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큰 전략 레벨의 산도 보고, 전술 레벨의 숲도 보고, 실행 레벨의 개별 한 그루 나무도 잘 봐야 한다.”
카메라에 비유하면 ‘줌 인’과 ‘줌 아웃’을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미시적인 시각’뿐만 아니라 ‘거시적인 시각’을 두루 갖추어야 기대하는 성과를 낼 수 있다. 김재철이 실행 레벨에서 자주 언급하는 중요한 경영방법은 무엇일까?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20가지 사항을 정리한다.
숫자에 정통해야 한다
“자네, 이것은 얼마인가” 김재철과 일을 해온 임직원들이라면 하나같이 숫자에 대한 나름의 추억을 갖고 있다. 김재철이 사람을 이끄는 방법, 조직 구성원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는 방법은 구체적으로 경영관련 숫자를 묻는 것이다. 그는 숫자가 경영의 실상과 현장을 파악하는 지름길이자 관심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라고 생각한다. 숫자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긴장하게 만든다. 김재철은 임원이 숫자에 정통한 것이 리더십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간주한다. 그래서 “숫자와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회의 때나 현장 시찰에서 그는 관계자에게 숫자와 관련된 질문을 자주 던진다.
예를 들어, “참치캔이 얼마인가? 이익률이 얼마인가? 어선당 기름이 얼마나 들어가는가?” 관계자가 정확하게 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면 김재철이 채근한다. “이봐, 그 중요한 것을 당신이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기나, 도대체 뭘 하고 있나?”
이따금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는데, 관계자가 전혀 숫자에 대한 감을 잡지 못하고 일을 때다. 머뭇거리는 이에게 김재철은 이렇게 묻는다.
“그래, 공을 하나 떼고 이야기해보자고. 6만 불인가 아니면 6천불인가?” 그래도 계속 답을 못하면 세차게 몰아치기도 한다. 김재철과 일했던 사장 중 한 명은 “보고하기 전에 분명히 몇 번을 외웠는데 일단 회장실에 들어가면 모든 숫자가 증발해버리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니 어쩌면 좋은가?”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경영은 숫자로 말해야 한다. 문화와 관습은 다르지만 숫자는 명확하다.”고 말할 정도로 숫자경영은 김재철의 경영법에서 핵심을 차지한다. 숫자는 감정이나 거짓이 배제된 정직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숫자를 중시하는 경영법이 지니는 또 하나의 효과는 구성원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는다는 것이다. 임직원 입장에서 “암기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런데 경영 관련 숫자를 기억하는 일은 암기력이라기보다 사업에 대한 집중력과 몰입도에 비례한다. 업을 세세하게 파고드는 사람들은 엄청난 양의 경영 수치를 기억한다. 필자는 노사분규가 극심한 회사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노사관계를 책임져온 한 부장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무려 1,500명의 숫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지만 그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사까지도 꿰고 있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의 교장은 전교생 600명의 이름을 모두 외우면서 아이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한다. 이렇게 보면 숫자는 업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는 지표가 분명하다. 김재철은 또한 이 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
재무제표에 능해야 한다
“회장님처럼 재무제표에 능한 사람이 있을까요? 재무제표 과목으로 필기시험을 치면 회장님이 1등을 하실 겁니다.” 오래전 그를 모셨던 한 관계자의 말이다. 김재철은 감각이나 직관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여기에 의존하다가는 자칫 기업의 실상을 가릴 수 있다고 여긴다. 사람은 봐야 하는 것을 직시하기보다는 보고 싶은 것만 취사선택해서 보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기업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것으로 재무제표만큼 정확한 것이 없다고 보았다. 김재철에게 재무제표는 경영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도구이자 수단이다. 재무제표를 안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지식이 아니라 철두철미한 이해였다.
