 자치고 제나라를 강하게 하고 진나라를 약하게 만들고자 하지 않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수레를 몰고 진나라로 들어간 자치고 진나라를 강하게 하고 제나라를 약하게 만들고자 하지 않는 자도 없을 것입니다. 진나라와 제나라는 서로 자웅을 가리기 어려워 진나라가 상해지면 제나라는 약해질 것입니다. 두 나라가 다 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 지금 지나라는 수레 10승과 황금 100일을 마련하여 몰래 사람을 보내 맹상군을 맞아드리려 한다고 들었습니다. 맹상군이 만약 서쪽 진나라로 들어가 재상이 된다면, 천하는 진나라 쪽으로 기울게 될 것입니다. 진나라가 천하의 수컷이 된다면 제나라는 수도 임치는 물론이요 즉묵도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왕께서는 어찌하여 진나라 사신이 오기 전에 맹상군을 재상으로 복귀시켜 봉읍을 넓혀주고 사과하지 않는 것입니까? 맹상군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진나라가 강국이긴 하나 어찌 남의 나라의 재상을 맞아들이려 하겠습니까? 이것이 진나라의 계책을 꺾어 패권을 도모하는 것을 끊는 것이니다.”
왕이 말했다.
“옳은 말이오.”
그리고는 국경으로 사신을 보내 진나라 사신을 기다리게 했다. 때마침 진나라 사신의 수레가 경내로 들어오고 있었다. 제나라의 사자는 급히 돌아와 이 사실을 고했다. 제나라 왕은 맹상군을 불러 다시 재상의 자리에 앉히고, 이전의 봉읍 외에 1천 호를 늘려 주었다.진나라 사신은 맹상군이 다시 제나라 재상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수레를 돌려 돌아갔다.
맹상군이 파면되었을 때 빈객들이 모두 그를 떠났는데, 그가 다시 재상의 자리에 앉게 되자 풍환은 빈객들을 맞아들이려 했다. 맹상군은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지난 날 손님을 좋아하고 그 접대를 소홀히 하지 않아 빈객이 3천 명이나 되었던 것은 선생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그런데 내가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자 그들은 모두 나를 떠나 아무도 돌보지 않았소. 이제 선생의 노고로 내가 다시 재상의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그들이 무슨 면목으로 나를 찾을 수 있으리오, 설령 다시 찾아온다 해도 나는 그 얼굴에 침을 뱉어 호된 욕을 보이고 말 것이오.”
그러자 떠나려던 풍환이 고삐를 매어 놓고 수레에서 내려 맹상군에게 절을 했다. 맹상군도 수레에서 내려 마주 절하고 물었다.
“선생께서는 빈객들을 대신해서 사과하는 것이오?”
풍환이 말했다.
“그것이 아니라 공의 말씀이 이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물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이치가 있고, 일에는 당연히 그렇게 되는 도리가 있습니다. 공은 이것을 알고 계십니까?”
“어리석어 선생의 말하는 바를 잘 모르겠소.”
풍환이 말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죽기 마련입니다. 이는 사물의 정해진 이치입니다. 부귀하면 따르는 자가 많고, 비천하면 친구가 적은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공은 아침에 저자로 가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습니까? 새벽에는 서로 어깨를 맞대며 앞 다투어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면 저자를 지나는 자들은 시장을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이는 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거기에 바라는 물건이 없기 때문입니다. 공이 재상의 지위를 잃자 빈객들이 떠나갔다 하여 선비를 원망하고 손들의 출입을 끊어서는 안 됩니다. 바라건대 예전처럼 빈객들을 대해 주셨으면 합니다.”
맹상군이 거듭 인사를 하며 말했다.
“선생의 말을 따르겠소, 어찌 감히 선생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을 수 있겠소?”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일찍이 설 땅을 들른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난폭한 젊은이들이 많아 추나라와 노나라와는 달랐다. 그 까닭을 그곳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옛날 맹상군이 천하의 협객과 무뢰배들을 6만여 호나 불러들였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맹상군이 손님을 좋아하여 스스로 즐겼다고 하는 말이 빈 말은 아니구나.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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