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사욕으로 가득 찬 이사의 말로는 비참함 그것이었다.
이사는 한비자와 함께 순자(荀子)의 문하생이었다. 훗날 진시황을 도와 그 유명한 분서갱유를 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었다.
이사는 진나라에서 큰 공을 세워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재상까지 되었지만 비극적인 말로를 맞이하고 만다. 자신은 오형(五刑)을 받아 죽었고, 집안사람들까지 삼족을 멸하는 형벌을 당하고 말았으니 그의 삶은 처참함 그것이었다. 그러나 조금도 동정을 받을 수 없는 것은 그가 출세지상주의로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었다.
누구든지 출세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기열전의 이사열전에서는 배울 만큼 배운 이사란 인물이 자신을 성찰하는 지혜로 심화시키지 못한 채 그 지식을 오직 출세와 부귀영화만을 위해 활용했다는 점이다.
이사의 일생을 보면 문득 정도전을 떠올리게 한다. 정도전은 계속되는 정치적 시련 속에서 더욱 강해졌는데, 그는 평소 취중에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한나라 고조가 장자방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고조를 이용하였다”라고. 그렇다면 정도전을 철저히 이성계를 이용했다고 봐야 한다. 비록 위화도 회군을 통해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지만, 여기에서 정도전은 이태조를 이용하여 자신의 야망을 펼치고자 했다. 그래서 이방원과 같은 용맹스러운 사람을 왕세자로 세우지 않고 방석과 같은 연약하고 자기가 맘대로 주무를 수 있는 어린 사람을 왕세자로 세웠던 것이다. 정도전은 자신의 야망과 포부였던 이상적 왕도정치를 표방하였다면 이방원은 그와는 달리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왕조국가를 지향했기 때문에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끝내 자신의 죽음은 물론 자식들까지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한 나라를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음에도, 그래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 것은 이사나 정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사는 혀가 잘리고 삼족의 멸함을 당했으니 그 일생이 한낱 이름 없는 백성만도 못하고 말았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부귀영화가 첫째 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사가 젊었을 때의 일이다. 변소에 사는 쥐와 곳간에 사는 쥐를 보게 되었는데, 변소에 사는 쥐는 사람이나 개가 접근하면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나 곳간에 사는 쥐는 사람이나 개를 전혀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이사는 “사람이 잘 나고 못난 것은 쥐와 같으니 어떤 환경에 처했느냐에 달렸을 뿐이다”라고 탄식하며, 이 일을 계기로 입신출세에 강렬한 욕망을 갖게 되었다.
이사는 당시 범상치 않은 순자 밑에서 제왕학을 공부했는데, 공부를 다 마친 이사는 떠나기 전 스승 순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비천함이 다 큰 부끄러움은 없으며 빈궁함보다도 더 깊은 슬픔은 없습니다. 오랫동안 미천한 지위와 고달픈 처지에 놓여 있으면서 세상의 부귀를 비난하고 영리를 증오하며 자기 힘으로 실행하지 않는 것에 의지하려는 것이 선비의 마음은 아닐 것입니다.
이사는 비천함과 빈궁함이 가장 큰 치욕으로 여겼다. 비천함과 빈궁함에서 벗어나 떵떵거리며 사는 것을 가장 큰 이상으로 여겼다. 그래서 자신이 배우고 익힌 지식을 부귀영화를 위해 활용했던 것이다.
이사의 욕망은 현실에서 이뤄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사 보다도 더욱 교활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고’이다. ‘조고’의 교활함으로 인해 부귀영화의 최고조에서 그는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그러니까 시황제 37년 10월에 황제는 세상을 두루 직접 들러보기 위해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가 낭야에 이르렀다. 황제는 이때 옥새를 관리하는 조고와 남달리 사랑하고 아끼는 막내아들 호해를 데리고 갔다,
그런데 시황제가 사구(沙丘)에 이르러 병이 위독해지자 조고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적어 부소에게 전달토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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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봉염에게 맡기고 함양으로 와서 내 유해를 맞이하여 장례를 지내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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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편지가 사자에게 전해지기도 전에 시황제는 눈을 감고 말았다. 그 편지와 옥새는 모두 조고가 가지고 있었는데 시황제의 막내아들과 환관 몇 사람만 알 뿐 이 같은 사실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조고가 이사에게 말했다.
“폐하께서 돌아가실 때에 맏아들을 후사로 삼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편지는 아직 보내지지 않았고 폐하의 붕어는 아무도 모른 상태입니다. 태자를 정하는 일은 승상과 제 입에 달렸는데 어떻게 하시렵니까?”
이사가 말했다.
“어째서 나라를 망칠 말을 하시오?”
“승상은 제 말만 들으시면 봉후의 지위를 유지하고 자자손손 고(孤)라고 일컬으며 반드시 왕자교와 적송자처럼 장수하고 공자와 묵자 같은 지혜를 얻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재앙이 자자손손 미칠 것입니다.”
이사는 하늘을 우러러 눈물을 흘리며 결국 조고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리하여 세 사람은 공모하여 시황제의 조서를 받은 것처럼 꾸미고 시황제의 아들 호해를 세워 태자로 삼았다.
그러나 이사는 조고의 음모에 의해 삼족이 멸하는 꼴을 당해야만 했다. 이에 대해 <사마천>은 이렇게 평했다.
-이사는 여염집에서 태어나 제후들에게 유세하다가 진나라로 들어가서 진나라 왕을 섬겼다. 이사는 기회를 타서 시황제를 도와 대업을 이루게 하였다. 그리고 삼공의 높은 자리에 등용되었다. 그러나 이사는 육경의 근본 뜻을 잘 알면서도 공명정대하게 정치를 하지 못하고 군주에게 아첨하여 좇으며 구차하게 비위를 맞추기만 했다. 조칙을 엄하게 하고 형벌을 가혹하게 했으며 조고의 간사한 의견을 따라 적자를 폐하고 첩의 자식을 제위에 오르게 했다. 제후들이 이미 뒤돌아선 뒤에야 비로소 군주에게 충고하려 했으나 때가 너무 늦었구나!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사가 충성을 다했는데도 오형을 받고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근본을 살펴보면 세속의 말과는 다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사의 공은 주공이나 소공과 어깨를 겨룰 만하였을 것이다.
이사가 죽고 나서 2세 황제는 조고를 중승상(中丞相)으로 삼았다. 모든 일은 조고가 결정했고 끝내는 2세 황제에게 자결하도록 했다. 그리고 스스로 황제가 되려했으나 하늘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고 역시 이사처럼 삼족을 멸했다.
이사는 배우기도 많이 배운 천하의 문장가였다. 그가 배운 대로 바르게 살았더라면 사마천의 말대로 천하가 알아주는 주공이나 소공과 어깨를 겨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사는 배움의 가치관은 멀리한 채 인간의 잘 나고 못나고를 그가 처한 물질적 환경으로만 생각하는 저급한 인생관을 갖고 살았다. 한 때는 부귀와 영화를 누렸을망정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고 말았다.
우리가 공부를 하고 학문을 하는 것은 좀 더 인간답게 살고 남을 괴롭히는 대신 남에게 봉사하고 하늘의 뜻에 순응하여 사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사처럼 사사로운 부귀와 영화만을 위해 살았으니 어찌 그 비참한 말로가 환경 탓이겠는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 아니겠는가. (글 송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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