한번은 사외이사를 뽑기 위해 거래 은행으로부터 두 명의 지점장 출신 인사를 추천받았다. 면접을 보면서 김재철이 묻는다. “은행에 오랫동안 계셨으니까 재무제표를 누구보다 잘 아시겠습니다.”라는 말로 운을 떼기 시작한 뒤 추가 질문을 더한다. “그러면 부채비율은 무엇이지요?” 이런 질문에 정확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자산으로 나눕니까, 아니면 자본으로 나눕니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쉽지 않다. 김재철은 주요 항목에 대해서 무엇을 빼고 무엇을 더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을 때 재무제표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교세라 그룹의 창업주인 이나모리 가즈오 역시 “회계와 재무제표를 모르고 어떻게 사업을 한다는 말인가. 회계장부를 모르는 경영자는 경영할 자격이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규칙적으로 점검하라
“사업가는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김재철은 일이란 결국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것이며, 기업경영의 승패 또한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었다. 그는 “일단 어떤 사람에게 일을 맡길 때는 그 사람을 믿을 수 있어야 하고, 믿을 수 있다면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처럼 권한을 위임하는 일에 대해 신념을 가진 동시에 견제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견제 시스템은 회사를 위한 길이기도 하고 일을 맡은 사람들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는 경험에 의해 “알아서 잘할 것이다”는 믿음은 좋지만 “방임하면 사고가 터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일을 맡긴 사람은 규칙적으로 진행사항을 재차 점검해야 한다. 계열사 사장들과의 대화에서 “방임과 위임의 차이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라고 하며 일을 맡겨두고 체크하지 않는 것, 즉 방임상태에서 결과가 좋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계획을 세우고, 일을 추진하지만 반드시 진행 절차를 확인하고 체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Plan →Do → See → Check'를 생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규 사업을 위해 외부 인재를 영입하고 권한을 위임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김재철은 유능하고 믿을 만한 사람을 영입한 후에도 회사와 신임 사장을 위해서 곁에서 체크하고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파견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방임은 부작용이 크며 부작용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 극복하는 데도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사람의 잘못도 이유가 되겠지만 견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것도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체크 앤 밸런스’기능이 작동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옆길로 빠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사람의 본성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나오는 경영법이다. 견제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힘을 남용하거나 방심할 수 있다. 그가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그런 약점이 있게 마련이라서다. 견제 시스템은 그가 사업을 확장해가는 중에 계열사 중심의 자율 경영체제를 이루면서도 전체의 효율을 높일 수 있었던 방법이다. “경영은 밸런스다”라는 믿음에 따른 구체적인 경영법 가운데 하나이다.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고기를 잡는 것은 선장의 몫이다. 선원들을 고기가 있는 곳으로 데려 갈 수 있도록 선장이 더 많이 노력하고 헌신하고 희생해야 한다.”
선장에게는 판단력과 예측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엉뚱한 곳으로 인도하면 선원들은 헛수고를 할 수밖에 없다.
김재철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관심을 기울이면 판단력과 예측력을 향상시킬수 있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신중히 듣고 자신의 것과 비교해보는 일도 중요하다. 평전 작업을 하던 중에 한번은 점심을 하기에 다소 어중간한 시간에 인터뷰가 끝났는데 그날 일이 떠오른다. 40여 분 동안 김재철 회장과 필자 사이에 묻고 답하는 시간이 있었고, 주로 질문하는 사람은 김재철 회장이었다. 평전의 내용에 대해서는 필자가 물었지만 세상사에 대해서는 김재철 회장이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의견과 판단에 대해 묻고 들었다. “김 회장님은 한시도 쉬지 않으시는구나. 상대방의 생각을 확인하면서 당신이 가진 판단과 의견을 견주어보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뛰어난 선장이나 리더는 계속 탐구하고 학습하고 경청하면서 자신의 판단력과 예측력의 정확도를 올린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어장이나 시장으로 임직원들을 데려간다.
신성택(전 동원산업 부회장)은 “회장님은 정보를 좋아하시고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라고 말하며 경험담을 하나 들려주었다. 일본 종합상사의 직원이 회사를 방문하면 직급이 높든 낮든 반드시 회장을 만나도록 주선해야 했다. 안 그러면 혼이 날 각오를 해야 할 정도였다. 상사원이 회장실을 찾아오면 김재철은 악수를 나눈 뒤 곧바로 업무와 직간접으로 연결된 질문을 던진다. 대부분 핵심적인 것을 묻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식으로 만남을 가졌다. 그래서 일본 상사원들 사이에는 서울 출장길에 김재철을 만난다면 필히 공부를 하고 가야 한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이처럼 김재철은 늘 최신 정보를 귀하게 여겼고 정보망을 연결하면서 미래에 대한 선견력과 통찰력을 다듬었다. 이렇게 해서 앞을 내다보는 현명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다.
리더 한 사람의 역할이 사업의 명운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김재철은 강조해왔다. 그는 병든 주인과 99명의 하인에 대한 비유를 자주 들어 설명했다.
“병든 주인도 99명의 하인 몫을 능히 감당한다. 어쩌면 병든 한 명의 주인이 99명의 하인보다 더 큰 일을 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한 마리의 사자가 이끄는 99마리의 양과 한 마리의 양이 지휘하는 99마리의 사자들과의 싸움에는 한 마리의 사자가 이끄는 양 떼 팀이 승리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능력보다는 조직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리더의 책무와 역할의 중요성은 선장 경험에서 얻은 지혜이다. 이는 “고기잡이는 선장의 몫이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그의 말에는 리더와 리더십의 중요성과 책임감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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