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열전(2)
그러나 진나라 시황제의 편지를 사신에게 넘겨주기도 전에 시황제는 50이라는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일이 이렇게 되다 보니 편지와 옥새는 모두 조고의 수중에 남게 되었다. 시황제가 죽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들 호해와 승상 이사, 조고와 시황제가 믿고 있던 환관 대여섯 명 뿐으로 다른 신하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사는 황제가 외지에서 죽었고 미처 태자를 세우지 못한 것을 감안하여 그의 죽음을 공포하지 않았다. 이사는 시황제의 유해를 온량거(온도를 조절할 수 있고 누울 수 있는 큰 수레)에 안치했다. 그리고는 백관이 보고하는 일l이나 수라상 올리는 일을 모두 전과 같이 하였으며, 환관이 온량거 안에서 일을 처리했다. 조고는 부소에게 내린 옥새가 찍힌 편지를 쥐고 공자 호해에게 말했다.
“주상께서는 승하하시면서 후계자를 정하지 않으시고 맏아들에게만 편지를 내리셨습니다. 부소가 돌아오면 그가 황제에 오를 것이고, 공자께는 한 치의 땅도 내리지 않을 것인데 어찌하시렵니까?”
호해가 말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현명한 군주는 신하를 잘 알아보고 어진 아비는 아들을 잘 안다고 하였소.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며 어느 아들도 후계자로 정하지 않으셨는데 아들 된 자로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조고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천하의 대권을 잡느냐 마느냐는 공자와 저와 승상의 손에 달려 있으니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남을 신하로 삼는 것과 남의 신하가 되는 것, 남을 지배하는 것과 지배를 받는 것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호해가 말했다.
“형을 물러가게 하고 아우를 세우는 것은 불의한 일이오, 아버지의 칙서를 받들지 않고 죽음이 두려워 음모를 꾸미는 것은 불효한 짓이며, 능력도 없으면서 남의 힘을 빌려 일을 꾸미는 것은 무능한 짓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덕을 어기는 일로서 천하가 복종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 또한 위태로워질 것이며 사직도 끊어지게 될 것입니다.”
조고가 말했다.
“제가 듣기로 탕왕과 무왕은 군왕을 죽였으나 천하가 그들을 의롭다 했지 불충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위나라의 군주는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백성들은 그 덕을 받들었으며, 공자도 <춘추>에 이를 기록하면서 불효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무릇 큰일을 하는 자는 사소한 일에 구애하지 않으며, 성덕이 있는 자는 세세한 예의를 따지지 않습니다. 향리의 자질구레한 일과 백관의 일은 다릅니다. 그러므로 작은 일에 구애하여 큰일을 잊으면 반드시 해를 입게 되고, 머뭇거리며 용단을 내리지 못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 과감히 결단을 내려 행동하면 귀신도 무서워 달아나고 반드시 성공하게 됩니다. 공자께서는 이 일을 단행하시기 바랍니다.”
호해가 장탄식을 하며 말했다.
“황제의 승하도 알리지 않고 장례도 치르지 않았는데 어찌 승상의 동의를 구할 수 있겠소?”
조고가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로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양식을 짊어진 채 말을 달려도 놓치면 일은 실패하고 맙니다.”
호해는 이미 조고의 말을 그럴 듯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조고가 덧붙였다.
“승상과 의논하지 않고서는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공자님 대신 승상과 의논을 해보겠습니다.”
조고는 승상 이사를 찾아가 말했다.
“주상께서는 승하하시기 전에 맏아들 부소에게 편지를 내려 속히 들어와 함양에서 장례를 지내라고 했으나 그를 후사로 삼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상께서는 그 편지가 사신에게 전해지기도 전에 승하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맏아들에게 내리신 편지와 옥새는 모두 호해에게 있습니다. 이제 태자를 정하는 일은 승상과 저의 입에 달려 있습니다. 이 일을 어찌 하시렵니까?”
이사가 화를 내며 말했다.
“어찌 나라를 망칠 망언을 하시오? 이는 신하들이 논할 일이 아니오.”
조고가 말했다.
“승상께서는 스스로 생각해 보건대 몽염과 재능을 비교하여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또한 공로는 누가 더 크다고 보십니까? 심원한 계책을 세우면서 실수가 없는 점에서는 누가 더 낫습니까? 천하의 사람들에게서 원한을 사지 않는 점에서는 누가 더 낫습니까? 부소와 사귄지 오래이고 그의 신임을 받는 점에서는 누가 더 낫습니까?”
이사가 말했다.
“모두 내가 몽염보다 못하오. 그대가 이토록 심히 나를 책망하는 까닭은 무엇이오?”
조고가 말했다.
“저는 본래 환관의 심부름꾼이었습니다. 다행히 도필(죽간에 잘못 기록된 글자를 칼로 긁어 고치는 일)의 재간이 있어 궁에 들어와 일을 한 지 20여 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진나라에서 파직당한 승상이나 공신들 중에서 2대 이상 봉직이 이어진 경우는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모두 주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승상께서는 황제의 아들 20여 명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일 그가 즉위하면 분명 몽염을 승상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리되면 승상께서는 분명 열후의 인수를 내놓고 향리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저는 어명을 받고 호해에게 법을 가르친 지 몇 년이 되었습니다만 아직까지 그가 과실을 범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인자하고 후덕하며 재물보다 인재를 더 중히 여기고, 총명하지만 입으로 드러내지 않고 예를 다해 선비들을 공경합니다. 진나라의 여러 공자들 중 그 분만한 자는 없습니다. 가히 황위를 계승할 만합니다. 승상께서는 잘 생각해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이사가 말했다.
“그대는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기나 하시오. 나는 황제의 조칙을 받들어 천명을 따를 것이오. 그 밖에 무엇을 생각해서 결정하라는 말이오?”
