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전 인물 중에서 장량(張良)이란 인물은 들어갈 때와 나갈 때를 분명히 해서 말년을 편하게 보냈다. 진퇴를 분명히 한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많은 영웅호걸들이 역사에 나타났다가 한 줌 연기처럼 사라지곤 하는데, 어떤 영웅은 죽을 때까지 잘 지내다가 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영웅은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곤 한다. 특히 중국 역사상 개국공신들의 말로는 좋지 않았는데, 한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이 결정적인 공을 세운 공신들을 죽이는 선례를 남겼다. 공을 세우고도 제 명에 살지 못한 것처럼 비참하고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 그래서 토사구팽이란 말과 과하지욕이란 말이 생겼다. 한나라를 건국하는데 한신과 같은 명장도 토사구팽을 당해 죽었으니 영웅호걸의 비참한 최후에 마음이 숙연해지곤 한다.
그러나 장량은 진퇴를 분명히 하였기 때문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우리에겐 장자방(張子方)으로 알려진 장량에 대해 사마천은 이렇게 말했다. 야전에 나서지 않으면서 군영의 장막에서 꾀로 승리를 도맡아 해냈다고 평가했던 것이다.
한나라를 건국했을 때 유방에게 가장 공이 컸던 인물은 한신이 대표적 인물이지만 소하와 장량은 서한삼걸(西漢三傑)이라고 불릴 정도로 공이 컸다. 그런데 한신은 불행하게도 토사구팽을 당했고, 소하는 끝까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유방과 여태후의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 보내야만 했다.
이 두 사람에 비해 장량은 스스로 은퇴를 하였기에 편안한 말년을 보낼 수 있었다. 장량이 부귀영화로 가득 찬 속세를 떠나 홀연히 은둔의 삶을 택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만의 공부와 수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량은 젊었을 때 열혈남아였다. 그래서 한나라를 망하게 만든 진시황의 수레를 습격하기 위해 가산을 털어 창해역사라는 장사를 고용할 정도였다. 비록 암살을 시키지는 못했지만 그 바람에 현상수배가 되어 떠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장량은 모처럼 하비의 다리 위를 걷다가 노인 한 사람과 마주치게 되었다. 노인은 장량을 만나자 일부러 신을 다리 밑에 떨어뜨려놓고선 주워오게 했고, 가까스로 화를 참으며 신발을 주어다 노인의 발에 신겨드렸다. 그러자 노인은 가르침을 줄 만한 사람이라며 닷새 뒤에 만났던 다리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런데 닷새 뒤에 가보니 노인이 벌써 와 있었다. 노인은 늙은이보다 늦게 왔다면서 호통을 쳤고, 다시 닷새 뒤애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장량은 새벽닭이 울기가 무섭게 다리로 나갔더니 노인은 그때도 이미 와 있었다. 노인은 또 버럭 화를 냈고 닷새 뒤에 만나기로 다시 약속을 했다. 장량은 아예 한밤중에 그 다리로 나갔더니 잠시 뒤 노인이 나타나 기쁜 낯으로 책을 한 권 건네주었다. ‘이 책을 가지고 공부하면 제왕의 스승이 될 수 있은즉 10년이면 그 뜻을 이룰 것이다’ 노인은 이렇게 말하며 사라졌는데, 아침에 그 책을 펼쳐보니 ⌜태공병법(太公兵法)⌟이었다.
장량은 노인의 말대로 열심히 공부를 하였고, 이러한 병법공부는 훗날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울 수 있도록 다양하고도 치밀한 전략을 제안할 수 있었다. 젊었을 때에는 협객이었으나 천하의 병법서를 얻은 후로는 전략가가 될 수 있었다. 장량은 이 책을 수중에 넣은 뒤로 집중적으로 읽었고 소리 내어 읽으며 익혔다.
그런데 잔병치레가 많았던 장량은 일선에 나아가 전투를 한 적은 없었다. 항상 장막에 있으면서 천하를 얻을 수 있는 계책을 뽑아내 유방을 도왔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유방이 진나라의 도읍이었던 함양을 점령했을 때 궁 안에는 금은보화가 잔뜩 쌓여 있었고, 궁녀들이 수 천 명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래서 잠을 궁에서 자며 즐기려고 했을 때 장량이 강하게 만류해 실수를 막아주었다. 유방은 장량의 말을 들어 들판에서 잤고 인심을 얻을 수 있었다.
항우가 유방을 공격하려고 했을 때에도 장량은 번쾌를 시켜 구해냈으며, 유방이 사천지방으로 밀려났을 때에도 장량은 그 지역을 자원을 이용해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
유방은 이러한 장량의 지혜를 이용하였는데, 무장으로는 한신을 이용해 숙적 항우를 무너뜨리고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장량은 유방으로 하여금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자신의 나라였던 한나라에 충성을 다하였고, 자신을 알아준 유방에게 천하를 통일시키는 의리를 보였다. 그런 장량이 무엇이 하사품과 봉토를 버리고 산 속으로 들어가 은둔을 시작한 것은 유방이 개국공신 한신을 죽이는 것을 보고나서였다. 한신을 죽인 이후에도 유방은 수없이 개국공신들을 죽였는데 장량만은 피할 수 있었다.
피할 수 있었던 비법은 바로 나아감과 물러남이었다. 그래서 화를 피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장량이 태공병법을 꿰뚫은 데 있었다. 태공병법의 골수를 알았고 그 경지에 닿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병법서 한 권이었지만 그것을 통달하고 진정한 의미를 알았을 때 위기에서도 자신을 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바다처럼 많은 책들을 다 읽어야만 할 것인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지식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다. 시간도 엄청나게 소요된다.
유방은 한신과 장량만으로 천하를 통일했다. 그 많은 무장과 책략가들이 있었지만 정작 천하를 통일시키는 데는 한신과 장량의 역할이 컸다.
책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필요한 책은 그 골수를 파먹어야만 한다. 그래야 그 책이 말하는 진정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글 : 송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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