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歲寒圖)>는 추사의 명작 중 명작이다. 그리고 그런 세한도는 추사가 제자인 이상적에게 그려준 것으로 화재에도 씌어져 있다. 왜 추사는 제자에게 그같은 그림을 주었을까? 그것은 이상적이 스승인 추사가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정성을 다해 연경에서 구해온 책을 보내드렸기 때문에 고마움의 표시로 보답한 것이었다.
더구나 이듬해인 1844년 하우경이 편찬한 <황조경세문편>이라는 책을 보내드렸는데, 그 책의 권수는 총 120권으로 79책이나 되었다.
사실 추사는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열심히 책을 읽곤 했다. 다산 정약용이 18년 유배생활을 하면서 500여 권을 책을 짓는 등 학문을 하였다면, 추사는 9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학문은 물론 예술까지도 모두 심화시킬 수 있었다. 어찌나 책을 좋아했던지 그 동생이며 제자 이상적은 끊임없이 책을 보내드려야만 했다.
추사는 이상적에게 <세한도>를 그려 주며 감사의 뜻으로 그림의 발문을 이렇게 적었다.
지난해에는 <만학>과 <대운> 두 문집을 보내주더니 올해에는 우경의 <문편>을 보내왔도다. 이는 모두 세상에 흔히 있는 것도 아니고 천만 리 먼 곳에서 사와야 하며, 그것도 여러 해가 걸려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쉽게 단번에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세상은 흐르는 물살처럼 오로지 권세와 이익에만 수없이 찾아가서 부탁하는 것이 상례인데 그대는 많은 고생을 하여 겨우 손에 넣은 그 책들을 권세가에 기증하지 않고 바다 바깥에 있는 초췌하고 초라한 나에게 보내주었도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날이 차가워(歲寒) 다른 나무들이 시든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松柏)가 여전히 푸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했는데 지금 그대와 나의 관계는 전이라도 더한 것도 아니요 후라고 줄어든 것도 아니다.
아! 쓸쓸한 이 마음이여! 완당(추사의 다른 호) 노인이 쓰다.
이상적은 스승으로부터 이러한 선물을 받자 무척 기뻤다. 그래서 연경으로 떠나기 전 감사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가 <세한도>를 받아 읽으니 눈물이 흘러내림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너무나 분수에 넘치게 칭찬해 주시니 감개가 진실되고 절절하였습니다.
이번 걸음에 이 그림을 갖고 연경에 가서 표구하여 옛 지기분들에게 보이고 시문(詩文)을 청할까 합니다.
그런데 과연 <세한도>는 어떤 작품일까. 실경산수도 아닌 것이 어째서 발문 내용처럼 소나무 예찬이 나오는 작품일까. 세한도는 실경산수가 아니라 문인화였다. 그리고 그림보다도 발문이 더욱 보는 이를 감동시키고 있다. 발문은 추사의 해서체 대표작으로 글씨의 울림이 강하면서도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뛰어났다.
이상적은 <세한도>를 들고 연경으로 갔는데 그 이듬해 그의 벗 오찬의 장원에서 벌어진 잔치에 초대를 받았을 때 <세한도>를 펼쳐보였다. 그러자 그 자리에 참석한 좌객들은 모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학진이란 사람은 이렇게 읊었다.
평소에 절개를 굳게 가졌다가도 잠깐 세 변하는 수도 있으나, 절개를 평소에 굳게 가지지 못하고서도 잠깐 새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러면 군자가 소나무를 배우는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선속 바위틈에서 늙어도 고독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대체로 장차 재목으로 길러 쓰이기를 기다리는 것이요, 목수에게 버림받아도 원망하지 않는 것은 장차 내 천진을 보전하여 옛 모습으로 마치자는 것이다.
우선이 김추사 선생이 그린 <세한도>에 보인 것은 우선을 격려하고 겸하여 추사 자신이 스스로 가다듬어 장차 세상을 떠나 숨어 살아도 비관하지 않는 심화를 보인 것으로 추사옹의 높은 절개를 우러러본다.
그런데 <세한도>는 이상적이 죽은 후 그의 제자인 김병선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다시 <세한도>는 평안감사를 지낸 적이 있고 휘문고등학교 설립자인 민영휘의 소유가 되었고, 그의 아들 민규식이 소장하고 있다가 추사 연구가인 후지츠카에게 팔아넘기게 된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에 따르면 1943년 여름, 태평양 전쟁이 한창일 때 서예가이자 당대의 서화 수집가로 추사 작품의 최고 컬렉터였던 손재형은 평소 알고 지내던 후지츠카를 방문해 <세한도>에 대해 얘기도 나누고 함께 감상도 하였다. 그런 후 정중하게 <세한도>를 양도해 달라고 말했으나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 이듬해 후지츠카는 다른 일본인처럼 패전 뒤를 생각해 본국으로 건너가면서 <세한도>를 비롯한 추사의 서화 등을 모두 가지고 도쿄로 갔다.
손재형은 미군의 도쿄 공습이 한창인 때 일본으로 건너가 후지츠카를 찾았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세한도>를 달라고 요청했으나 단호히 거절을 당했다. 그럼에도 손재형은 매일 찾아가 문안인사를 그리며 달라고 했는데, 그해 12월 후지츠카는 열정에 감복한 나머지 맏아들 후지츠카 나오아키에게 유언을 남긴다. 자신이 죽으면 <세한도>를 손재형에게 넘기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도 손재형은 묵묵히 후지츠카를 바라보며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러자 후지츠카는 아들을 불러 <세한도>를 건네주라고 명을 내렸다.
“선비가 아끼던 물건을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보상도 받지 않겠으나 잘 보전해 달라”
마침내 <세한도>가 조국으로 넘어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손재형이 <세한도>를 들고 귀국한 석 달 뒤, 1945년 3월 10일 후지즈카의 서재가 있던 대동문화학원의 건물이 폭격을 맞고 말았다. 그가 갖고 있던 그 많은 책과 서화 자료들이 모조리 불타버렸다. <세한도>는 손재형의 끈질긴 노력으로 살아남게 된 것이었다.
손재형은 후지즈카의 말대로 잘 보관하고 있다가 국회의원 출마로 선거자금에 쪼들리게 되자 수장품 중 겸재의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를 당시 삼성물산 이병철 사장에게 양도했다. 그리고 <세한도>는 차마 팔 수 없어 사채업자에게 저당 잡히고 돈을 끌어다 썼다.
그런데 손재형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세한도>를 찾아올 돈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세한도>는 그리하여 미술품 수장가 손세기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지금은 그의 아들 손창근이 소장하고 있다.
후지츠카가 간곡히 <세한도>를 보관해 줄 것을 말했으나 손재형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세한도>는 영원히 사라질 뻔 했다. <세한도>를 구해 온 손재형의 공을 생각해 위창은 이렇게 말했다.
세계의 전쟁 기운이 가장 높을 때 손군 소전(손재형의 호)이 훌쩍 현해탄을 건너가 많은 돈을 들여 우리나라 진귀한 물건 몇 가지를 사들였는데, 이 그림 또한 그 가운데 하나다. 폭탄이 비와 안개처럼 자욱하게 떨어지는 가운데 어려움과 위험을 두루 겪으면서 겨우 뱃머리를 돌려 돌아왔다. 감탄하노라! 만일 생명보다 더 국보를 아끼는 선비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말하고 잘하였도다.
<세한도>는 십여 년 전 강진에서 활동하던 서각가 청암 김성이 양각으로 제작한 바 있었는데, 이 작품은 목포대로 기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쨌든 <세한도>의 제작과정과 소장의 변동과정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기이한 그의 운명을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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