조고가 말했다.
“편안한 것도 위험한 것으로 바뀔 수 있고, 위험한 것도 편안한 것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편안하고 위험한 것을 결정하지 못한다면 어찌 성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사가 말했다.
“나는 상채라는 한 마을의 평민에 불과한 사람이었소, 다행히 황제께서 나를 승상으로 발탁하시어 열후에 봉하셨소, 나의 자손들도 모두 높은 지위와 후한 봉록을 누리고 있소. 이는 나라의 존망과 황실의 안위를 나에게 맡기려 했기 때문이오. 그런데 내 어찌 져버릴 수 있겠소.
무릇 충신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 만약의 요행을 바라지 않고 효자는 부지런히 부모를 봉양하는 데 힘써 위험한 일을 하지 않으며, 남의 신하가 된 자는 자신의 직무를 지킬 따름이오. 그대는 다시는 그런 말을 꺼내지 마시오. 장차 내게 죄를 지게 할 셈이오?“
조고가 말했다.
“성인은 융통성 있게 행동하여 변화된 형세를 따르고, 끝을 보면 그 근본을 알고 움직임을 보면 그 결과를 안다고 합니다. 이는 본디 정해진 이치이거늘 어찌 고정된 법칙이 있겠습니까? 지금 천하의 권세와 운명은 모두 호해의 수중에 있으며 저는 그의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무릇 밖에서 안을 제어하는 것을 의혹이라 하고, 아래에서 위를 제어하는 것을 도적이라 합니다. 가을에 서리가 내리면 풀과 꽃이 스러지고, 봄에 물이 흐르면 만물이 자라는 것은 필연의 법칙입니다. 승상께서는 어찌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하십니까?”
이사가 말했다.
“진나라는 태자 신생을 패했다가 헌공·혜공·문공 3대에 걸쳐 안정되지 못했고, 제나라 환공의 형제들은 왕위를 다투다가 죽임을 당했으며, 상나라 주왕은 친척을 죽이고 간언을 듣지 않다가 끝내 나라를 폐허로 만들고 사직을 위태롭게 하였소. 이 세 가지는 모두 하늘의 이치를 어긴 것으로 마침내 제사 지내는 자가 없게 되었소. 내 어찌 모반에 가담할 수 있단 말이오?”
조고가 말했다.
“상하가 합심하면 영원히 부귀를 누릴 수 있고, 안팎이 손잡으면 무사히 일을 끝낼 수 있습니다. 승상께서는 저의 계책을 듣는다면 오래도록 열후의 지위를 보존하고 자손들은 대대로 후(侯)라 정해질 것이며, 틀림없이 왕자교와 적송자 같은 선인처럼 장수하고 공자와 묵자 같은 성현처럼 지혜로워질 것입니다. 만약 제 계책을 듣지 않는다면 그 화는 자손에까지 미칠 터이니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현명한 자는 화를 복으로 바꿉니다. 승상께서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이사는 하늘을 우러러 한탄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 졸지에 난세를 만나 죽을 수도 없으니 이 목숨을 어디에 의지해야 한단 말인가!”
마침내 이사는 조고의 계략에 동의하고 말았는데, 조고가 호해에게 말했다.
“태자의 명을 받들어 승상에게 일을 알렸습니다. 어찌 감히 그 명을 따르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로써 세 사람은 서로 공모하여 시황제의 조서를 받은 것처럼 꾸미고 호해를 태자로 세웠다. 또한 부소에게 보내는 편지는 이렇게 고쳤다.
짐은 천하를 순행하면서 명산의 신령들께 기도드려 수명을 연장하려 한다. 지금 나는 몽염과 함께 수십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변경에 주둔한 지 10여 년이 되었으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많은 군사를 잃었으며 한 치의 공도 세우지 못했다. 그런데도 너는 오히려 여러 차례 상서를 올려 짐을 소행을 직언으로 비방했다. 짐은 하는 수 없이 너를 지금의 직분에서 해임하려고 하니 그리하면 너는 밤낮으로 원망할 것이다.
너는 아들로서 불효했으므로 검을 내리니 자결하라! 장수 몽염도 부소와 밖에 있으면서 그의 뜻을 알고 있었음에도 잘못을 고쳐 주지 못했다. 신하된 자로서 불충했으므로 죽음을 내리니 군사는 비장왕리에게 맡기도록 하라.
그러고는 칙서에 황제의 옥새를 찍어 봉한 후 호해와 가까운 신하를 시켜 상군에 있는 부소에게 전하도록 했다. 편지를 본 부소는 울면서 안으로 들어가 자결하려 했다.
“대왕께서는 지금 도성 밖에 계시고 태자도 아직 세우지 않은 형편입니다. 저에게 30만 군사를 거느리고 변방을 지키게 하시고, 공자를 시켜 감독하게 하신 것은 천하의 중대한 일입니다. 공자께서는 지금 사자가 전하는 편지 하나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십니까? 그러나 그것이 진짜인지 어찌 알겠습니까?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해보시고 그런 다음에 죽어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자 사자가 명을 받들 것을 수차례 재촉했다. 성품이 어진 부소는 몽염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죽음을 내렸는데 어찌 다시 용서를 구할 수 있겠소.”
그러고는 곧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몽염은 명을 받들지 않아 사자에 의해 양주의 옥에 갇혔다. 사자가 돌아와 이 사실을 보고하자 호해와 이사와 조고가 크게 기뻐했다. 그들은 함양으로 돌아와 황제의 승하를 알리고 태자 호해를 2세 황제로 세웠다. 그후 조고는 낭중령에 올라 황제 곁에서 마음대로 권력을 행사했다. <다음호에 계속>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